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른이 돼 가고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은 새해 카운트다운을 할 때도, 친구의 축의금을 낼 때도, 어느 날 과메기가 맛있어진 순간도 아니다. 그저 회사에 있는 모든 사소한 순간이다.
월급쟁이건 사업자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제 몫을 다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어른이 된다는 의미다.
미성년자 시절부터 건물주로 평생을 불로소득으로만 산다면 제대로 어른이 될 ‘기회’가 있을까.
더 이어가기 전에, 그래서 내 기준 ‘어른이 무엇이냐 ‘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어른은,
-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의식을 갖고,
- 남들과 어우러질 수 있는 배려와 사회성이 있으며
- 세상이 주는 시련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이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정신 근육이 단련될 수 있다. 나는 이런 근육들을 잘 관리하고 풀어주는 과정에서 어른이 된다고 본다. 언제나 피곤한 사내 정치, 이해 안 가는 회사 전략, 이유 없이 내가 수습해야 하는 일들, 늦게까지 이어지는 회식자리.. 여러 상식 밖의 일들이 도사리고 있는 전쟁터 속으로 매일 뛰어들고 있지 않나. 이 전쟁터는 나만 원하면 언제든 빠져나올 수 있다. 단지 우리는 그걸 '어른스럽게' 견디고 이겨내는 것뿐이다. 그러다 보면, 설령 20대의 풋풋함과 순수함을 유지하고 싶을지라도, 내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진화해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럼 굳이 왜 어른이 되어야 할까.
일을 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쯤 되면 남을 맞춰주면서 만날 여유가 없다. 자신과 비슷하게 삶을 헤쳐나가는 동지들과 짬짬이 시간을 내서 고충을 나누고, 서로에게 위안을 얻을 뿐이다. 결국 오래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대하는 태도가 비슷한 사람들이다. 주위에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위에 묘사한 어른스러운 사람에 부합할 확률이 높다. 그들이 오래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외로운 어린이로 살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 어른이 되자. 신체 나이를 떠나서, 정신적으로 잘 여물고 내면이 강한 사람 말이다. 기반을 잘 다져서 비바람에도 버티는 나무가 되고, 아끼는 사람들에게도 그늘이 되어주자. 이로써 공, 사 양면에서 나라는 존재가 지속될 수 있다 생각한다.
연휴가 끝나버린 월요일, 월급 외에 직장생활이 주는 다른 의미를 찾고 싶었다.
(솔직히 건물주는 부럽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