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티니크 (Martinique)

B cut

by LHS

잠시 질문. 카리브해에 가장 많은 관광객을 보내는 국가는 어디일까. 첫째, 카리브해 지역에서 너무 멀지 않아야 할 것이고, 둘째, 그러면서도 따뜻한 곳으로 여행가고픈 사람들이 많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연유로 1위가 미국이고 (연간 1,500만 명 이상이 카리브해를 방문하는 것으로 추정), 2위가 캐나다 (연간 300만 명 이상 방문 추정), 그리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그 뒤를 잇는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카리브해 섬을 방문하기 위한 최적의 경유지는 미국인 경우가 많고, 이는 영국 또는 네덜란드령 영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그런데 마르티니크의 경우 전혀 다르다 (이는 과들루프도 마찬가지). 2025년 10월 기준 아메리칸 항공이 주 3회 취항 중인 마이애미 노선을 제외하면 미국 직항 노선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프랑스 파리 노선에는 에어 프랑스 등 여러 항공사가 하루에도 네 편 정도 취항 중에 있으니, 미국인 관광객은 거의 엾는 대신 프랑스인 관광객이 훨씬 많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달리 말해, 마르티니크의 경우 아무래도 프랑스령으로서의 독특함을 잘 간직하고 있을 터. 카리브해의 빼어난 풍광과 함께 이러한 문화적인 차이를 느껴보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발품 팔아 방문해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착륙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창밖으로 마르티니크 섬의 북쪽 끄트머리가 보인다. 구름에 가린 산은 Pelée 산으로, 1902년 대분화로 무려 29,000여 명이 사망했다 한다.


공항에 막 도착했는데 하늘빛이 미쳤다. 낮과 밤이 뒤바뀌는 순간의 아름다움.


Les Trois-Îlets 지역에 호텔을 잡았다.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보니 식당과 상점들이 밤에도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다음날 아침 길을 나서다 발견한 도로변 전망 포인트. Les Trois-Îlets라는 지명에 걸맞게 세 개의 작은 섬이 보인다.


그래도 나름 프랑스령 지역에 왔는데, 아침에 제대로 된 커피 한 잔 못 마시고 시작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행히 아침부터 커피 로스팅에 여념이 없는 카페를 발견.


그런데 오늘의 커피가 단 돈 1유로라니! 게다가 풍미도 장난이 아니다. 결국 두 가지 모두 주문해 마셔 버리고 다시 출발.


Saint-Esprit라는 마을을 지나다 우연히 이 마을의 성당을 발견. 카리브해 한복판이지만 마을의 느낌은 확실히 프랑스.


Habitation Clément에 도착. 그냥 럼 양조장으로만 생각하고 왔는데, 어딘지 고급진 느낌이 물씬 풍긴다. 양조장이라기보다는 테마파크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시설뿐 아니라 정원도 훌륭해서, 프랑스 정부가 '역사 기념물' 및 '주목할 정원'으로 지정한 모양. 플랜테이션의 창업주인 Homère Clément은 위인급 인물인 듯하고.


입장료를 결제하고 들어가니 먼저 조각공원부터 둘러보도록 되어있다. 쭉 뻗은 나무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 느낌 있는 조각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은 참나무를 깎은 후 그을려 만들었다고. 그래서인지, 분명 사람의 형상이긴 한데 어딘지 그림자 같은 느낌이 되었다.


이 작품은 무려 벤치의 기능을 담고 있지만, 양 옆으로 구불구불 뻗어나가는 형상이 마치 벤치가 나무처럼 자라나고 있는 느낌을 준다 (작가의 의도를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정원 한가운데 거울을 이리 저리 배치하여 공간감을 비틀어 보았고...


... 다른 누군가는 철제 원통을 활용해 추상적인 사람을 표현해 본 듯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딘지 과거 플랜테이션에서 힘들게 일하던 이들의 고생을 표현한 것 같기도.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묘한 안정감을 주는 기둥.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니 그 예술성이 배가되는 것 같기도.


우주의 심오함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해설이 있기는 하나, 이것 저것 다 떠나서 사탕수수밭 한가운데 놓인 세 개의 구를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해진다.


급기야 거대한 주사위까지 발견. 작품 이름이 'The Misthrown Dice'라는데, 대체 무슨 의미일까.


하지만 이렇게 작품을 구경하면서 한가하게 조각 공원을 거닐다 보면, 문득 '가장 아름다운 조형물은 자연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나 아름다우니까.


그리고 이 완만한 구릉 지대에 여전히 펼쳐져 있는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의 모습은 싱그럽기 그지 없고.


이제 조각 공원을 지나 본격적으로 양조장 시설 투어. 그런데 이렇게 예술적으로 오크통을 쌓아둔 숙성 창고를 본 적 있는가. 이곳이 정말 관광에 진심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다른 창고도 마찬가지로 잘 정돈되어 있다. 이런 거대한 통에서도 숙성시키는 모양. 참고로 관광객에게 오픈된 시설은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듯.


과거 사탕수수를 분쇄하던 시설도 깔끔하게 정비해 전시해 두었다. 여기에서 사탕수수 즙을 내어 발효시킨 다음, 알콜을 증류해 숙성시키면 럼이 되는 것.


그래서 공장 내부에 이렇게 다양한 설비들이 존재하는 것.


예전에는 이곳에서 사탕수수 즙을 발효시켰다 한다.


꽤나 복잡해 보이는 럼 증류기. 발효된 사탕수수 즙에서 알콜을 분리해 내기 위한 설비이다. 이후 그 알콜을 아까의 숙성 창고에서 숙성시키면 럼이 되는 것.


과거 쓰이던 부품들도 살뜰하게 정리해 두었다.


과거 이 플랜테이션에서 일하던 근로자의 숙소.


또 다른 주거동. 지금은 갤러리로 쓰이고 있다.


Clément 가문이 거주하던 저택. 표지판을 보니 아마 이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된 모양이다.


네부도 과거의 흔적을 최대한 잘 살려 깔끔하게 복원해 두었다.


기념패를 보니, 이곳에서 1991년에 무려 프랑스-미국 정상회담이 열렸던 모양. 하긴, 이곳은 외국 정상을 불러들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말만 플랜테이션이지, 갤러리까지 구비된 관광단지에 가깝다. 럼도 이렇게 고상해질 수 있구나.


하지만 역시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럼 시음 아니겠는가. 알콜도수가 무려 71.4도인 럼도 전시되어 있고...


... 다른 한 켠에는 다년간 숙성시켰거나 다양한 럼을 섬세하게 블렌딩한 고급 럼도 다수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윗층에서는 이렇게 럼의 다양한 향을 맡아볼 수 있게 체험형 시설도 꾸며 두었고 (어째 사람들은 시음장에만 몰려 있는 것 같지만). 이 정도면 거의 테마파크 맞다니까.


계단 한 켠을 럼 전시장으로 꾸며둔 누군가의 센스. 럭셔리 브랜드 전시장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역시 사람들은 공짜 시음이 가능한 시음장 앞에서 떠나질 않는다. 실제로 워낙 다양한 럼을 생산하다 보니 이것 저것 마셔보는 재미가 넘치기도 하고.


사람들이 럼을 좋아하건 말건 난 졸리다냥...


Habitation Clément의 사무동조차도 우아하게 꾸며둔 것을 보니, 럼도 이렇게 고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Caravelle 지역의 어느 전망대에 새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탁 트인 하늘과 바다로 날아오르려는 형상에 이입하니 풍경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Plage de Tartane의 바다도 한없이 평온.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만 있어도 여유가 느껴진다.


Sainte-Marie 마을의 대성당. 바닷가 언덕 위에 지어져 웅장한 느낌이 강조되었다. 보고만 있어도 신앙심이 배가되는 느낌이랄까.


Sainte-Marie 마을 바로 앞 Tombolo. 바닷가 바위섬이 시간이 지나면서 본섬과 거의 연결되어 버렸다.


Sainte-Marie 마을 외곽의 Distillerie Saint-James에 도착. Habitation Clément보다는 훨씬 소박한 느낌이지만 그래서 또 정감이 간다.


지금도 돌고 있는 거대한 물레방아. 예전에는 물레방아의 힘을 이용해 사탕수수를 분쇄했다 한다.


럼 양조장 전경. 지금도 럼 박물관 겸 시음장 바로 옆에서는 신나게 럼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공장을 들어가볼 수는 없으니, 럼 전시관으로 향한다. 아마 옛날에는 이 건물이 양조장 사장 저택이었겠지.


내부에는 과거 사용되던 다양한 설비가 전시되어 있다. 투박하게 생긴 럼 증류기.


조금 더 복잡하게 생긴 증류기도 있고...


... 2층 높이의 증류탑도 있다.


하지만 제조 방식 무관 맛있으면 장땡 아닌가. 즐거운 마음으로 시음을 해본다.


이번에는 섬의 남서쪽 Le Diamant 지역에 입성. 왼쪽에 보이는 작은 바위섬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잠시 차에서 내려 시원한 풍경을 감상한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인 Les Anses-d'Arlet에 도착. 마을 도서관이라는데 아기자기한 느낌이 좋다.


경찰서도 마찬가지도 아기자기한 느낌. 하지만 이 마을의 하이라이트는...


... 바로 이 성당이다.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첨탑이 꽤 높은 편이라 건물 기준으로만 보더라도 꽤나 아름답다.


방문했던 때 실제로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을 보니, 성스러운 느낌도 물씬 나고.


하지만 이 성당이 왜 그리도 유명해졌는지 확인하려면, 성당 바로 앞 부두를 걸어나가 보아야 한다.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는 성당과 그 뒤 포근한 마을과 산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한참 넋 놓고 바라보다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니 바다도 상당히 예쁘다. 투명한 바다에서 한가하게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 평안함이 넘친다.


바다 건너편에서 바라본 마르티니크의 수도 Fort-de-France의 모습. 생각보다는 도시 규모가 제법 큰 편이다.


하루의 여행을 잘 마무리하고 호텔로 돌아와 먹는 식사만큼 행복한 것이 있을까.


충분한 휴식과 함께 마지막 밤을 잘 마무리하고, 이제는 떠날 시간. 그냥 프랑스 시골에 다녀가는 느낌이, 확실히 여느 카리브해 섬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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