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계속 코레일 앱에 접속해 '용산-구례구' 좌석을 검색했지만, 화면은 계속해서 매진이라는 단어만 띄웠다. 게으름에 예약을 미루어 두었던 자신을 탓하며 하는 수 없이 고속버스를 찾아보았다. 여유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버스마저도 내가 잡은 두 좌석이 마지막이었다.
화엄사(華嚴寺)와의 첫 만남은 어느 해 새벽이었다. 훌쩍 내려간 구례 여행길에 연곡사, 운조루, 쌍산재등을 둘러보고, 마산면의 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새벽에 눈이 떠졌는데, 사찰까지 거리를 보니 2km 정도로 아침식사 전에 산책 삼아 다녀올만해 보였다. 평탄한 길을 사뿐사뿐 걸어 불이문을 지나고 경내로 들어서니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싸르락~ 싸르락~ 몇몇 스님의 비질소리가 들렸다. 방문객도 없고 염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절 마당에 싸리비를 든 스님만이 아침안갯속에 서 있는 풍경을 어디서라도 본 적이 있던가? 그 간결함과 단아함을 무슨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막 떠오르기 시작한 키 낮은 햇빛은 사찰의 이곳저곳을 비추며 잠을 깨우고 있었다.
성삼재 휴게소가 생기기 전까지는 노고단 등반의 시작점이었고, 백제후기에 창건했다고 기록되고 있는 천년사찰이며, 각황전과 석등을 비롯한 국보를 다섯 개나 보유하고 있는 조계종의 주요한 성지가 바로 화엄사다. 화엄문화제는 지리산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하는 시월에 이곳에서 주관하는 문화행사로 국보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공개, 스님과의 둘레길 산책, 비건요리공양, 산사음악회등으로 구성된다. 보제루 앞 너른 마당에 무대가 설치되고 성악, 크로스오버, 록까지 이날만은 거리낌 없이 지리산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것이다.
화엄사에서 음악회 날짜를 공개하면, 나는 그 아랫동네에 숙소를 예약해 두고 연주자 리스트가 올라오기를 기다린다. 내 가을 여행의 시작이다. 올해는 팬데믹 이후에 처음으로 내려가는 길이라 평소보다 몇 배로 더 설레었다. 예상대로 구례 읍내는 한산했지만, 산속의 사찰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마당에 준비된 플라스틱 의자는 이미 다 채워졌고, 각황전 앞 계단에도 빈자리가 없었다. 구례행 기차표의 매진상황이 다 이 때문이었을까… 생각하고 있을 즈음, 해가 저물고 레이저 불빛이 하늘로 쏘아졌다. '지금이다!' 가로세로 8x12m의 거대한 탱화가 내걸린 무대를 배경으로 스님의 타종소리와 함께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인도에서 온 무용수들이 전통무를 선보이고, 비파연주가 이어졌다. 불교 포교활동을 하는 젊은이들로 구성된 뮤지컬 합창단과 비보이도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내려갔다. 절에서 이런 음악을 들은 것이라고 상상이나 해보았나? 이윽고, 장사익 선생이 올라왔다.
‘산 설고, 물 설고, 낯도 선 땅에, 아버지 모셔드리고 떠나온 밤…’
그예 이 대목에서 목이 콱 막히고 말았다. 3년 전, 중환자실에 실려가 두 달 만에 마지막 인사도 없이 가신 내 아버지 때문이었다. 응급수술을 몇 번이나 받으면서도 팬데믹 기간이라 단 한 번도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린 것이다. 여기서 눈물이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 고개를 들어 겨우 삼키고 버텼다. 다행히 이후에는 이런저런 농담을 섞어 무대를 흥겹게 만들었고, 이어진 김주리 가수와 서도밴드의 무대는 극도의 신남 그 자체였다. 음악회의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음에도 사람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고 떼창으로 아티스트의 장단에 호응하고 있었다. 뜨거웠던 시간이 모두 끝나고, 사찰은 빠른 속도로 비워졌다.
숙소로 걸어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아! 여기에 살고 싶다.’
나는 이것이 문제다. 통영에 가면 통영에 살고 싶고, 평창에 가면 평창에 살고 싶고, 지리산에 오면 지리산에 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서울을 떠나기 싫은 마음은 또 어찌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