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뜻대로 되는 일은 없다

어쩔 수 없지 …

by 포슬린

출근길 버스가 예정보다 빨리 와서 놓쳤을 때

허탈한 채 귀에 꽂은 에어팟이 바로 죽어버렸을 때

그런데 충전 케이블이 다른 가방에 있을 때


비바람에 편의점에서 산 우산이 종이처럼 뒤집힐 때

레인부츠를 신었는데도 종아리를 타고 빗물이 들어올 때

만신창이 상태인데 챙겨 나온 머리끈이 안 보일 때


당연히 완료되었어야 하는 일이 안 되어있을 때

알아보니 ‘에이 설마’ 싶은 이유였을 때

해결해야 하는 사람은 그날따라 연차일 때

하지만 그날까지 해결해야 하는 일일 때


해 뒀던 일이 내부 사정으로 엎어졌을 때

그런데 재 작업을 아무렇지 않게 요청받을 때

나중에 알고 보니 하지 않아도 되었던 일일 때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고, 뜻하지 않은 시련을 마주하고.. 극복하고.. 노래 가사나 책을 보면 많이 보이는 문구다.

그렇지만 거액의 투자 실패, 파혼, 직장 내 좌천 등 인생의 획을 긋는 굵직한 시련만 시련이 아니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자잘한 모든 일이 곧 시련이고, 누구나 그걸 극복해 나가며 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생각'이라는 게 우주의 질서에서 얼마나 무의미한가. 그냥 단편적인 개인의 의도, 희망 내지 믿음일 뿐이다.

일상에서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무수한 일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생각의 영점을 반대로 맞추게 되었다.

원래 이 세상에서 내 생각대로 되는 일은 없는 거였다. 항상 무슨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오늘도 예외일 수 없다.


생각이 더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이제 계획대로 착착 들어맞는 일이 생기면 되려 ‘이상한 쾌감’을 느낀다.

금요일 점심을 주문했는데, 정확히 원하는 시간에 원하던 장소로, 메뉴 누락 없이 냅킨까지 완벽하게 받았다.

너무나 순조로워서, 그 주 회사에서 벌어진 일 중 가장 완벽한 일로 회자된다.


생각하는 버릇을 고치기 쉽진 않지만,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무탈'의 기준은 조금 낮춰 볼 필요가 있겠다.

웬만한 문제, 불편함, 억울함, 갈등은 디폴트로 내게 원래 주어진 것 마냥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치 뭐든 잘 소화시켜서 장기가 진화한 게 아니냐는 말을 듣는 기안 84처럼,

내게 주어진 어떤 걸 부정하고 피하기보다, 삼켜야 될 건 시원하게 잘 삼키고 배출할 줄 아는 게 필요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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