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기억을 극복하는 강인함
겉보기에는 아름답기만 한 마르티니크 섬. 하지만 이 섬에는 아픈 과거가 있다. 바로 1902년에 발생한 활화산 Montagne Pelée의 분화. 산을 타고 빠르게 내려간 화산 쇄설류 때문에 산 밑둥 Saint-Pierre에서는 무려 3만 여 명의 사람이 죽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만다 (20세기 들어 사상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화산 폭발로 꼽힌다). 17세기에 건설되어 한때 ‘카리브해의 파리’라 불렸던 이 도시는, 이 사건으로 인해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며, 이후 지금까지도 인구 4천 명 정도의 작은 도시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카리브해 섬 중 이런 저런 재난을 당한 섬들이 의외로 많다. 당장 화산 분화만 하더라도 Saint Vincent (2021년), Montserrat (1995년), Guadeloupe (1976년) 등 여러 섬에서 발생하였으며, 허리케인의 경우에도 Beryl (2024), Irma (2017), Sandy (2012) 등이 주기적으로 이 지역을 할퀴고 지나간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 주민들은 한가해 보이지만 의외로 강하다. 이런 저런 여건으로 복구가 느릴지언정 반드시 끝내는 그 근성. 이러한 강인함으로 관광객을 맞이하기에 관광객들이 이들이 당한 상처를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이런 저런 상처를 딛고 일어나 다시 아름다운 모습으로 맞아주는 섬들을 보면 새삼 경외감을 갖게 된다.
여하튼, 활화산이 있는 섬이니 기본적으로 험준한 지형일 것임은 익히 예상 가능하다. 실제로 어디를 가더라도 험한 산세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따라서 도로도 생각보다는 굴곡이 많고 험한 편이다. 그래서 이 섬의 면적 (1,128㎢) 은 제주도의 ~60%에 불과하지만 이동 시간이 길어지기에 체감상으로는 더 큰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산이 깊고 그윽한 만큼 이점도 있다.
일단 어디를 다녀도 경치가 끝내준다. 딱히 전망대도 설치되지 않은 도로변인데도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 가히 절경인 경우가 왕왕 있다 (단, 과들루프와 마르티니크 모두 운전 습관이 급한 편이니 도로변 정차 시 안전에 유의하자).
산이 깊고 그윽한 덕분에 발생하는 이점 하나 더. 바로 아름다운 비치들이 많다는 것이다. 산이 깊어 해안선이 꼬불꼬불해지니, 자연스럽게 이들 산 사이 사이에 비치들이 형성되는 것. 이렇게 형성되는 비치는 일단 아름다울 뿐 아니라 주변을 산이 둘러싸주기 때문에 뭔가 안정된 편안함을 얻게 된다. 여기에 고운 모래와 투명한 물 그리고 강렬한 태양까지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다.
단, 여름철 비치에는 해조류 (주로 모자반) 가 종종 밀려 올라오니, 여름에는 상황 보아 무리하게까지 해수욕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명동성당을 필두로 대부분의 성당이 차분한 벽돌 건물로 지어지는 한국과 달리, 마르티니크의 성당은 마을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특히, 바닷가 부두 바로 앞에 지어진 Arlet 성당 그리고 바닷가 마을 뒤 언덕 위에 지어진 Saint-Marie 성당은 위치 선정까지 예술이다 보니 그 모습 또한 압도적이다.
럼 양조장이 이렇게 세련될 수 있는 것일까. 그냥 깔끔하게 정돈해 관광객을 맞이하는 수준이 아니라, 양조장에 예술 작품을 더해 양조장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킨 느낌이다. 과들루프의 럼 양조장에서조차 ‘마르티니크의 양조장들은 우리보다도 수준이 높은 것 같다’고 스스럼 없이 이야기했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드디어 알게 되었다.
플랜테이션을 천천히 돌다 보니 누가 봐도 ‘주인집’으로 쓰였을 것 같은 유서 깊은 건물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 앞에 무슨 기념판이 세워져 있다. 알고 보니, 이 플랜테이션에서 1991년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했던 것. 그 정도로 Habitation Clément이 유서 깊은 장소이자 잘 관리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터.
럼을 놓고 수많은 양조장들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니 럼이 대단히 복잡한 술인 것 같지만, 사실 럼 제조 과정은 상당히 간단한 편이다. 먼저 사탕수수를 분쇄 및 착즙한 다음, 이 착즙된 사탕수수즙을 발효시키게 된다. 발효가 완료되면 이 발효액을 증류한 다음, 이 증류액을 블렌딩 및 숙성하여 최종 제품을 생산하게 된다.
단, 럼 생산은 크게 두 가지 계열로 나뉘게 되는데, 사탕수수즙을 바로 발효시켜 럼을 만들 수도 있고 사탕수수즙으로 먼저 molasses를 만든 다음 이 molasses로 럼을 만들 수도 있다. 과들루프와 마르티니크의 럼은 주로 전자에 해당되며 이를 rhum agricole이라 부른다. 사탕수수즙의 다양한 맛을 끌어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 반면 생산 역량이 미흡한 경우 사탕수수의 풋내음 등 불쾌함이 더해질 수 있어 생산자의 섬세함이 중요해진다.
Habitation Clément이 럼 양조장과 예술 작품을 접목하여 인기를 끌고 있다면, Distillerie Saint-James의 경우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모습을 유지하면서 이를 방문객에게 그대로 보여주려는 모습이다. 실제로 과거 사용되었던 다양한 럼 생산 기구들이 잘 전시되어 있어 이채롭다.
마르티니크도 과들루프와 더불어 관광객이 많은 섬이다 보니 (주로 프랑스 본토에서 많이 방문하는 듯하다), 다양한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따라서 즐거운 식도락 기행이 가능하다. 섬 전역에 걸쳐 다양한 식당들이 성업 중이고, 바닷가의 훌륭한 비치바들 덕분에 해수욕과 함께 흥겨운 음주도 즐길 수 있다.
꼭 해봐야 할 일: 마음에 드는 비치 찾아보기, Montagne Pelée 등산해보기, Habitation Clément 등 다양한 럼 양조장 방문해 럼 마셔보기, 다양한 프랑스 문화의 흔적 발견하기.
날씨/방문 최적기: 겨울 기준 매일 20~30도로 따뜻하며, 여름에는 25~35도로 다소 더움. 4월 중순~11월 우기/허리케인 시즌 및 12~1월 성수기 제외 시, 2~4월 중순이 방문 최적기.
위치: 카리브해 중부 소앤틸리스 제도 (Lesser Antilles) 및 윈드워드 제도 (Windward Islands) 에 속하며, 도미니카 섬 (Dominica) 남쪽 약 40km에 위치.
시간대: 대서양 표준시 (한국보다 13시간 느림). DST (서머타임) 제도 없음.
항공편: 마이애미 (MIA) 에서 주 2회 정도 직항편 운항 (비행 시간은 3.5시간 선). 그리고 마이애미까지는 뉴욕, 애틀랜타, 댈러스 등 한국발 주요 행선지에서 직항편 이용이 가능 (비행 시간은 2~3시간 선). 한편 파리 (CDG, ORY) 에서 하루 3편 직항편 운항중.
입국 요건: 마르티니크는 프랑스령인 까닭에 프랑스 입국 규정이 동일하게 적용되어, 대한민국 국민은 마르티니크도 무비자 입국 가능 (최장 90일).
화폐 및 여행 경비: 유로가 공식 화폐로 환전 필요. 대부분 매장에서 신용카드 사용 가능하나, 택시 등 이용 시 대비 충분한 현금 소지 권장. Fort-de-France, Saint-Pierre 등 주요 도시에는 Crédit Agricole, BNP Paribas, Banque Populaire, Crédit Mutuel 등 ATM 다수 존재.
언어: 프랑스령인 까닭에 불어가 공용어이며, 현지인 간에는 Creole (현지어) 종종 사용. 불어 외 언어 (영어 포함) 로 의사소통 불가한 경우 많아 유의.
교통: 섬이 상당히 큰 편으로 (남북 종단 기준 100km 이상) 차량 이용 필수. 택시 요금은 공항 기준 Fort-de-France는 20~30유로 선, Saint-Pierre는 60~80유로 선, Sainte-Anne는 90~110유로 선. 렌터카는 하루 40~70유로 선이며, 우측 통행에 주요 도로 포장 상태 양호하여 운전에 큰 무리 없음. 자세한 정보는 마르티니크 관광청으로 (https://www.martinique.org/en/travel/services-rentals/transportation).
숙박: 섬 전역에 걸쳐 다수의 호텔이 존재하며, 다양한 가격대 호텔이 존재하니 예산 고려하여 선택 필요 (대부분 일 100~200달러 선, 고급 호텔은 일 300~500달러 선). 빌라 렌트도 가능. 자세한 정보는 마르티니크 관광청으로 (https://www.martinique.org/en/accomodation).
식당/바: 섬 전역에 걸쳐 다수의 식당이 존재하며, 주로 프렌치 또는 캐리비안 요리 제공. Chez Carole, Kay Ali (Fort-de-France), Kaï Raymond, Le Petibonum (Saint-Pierre), Ticase, Ti Taurus (Les Trois-Îlets), Le M, Ti Cozy (Sainte-Anne) 등을 추천. 자세한 정보는 마르티니크 관광청으로 (https://www.martinique.org/en/bars-restaurants).
전압/콘센트: 230V/50Hz에 플러그 타입 C/E 사용 (즉, 프랑스와 동일). 따라서 대부분 한국 전자기기의 경우 여행용 어댑터 필요 없음.
국제전화 국가 번호: +596.
주요 연락처: 긴급전화 (경찰 17, 의료 15), 마르티니크 관광청 (+596-596-61-61-77), 주프랑스 대한민국 대사관 (+33-1-4753-0101), 주트리니다드토바고 대한민국 대사관 (+1-868-622-9081/10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