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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지 마, 아빠

브런치 10주년 작가의 꿈

by 연옥



아이들이 내 곁에 온 순간, 세상은 전에 없던 온기로 가득해졌다. 울웃으며 함께한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내 삶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주말 오후, 카페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의 안부와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과 부드러운 조명이 더해져 그곳은 마치 하얀 무도회장을 연상케 했다. 따뜻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컵을 내려놓은 순간, 두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 아이들의 체온이 손끝을 타고 흐르자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저 반짝이는 눈빛 속엔 어떤 내일이 담겨 있을까.


"새봄이, 다온이는 꿈이 뭐야?"

"꿈? 어젯밤에 아무것도 안 꿨는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이들의 대답은 늘 예상을 비껴갔다.


"다온아, 아빠가 말한 건 나중에 되고 싶은 사람이야."


새봄이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참 예뻤다. 다온이는 개구리가 되겠다고 했다. 아빠처럼, 나쁜 개구리를 잡으러 다니겠다며 폴짝 뛰었다. 그 모습에 테이블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아빠는 꿈이 뭐야?"


순간, 가슴 한쪽이 먹먹해졌다. 경찰로 근무하며 마주한 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웃음을 잃고 굳어버린 표정, 두려움에 떨던 눈빛, 외로운 침묵 속에 갇힌 아이들. 나는 그 아이들의 마음을 하나라도 더 꺼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빠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그게 아빠 꿈이야."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그럼 우리도 더 행복해져?"

"응. 아빠가 만든 책으로 어른들의 마음이 바뀌면, 너희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듣자 새봄이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나도 아빠처럼 책 만들어 보고 싶어."


책은 특별한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음만 있다면 아이도 어른도 각자의 이야기를 세상에 펼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럼 새봄이 다온이 그림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 볼까?"

"좋아! 그러면 글씨는 아빠가 써 줄 거야?"

"물론이지. 만약 아빠가 없으면 엄마가 옆에서 도와줄 거야."


그때, 다온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근데 아빠가 왜 없어? 아빠 어디 가?"


아이의 질문에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음... 아빠가 새봄이 다온이 옆에 오래 있고 싶어서 몸속에 나쁜 돌멩이를 꺼냈거든. 근데, 아빠 몸이 조금 안 좋아져서 병원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말끝이 흐려졌다. 아이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자꾸만 흔들렸다. 그러자 아이들이 주삿바늘 자국으로 얼룩진 내 손을 꼭 움켜쥐었다. 작은 손들은 '놓지 마, 아빠'라며 온 힘을 다해 매달리는 듯했다. 고스란히 전해지는 여린 마음에 가슴 깊이 벅찬 물결이 일었다.


"그럼 나는 디자이너 안 할래. 아빠 고치는 사람 될래."

"나도 개구리 경찰 안 해. 그냥 아빠 지킬래."


나는 끝내 대답을 잇지 못했다. 아이들의 꿈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을 꼭 끌어안았다. 그 체온 속에서 나는, 영원히 아이들의 세상이 되기로 다짐했다.


아빠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현장에서 마주한 아이들의 눈빛은 결코 우리 아이들의 눈빛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아이들은 죄가 없었고, 잘못은 늘 등을 돌린 어른들에게 있었다.


아이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자란다. 한 아이의 울음은 다른 아이의 웃음을 흔들고, 그 아픔은 곧 우리 모두의 내일에 닿는다.


어른들이 길을 밝혀주어야 아이의 웃음은 다시 피어난다. 그 웃음이 번져 모든 아이들이 함께 웃을 때, 내 아이의 웃음도 온전히 빛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브런치에 글을 쓴다. 서툰 한 줄일지라도, 독자들의 응원이 모여 수많은 어른들의 마음에 닿는다. 이곳에서 자란 나의 글이 언젠가 한 권의 책으로 피어나, 아이들의 웃음을 지켜 줄 또 하나의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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