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7월, 약 500년간 잠들어 있던 몬세라트 섬의 Soufrière Hills 화산이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약 15년에 걸쳐 여러 번 대규모 분화를 일으킴에 따라, 이 섬과 섬의 주민들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수도인 Plymouth를 비롯한 다수의 마을과 이 섬의 유일한 공항이 화산재에 완전히 덮여 버렸고, 당시 인구의 2/3 정도 (약 7,000명) 가 다른 섬 또는 영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섬의 남쪽 2/3 정도는 Exclusion Zone 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그나마 과학기술이 발전한 1990년대의 화산 폭발이었던 덕에 사전에 사람들을 잘 대피시킬 수 있었고, 그래서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의 수가 19명에 불과했던 점은 다행 (그나저나 이 정도 큰 분화도 화산폭발지수 (VEI) 기준으로는 3~4에 불과했다 하니, 946년경 분화 시 7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백두산이 다시 분화한다면 그 규모는 감히 상상이 안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섬의 주민들은 이 난관을 잘 극복해 나갔고, 지금도 이 섬을 지속적으로 잘 가꿔가고 있다. 섬에 잔류를 결정한 주민들은 섬의 북쪽으로 이동해 다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고 (수도와 공항도 재건 완료), 화산 분화로 인해 화산암이 대량으로 쌓이게 되자 이의 채취 및 판매가 새로운 수입원으로 등장하고 있다. 화산 활동이 새로운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하지만 1박에 불과해 짧은 일정이었음에도 이 섬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이 섬의 사람들 덕분이었다. 하루종일 성심 성의껏 최대한 많이 보여주려 애썼던 가이드, 화산 분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했던 친절한 카페 주인 (알고 보니 가이드의 아버지), 저녁에 본인의 차로 데리고 나가 피자와 부시럼 (bush rum; 럼을 각종 약초와 함께 숙성시킨 것으로, 이 섬의 전통주 격) 을 함께 먹어준 호텔 주인, 낮에 박물관에서 만났었다는 이유만으로 공짜 술을 연신 따라주던 바텐더 (알고 보니 낮에는 박물관 안내원으로, 밤에는 바텐더로 일했던 것) 등등. 이들의 소박한 친절함이 없었다면 아마 이 섬은 '꼭 다시 한 번 가야할 곳'이 아니라 단순히 '화산 활동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신기한 곳' 정도로만 남았을 것이다.
Antigua 공항에서 출발 준비를 하는 몬세라트행 비행기. 상상 이상으로 오래된 비행기 (1970년 경 생산된 것으로 추정) 임에도 아직도 잘 돌아다니는 것이 경이롭다.
조종사까지 포함해 딱 10명만 탑승 가능한 초소형 기종이다.
Antigua 출발 후 15분 정도면 몬세라트 섬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훼손되지 않은 푸르른 자연을 업고 있지만, 험한 산세와 바닷가 절벽을 보면 지형은 꽤나 거칠어 보인다.
작륙 직전. 평지가 부족해 언덕 위에 공항을 만들어 두었다. 활주로의 길이는 불과 550m 남짓으로 매우 짧다 (그래도 Saba의 활주로 400m보다는 길다).
그래도 공항에 내리고 나니 생각보다는 거친 느낌이 덜하다. 한없이 평온한 느낌.
먼저 호텔에 들러 짐을 푼다. 작고 소박한 호텔이지만 숲속에 놓여 있으니 풍족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아쉽게도 코로나-19 팬데믹 중에 문을 닫았다).
배정 받은 방 앞뜰에서 바라본 풍경도 초록 초록하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여기 있었구나.
이제 가이드와 본격적으로 투어를 시작. 먼저 간단히 커피도 마실 겸 화산 분화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는 Hilltop Coffee House에 들른다.
섬 주민들이 촬영한 화산 분화 관련 사진들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다. 카페 주인의 열성적인 설명은 거들뿐.
몬세라트 국립 박물관에도 잠시 들른다. 무엇이든 소박한 규모라 부담 없이 둘러볼 수 있다.
Lookout Yard Sugar Mill 유적. 과거 설탕을 생산하던 곳이었다.
옛날에는 이렇게 투박한 설비로 사탕수수를 착즙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관광 자원으로 활용중.
Lookout Yard에서 바라본 섬의 북동쪽 Marguerita Bay의 모습. 험준한 절벽이 바닷가까지 이어져 있다.
그리고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언덕 위에 살포시 놓인 공항 활주로가 보인다. 활주로의 평평함 덕분인지 이쪽 방면 경치는 평온함이 주를 이룬다.
이 섬의 원주민들은 이 섬을 Alliouagana라 불렀는데, 이는 '가시 덤불의 땅'이라는 뜻. 그런데 콜럼버스가 1493년에 이 섬을 발견하고 몬세라트라는 이름을 붙인 것.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Exclusion Zone 탐방에 앞서 가이드와 함께 현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소박한 점심을 먹는다.
섬의 남쪽으로 향하다 보니 어느 순간 포장 도로가 끝나고 화산재 날리는 비포장 도로가 시작된다.
안전 지역과 위험 지역의 대략적 경계인 Belham River에 도착. 분화 당시 화산 쇄설류가 강을 타고 내려오면서, 가이드가 들고 있는 사진 속 도로는 모두 묻혀 버렸다.
드디어 Exclusion Zone에 도착. 경찰 및 Montserrat Volcano Observatory (MVO) 의 승인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이드가 사전 승인을 받아두어 무사히 진입 성공. 혹여나 사고 등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니터링 중인 경찰 차량. 위험 지역에 진입하고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드디어 Plymouth에 진입. 1995년부터 활동을 재개한 Soufrière Hills와 묻혀버린 마을의 흔적이 보인다. 아직도 가스를 내뿜고 있어 공기에 황 냄새가 섞여있다.
골재 채취 및 선적을 위해 원래 부두 자리에 구조물만 새로 설치해 두었다.
단, 원래는 부두 지역 해안선만 반도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지만, 화산 쇄설류가 Plymouth 앞바다까지 일부 메워버리면서 해안선이 반도보다도 더 앞으로 전진해버렸다.
그 정도로 화산 쇄설류 분출량이 많았으니, 마을의 대부분 구조물은 지붕만 남기고 모두 파묻혀버린 상황.
그나마 가장자리에 위치해 화산 쇄설류가 덜 쌓인 지역도 어른 하반신 정도 높이까지 쌓였으니, 화산 분화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실감이 간다.
이 건물은 원래 호텔이었는데, 창문으로 밀려 들어온 화산 쇄설류가 어른 키 높이로 쌓여 버렸다. 화장실 변기가 파묻혔다가 벽이 무너져 내리며 드러난 모습이 인상 깊다.
그런데 만약 화산 쇄설류가 그냥 화산재에 불과하다면 뭐가 그리 무서운 것일까.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천장의 철 프레임이 왜 휘어져 있는지 생각해보자.
이 유리 조각이 녹아내린 이유도 같은데, 바로 엄청난 열 때문. 보통 섭씨 1,000도에 육박하기 때문에, 시속 수백 킬로미터의 속도로 지나가는 길목의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것.
그래서 분화 전 사전 대피가 중요. 분화하는 순간 순식간에 몰아닥쳐, 가스와 재에 질식하고 열에 타버릴테니까. 다행히 사전 대피로 사상자 최소화에 성공. 쇼핑카트만 남기고.
이 사무실은 위 마트보다는 조금 더 급박하게 대피했던 듯하다. 그래도 쇄설류가 조금만 유입되어 불타지 않았고, 지금은 관광객에게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전하고 있다.
이제 Plymouth를 떠나, 1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던 Montserrat Springs Hotel 폐허로 이동한다. 하지만 이정도 거리로는 피해를 면하기 힘들었던 모양.
객실 복도에도 제법 두껍게 화산재가 쌓여 있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날아가고 있을테니, 원래는 더 두껍게 쌓였을 터.
호텔 수영장에도 화산재가 두껍게 쌓여버려, 지금은 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가이드가 같은 위치에서 찍혔던 분화 전 평화로운 수영장 사진을 보여준다.
이제 다시 Exclusion Zone에서 나와 Montserrat Volano Observatory (MVO) 에 방문한다. 지금도 화산 활동을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다.
화산에서 거리가 좀 있으면서도 화산이 잘 보이는 위치에 세워져, 화산 활동을 관측하기에는 최적의 장소.
참고로 화산이 아직도 가스와 수증기를 내뿜고 있기 때문에, 화산 위에 구름이 항상 생성되어 있다.
그렇다고 너무 두러워할 상황은 아니다. 현재 경보 단계는 1단계로,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
실제로 화산 쪽을 바라보지 않는 한 이 섬은 그냥 평화로운 열대 낙원처럼 보일 뿐이다.
투어를 마치기 전 마지막으로 Runaway Ghaut에 들러 물을 마신다. 여기에서 물을 마시면 반드시 다시 방문하게 된다는 전설이 있다 하니,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호텔로 돌아오니 마침 태양이 정글과 바다를 배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참. 카리브해에서 '인생샷'을 은근 많이 건졌지만, 그 중에서도 이 사진은 단연 으뜸.
석양을 받아 숲도 구름도 모두 오랜지 빛깔을 띄고 있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모습.
그리고 이내 해가 지고 저녁이 찾아온다. 호텔 주인의 배려 덕분에 피자와 부시럼을 즐길 수 있는 즐거운 저녁이었지만.
다음날 다시 Antigua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 도착. 화산 분화로 기존 공항이 파괴되면서 급히 건설한 대체 공항으로, 2005년 완공 시까지 8년간 이 섬에는 공항이 없었다.
소박한 규모의 터미널이지만 체크인부터 출국 수속과 보안 검색에 이르기까지 할 것은 다 한다.
이제 이 섬을 떠날 시간. 하루였지만 정말 인상 깊은 경험. Runaway Ghaut의 힘을 빌어 꼭 다시 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