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루바 (Aruba)

B cut

by LHS

다시 한번 MBTI 이야기. 대놓고 P 성향을 드러내며 여행을 즐겼을 때 가장 만족스러운 곳이 어디일지 생각해 본다면 단언컨대 카리브해 지역일 것이다. 꼭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의외의 풍경과 즐거움에 빠질 기회가 워낙 많기 때문. 물론 관광객이 몰리는 관광지야 어느 섬에든 존재하니 계획 잘 세워서 주요 관광지만 찍어도 충분히 만족스럽겠지만, 별다른 계획 없이 (혹은 계획을 세웠더라도 이를 무시하고) 돌아다녀도 생각보다 즐거운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 오히려 관광객이 너무 많은 곳만 다니다 보면 느낄 법한 피로감도 적당히 피해 가면서 즐거움이 배가될 수도 있을 터.


이러한 깨달음을 아루바에서 얻었다. 방문 전에는 2박의 시간을 배분해 두고 섬의 북쪽 끝부터 주요 관광지를 전부 돌아보려 했지만 (섬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차로 한 시간이면 닿는 작은 섬이니 2박이면 이론상 충분했을 터), 결과적으로는 원래 계획 대비 1/4 정도밖에 못 즐겨본 듯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숨가쁜 여행 스케줄 속에서도 보기 드물게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있었고, 주요 관광지 대부분을 놓쳤을지언정 아루바는 카리브해 수많은 섬들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섬 중 하나가 되었다.


공항 앞 교차로에 아루바 국기가 가지런히 게양되어 있다. 바람에 펄럭이는 아루바 국기가 관광객을 환영해 준다.


별 생각 없이 예약했던 숙소. 그런데 들어가는 순간 느낌이 심상치 않다. 소박하지만 깔끔한 외관은 그렇다 쳐도, 이 하늘과의 조화를 어찌 참는단 말인가.


하지만 일단 해가 지기 전에 해변이라도 둘러보러 차를 달려 나간다. 해가 이미 조금씩 내려앉고 있는 시점이라 그런지, 오히려 더 따스한 느낌을 주는 것 같기도.


카리브해를 여행하면서 여러 장의 '인생샷'을 건졌지만, 이 또한 그 중의 하나로 손꼽는다. 바다가 막 정갈하게 닦아낸 모래 위로 해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 모습.


하루의 소임을 다하고 쉬고 있는 파라솔. 아마도 한낮에는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았겠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이렇게 큰 해변에 사람 하나 없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니 (잘 보면 오른쪽 끝에 한 명 있긴 하지만).


호젓한 바이브로 석양의 끝을 즐기는 두 남자의 모습.


급히 차를 달려 도착한 섬 북쪽 끝 등대. 해가 거의 다 넘어갔으니 이제 슬슬 일을 시작할 시간이다.


석양이 끝나고 슬슬 땅거미가 내린다.


그러자 빛을 밝히기 시작한 등대. 20세기 초 지어진 이래 묵묵히 임무를 수행 중이다.


항상 그렇지만,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게 된다. 저 앞바다의 요트와 함께 하는 석양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외로움이 느껴지다가도...


... 이렇게 사람들이 함께 지켜보고 있음을 확인하자 같은 석양이 다시금 따스하게 다가오는 것.


이렇게 아루바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하지만 해가 졌다고 이 섬의 하루가 끝나는 것은 아닐 터. 해변에서 근사한 식사를 즐길 시간.


분위기에 취해 일단 칵테일부터 한 잔 시키고 (어차피 한 잔 시키려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책임을 돌려본다...).


분위기를 즐기고 있던 중에 받아든 음식은 또 왜 이리 훌륭한 것인지 (지구 반대편에서 이리도 완벽한 참치 타다끼를 경험할 줄이야).


즐거운 식사 후 분위기에 여전히 취한 채로 무작정 산책을 즐긴다. 그러가 맞닥뜨린 지구본 모양의 조형물. 1986년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 한다.


아루바의 네덜란드 대표부. 유럽의 네덜란드도 아루바 등과 함께 네덜란드 왕국을 구성하는 자치국이므로 서로 동등한 지위. 이에 이렇게 서로 대표부를 두고 있다 (대사관은 아니지만).


밤에도 관광객으로 바쁜 크루즈 터미널 앞 몰. 카리브해에서 보기 힘든 불야성의 느낌.


부두에 접안해 있는 거대한 크루즈선이 인상 깊다.


나름 긴 밤을 즐기고 숙소에 들어오니 수영장이 자꾸 부른다. 그냥 느낌 가는대로, 계획 포기해 버리고 하루 푹 쉴까 싶다. 아침에 느낌 보고 결정하리라...


... 그런데 아침 느낌이 미쳤다. 이 하늘 아래에서 즐기는 여유가, 빽빽하게 세워둔 계획보다 훨씬 더 소중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아, 하루 제끼는 거야.


그렇게 아침부터 하루종일 수영장 옆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물에도 들어가고, 한 잔 즐기고, 또 한 숨 자고... 지금도 이날 '진정한 휴식'이 한번씩 그립다.


하루종일 잘 놀았으니 저녁을 먹어줄 시간. 이렇게 번화한 몰에서 발견한 정통 프렌치 식당.


양파 스프의 맛부터 심상치 않다. 잘 개발된 관광지의 맛이 바로 이런 것. 숙박, 식사부터 액티비티, 유흥까지 관광객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켜줄 '여행 생태계'가 갖춰졌다는 의미.


주요 관광지는 속 시원히 날렸지만 전혀 속 쓰리지 않은 마지막 날 아침. 그래도 공항 가는 동선을 고려해, 한 곳만 찍고 가기로 한다.


의외로 건조한 지역이기에, 이렇게 사막과 비슷한 풍경이 곳곳에 펼쳐진다.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더울지언정 습하지는 않다는 의미이니, 이 또한 이 섬의 매력일 터.


여튼 그렇게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바로 Natural Bridge.


거센 파도가 매일같이 섬을 침식해나가다 보면 이렇게 땅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지만...


... 더러는 이렇게 아래만 뚫린 채로 마치 다리와 같은 모습이 되기도 한다. 이게 속칭 Natural Bridge로, 아루바에는 이런 지형이 여럿 존재한다.


하지만 거듭되는 침식에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니, 그 전에 빨리 가서 보는 것을 추천.


아루바 공항 출국장. 체크인 이후 동선이 마치 공원 내 산책로처럼 조성되어 있어, 마지막까지 관광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물론 이후 보안 검색은 매우 느렸지만...).


이제 다시 현생으로 돌아갈 시간. '진정한 휴식'이 필요할 때 다시 돌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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