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의 부재
이직 후 9개월. 웬만한 업무 강도와 시스템 변화에는 적응해 왔지만, '사람 경험'은 아직도 매일 새롭다.
거대한 조직 안에 다양한 목적을 갖고 입사한 수많은 사람들.
나름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와중에 이리저리 부딪히고 데어가며 질서를 배운다. 사람들만 보자면 마치 혼란한 하노이 시내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들을 연상케 한다. 각자 원하는 방향과 속도로 질주하는 그 틈 사이, 나도 그 대열에 올라타 나의 방향대로 일단 달리고 있다. 물론 위협하듯 냅다 달려드는 오토바이에는 경적을 울리고 욕도 하고 싶다. 하지만 이 질서를 깨우치면, 결국 내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왜냐면 그만큼 일이 고되고 남까지 의식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렇게 만드는 걸까?
상대평가라는 인사 시스템이? 아니면 과한 업무량이?
따뜻한 동료애가 넘치는 회사인 양 붙어 있는 사내 포스터는 되려 역설적이다. 정말 누군가에게는 이런 공간일까? 출근길에도, 점심시간에도, 여러 인종들이 한데 모여 조화로운 비빔밥 정신을 표방하지만, 전혀 섞이지 않는 중국식 볶음밥 같다. 이렇게 혼란한 거리통에서 약간의 휴머니즘을 찾으려는 건 내 욕심일까. 그래도 모든 곳이 결국 휴먼으로 이루어진 조직이지 않나. 내 기준 일 잘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서로에 대한 존중보다 의심과 불신이 가득할까. 이직하면서 예상했던 많은 어려움 중 ‘휴머니즘의 부재’는 없었기 때문에, 유독 아쉬운 부분이다.
지인이 근무하고 있거나, 블라인드를 열심히 뒤지지 않는 이상, 하늘의 천운에 맡기는게 직장에서의 인복이다. 관두지 않을 거면 그 안에서 적응해 나가야지 어쩌겠나. 애써 인간 관계를 쌓으려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기왕 같은 공간에서 고생하는 동료인 만큼 서로 불쌍하게 생각하고 잘 지내볼 필요가 있다.
하노이 밤거리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떼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지만,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에 비뚤어진 내 사이드미러를 고쳐줬던 누군가도 있었다. 결국 서로 사고내지 않고, 적당히 잘, 안전 운전 하면서 달리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