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Rock"
한때 사람들이 신트 외스타티위스를 이렇게 불렀다 한다. 차로 2~30분이면 충분히 주파 가능하고 인구도 약 3,500명에 불과한 조용한 섬이지만, 과거 17세기 경에는 번성하는 무역항이었기 때문. 그래서일까, 별 것 없어 보이는 작은 섬이지만 의외로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어 단순히 걸어다니기만 해도 의외로 지루하지가 않다. 거기에 아름다운 산과 바다까지 더해지니, 작은 섬이라도 얕볼 일이 아니다.
신트 외스타티위스에 막 도착한 비행기. 손님들은 모두 내렸고, 한창 짐을 내리는 중이다.
아담한 공항 터미널의 모습. 이제는 새로운 터미널이 완공되어 운영중이라 한다.
작은 섬 작은 공항이라 해도 입국 심사 등 할 것은 다 한다. 하지만 시설이 소박한 것은 어찌할 수 없을 터. 수하물 수취대부터 벌써 낭만이 폭발하지 않는가.
늦은 시간에 도착했으니 식사가 급선무. 예약한 호텔 근처 식당으로 향한다. The Old Gin House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진 양조장을 개조한 호텔 겸 레스토랑이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의 역사가 깊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식당 내부는 현대적으로 잘 꾸며 두었다. 식사할 맛이 절로 솟아나는 쾌활하지만 평온한 분위기.
식사도 소박한 모습일지언정 예상 외의 맛을 보여준다. 아쉬움 없이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다음날 아침에 되어 해가 뜨고 나서야 비로소 이 섬의 바다를 처음 목도한다. 건물이 무너져 내린 폐허 뒤로 펼쳐진 푸른 바다를 보는 기분이 묘하다.
해변 도로에 전시되어 있는 옛 대포. 콜럼버스가 이 섬을 발견한 이래 주인이 22번이나 바뀌었다 하니, 옛날에는 이 대포들도 혁혁한 공을 세웠으리라.
잠시 산책을 즐긴 후 먹는 조식이 꿀맛이다. 소박하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춘 건강한 구성이랄까. 이 섬의 느낌과 닮았다.
이 섬의 하이라이트인 The Quill을 오르기 전에 먼저 국립공원 관리소에 들러 입장료를 납부한다. 가격은 2025년 10월 기준 인당 10달러 (1년간 유효).
산으로 향하다 발견한 이구아나 보호 표지판이 귀엽다.
도로가 끝나고, 이제는 차를 세워두고 걸어가야 한다. The Quill에 가까워질수록 새삼 느끼게 되는 이 산의 위용.
그도 그럴 것이, 높이는 601m에 불과하지만 화구의 지금이 무려 ~850m에 달하는 '의외의 스펙'을 자랑하기 때문.
하지만 모든 산이 그렇듯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어느새 올라지는 법. 화구 가장자리에 도달했으니 이제 화구를 한 바퀴 돌 수도 있고 화구 안으로 내려가볼 수도 있다.
거대한 화구를 가진 산이라 그런지, 화구 가장자리에서 화구 안을 찍어도 이게 화구라는 느낌 자체가 잘 들지 않지만, 보통 산과는 다르다는 느낌만은 확실히 온다.
조금 빨리 등산을 마치고 (생애 처음으로 등산로에서 뱀을 만났고, 그 순간의 긴장감에 압도되어 중단 결정), 다시 마을로 내려가는 경치가 예술이다. 그나저나 이렇게나 배가 많다고?
이제 이 섬의 중심지 Oranjestad를 둘러볼 시간. 이 섬의 가장 오래된 포장 도로인 Slave Path. 과거 포획된 노예가 하선 후 이 길로 끌려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
Fort Oranje의 모습. 과거 이 섬이 무역항으로 번성했다 하니, 무역항을 지키기 위한 준비도 철저히 했을 것임은 당연지사.
지금은 폐허가 된 옛 교회터.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총독 관저. 신트 외스타티위스는 네덜란드 왕국의 구성국 중 하나인 (유럽에 있는) 네덜란드의 해외 영토 중 하나로, 네덜란드에서 임명한 총독이 다스린다.
총독 차량도 관저 앞 도로변에 대놓는 소박함. 그러면서도 부총독 차량은 여기 대도 된다는 유연함까지. 아니, 그보다도 나름 네덜란드령인데 영어 안내문을 부착하는 실용주의까지.
다시 차를 달려 섬의 남쪽 끝에 도착하니, 바다 건너 섬이 손에 잡힐 듯하다. Saint Kitts 섬인데, 불과 13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저렇게 잘 보이는 것.
그렇다면 이곳에도 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 세워졌을 터. 하지만 지금은 요새의 일부 흔적과 두어 대의 대포만이 남아 과거 영욕의 세월을 전해주고 있다.
섬의 북쪽까지 차를 달려 나와 멀리서 바라본 The Quill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거대한 화산과 완만한 비탈, 그리고 바다 옆 평지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차량 반납 전 주유소를 찾아가다 (참고로 이 섬의 주유소는 단 두 개뿐) 우연히 마주친 신트 외스타티위스 적십자 본부. 이렇게 소박한 적십자 본부 본 적 있는가.
이제 슬슬 공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하지만 섬 어디에서든 공항까지 15분이면 충분하니 급할 것이 없다. 작은 섬을 관광할 때 좋은 점 중 하나.
공항에 한가롭게 주기된 항공기들. 항공기조차도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아마도 기분 탓이겠지.
그리고 이내 공항에 도착. 공항 터미널까지도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아마도 기분 탓이겠지.
이제는 다시 신트 마르턴으로 돌아갈 시간. 체류 시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단 한 순간도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 들지 않았던, 이 섬의 경험은 앞으로도 자주 생각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