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직 다이어리-3

by 포슬린

회사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내 첫 직장에서 보통 퇴사일에는 자리 정리와 비품 반납, 인사 등을 하고 오전 중 들어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하지만 퇴사일 전날 송별회를 거하게 치른 나는, 8년 재직기간 중 ‘최악’의 상태로 마지막 출근을 했다.

눈을 떠보니 10시였고, 스스로에게 온갖 탄식 섞인 욕을 뱉었다. 물론 내 퇴사일에 몇 시에 출근하고 퇴근하는지는 남들의 관심 밖 일일 테지만, 꼭 인사를 해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버스 안에서 멀미로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해장용 과일주스를 시켰다. 그렇게 (술이 반쯤 취한 채) 양손 묵직하게 회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었다. 자리에 있는 분들만이라도 찾아가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근무하며 몇 마디 안 해본 타 팀 신입 직원들, 항상 우리 팀 일이라면 질색하던 누군가도 모두 그때는 왜 인지 손을 잡고 인사를 해주더라. 서랍을 뒤적이며 간식거리를 꺼내주던 사람, 마카롱, 아로마 오일 등 예상치 못한 선물을 보내 준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누군가 헤어짐을 알리러 올 때, 이렇게 진심으로 다정하게 대해주었나?'


내가 퇴사하는 날에야 비로소 그런 반성을 하게 됐다. 그간 퇴사 인사를 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며, 나는 얼마나 대단하게 바빠서 이걸 못 했을까 라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들자마자 자리에 돌아와 종이를 찾았다. 타이핑이 보편화된 요즘 시대에 걸맞게 내 필체는 꽤 악필이지만, 표현 못했던 고마움을 짧게나마 적어서 주위 직원들의 자리에 올려두었다.


조금 유난스러울 수 있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미처 뵙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두 다 친했던 사람들은 아니다. 적어도 앞으로 내가 없어진 줄 모르고 나를 찾는 일은 없겠지. 그렇게 약 40여명 정도와 통화를 마친 끝에 집에 도착했다. 마치 결혼식 후 답례 전화 돌리던 때를 연상케 했는데, 차이점이라면 슬프게도 그게 마지막 통화일 사람들이 대부분일거란 거다.


집에 돌아와 짐을 구겨 넣은 나이키 쇼핑백 하나를 퉁 내려놓으니, 비로소 그간의 회사생활이 마무리된 느낌이 들었다. 벌어진 가방 틈에서 이제는 추억팔이용이 될 것 같은 나의 직급 별 명함과 명함집, 팀원들끼리 주고받던 귀여운 메모지들과 펜 등이 굴러 나왔다.




퇴사 9개월 후 돌이켜보면, 왜 직장생활은 시작만큼 마무리도 중요하다고들 말하는지 깨달았다.

그 사이 명함집에 있던 전 직장 동료들과 거래처들에 문의할 일이 있었다. 적어도 오랜만에 다시 연락하는게 영 불편하지는 않았다. 연말 연시에 대표님과 팀장님에게도 식사자리 제안이 오기도 했다.


만약 퇴사하던 날의 내가 아주 조용히 짐만 챙겨서 나왔대도, 숙취로 출근하지 않았다 해도 내 앞날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거다.

그렇지만 작게나마 감사의 마음을 표했던 이유는, 나는 대개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다지 친하지 않던 사람들도 퇴사할 때 내게 웃으며 인사해 준 모습이 기억이 난다. 예전에 저 사람과는 분명 뭔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기억하려 애쓰지 않는다. 떠나는 마당에 뭐가 중요하겠나.


같은 이치로 나의 마지막 날 모습이 그들에게 어떻게 기억될지는 결국 내가 하기 나름이다. 살면서 절대 다시 안 볼 사람들 같은가? 그것까지는 내가 정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최선을 다하자. 생각해보면, 세상이 그렇게 넓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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