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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onthewall Sep 25. 2023

인디아나 존스 5 : 운명의 다이얼 단평


인디아나 존스 영화지만, 실제로 인디아나 존스가 주도적으로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단순히 배우가 고령이라서 피지컬한 액션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물의 재치, 영웅적 결단으로 눈앞에 닥친 위기를 타개하는 그런 모습 자체를 영화에서 보기 어렵다. 일체의 위기가 우스꽝스러운 요행을 통해서만 극복되고, 그 안에서 인디아나 존스의 역할은 영화의 명목상 주인공이라는 것 밖에 없다. 주인공 일행은 러닝 타임 내내 보물을 노리는 나치 잔당들에게 수동적으로 쫓기기만 하고, 주인공 일행에게 일방적인 우위를 점하던 악당들은 최후의 순간 자신들의 실책으로 말미암아 허무하게 자멸한다. 그러면 이게 인디아나 존스의 이야기여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주인공이 다른 누구였어도 달라질 게 없었을 영화다. 왜냐하면 캐릭터의 고유한 성격이 실질적으로 영화의 흐름에 개입하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인디아나 존스와 그 일행은 매번 닥쳐오는 위험에 대해 위험의 본성 자체에서 합목적적으로 자명하게 유도되는 반응을 내어놓을 뿐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어드벤처, 탐험물의 특성은 매우 희박하다. 다름 아닌, 그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인데 유적 탐방보다는 추격전의 비중이 훨씬 높다. 그 자체의 완성도는 낮은 편이 아니지만, 아무래도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기대하는 바는 아니다. 이런 건 인디아나 존스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빈 디젤, 제이슨 스타뎀 같은 배우들을 데리고 찍어야 할 영화를 굳이 다 늙은 해리슨 포드를 데리고 찍었어야 했나 싶다. 쫓고 쫓기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무언가를 보여주기에는 배우가 너무 늙고 약해졌다. 화면에 요란한 움직임이 나타나는 와중에도 해리슨 포드, 은퇴를 앞둔 노교수의 움직임에는 그만한 분주함이 없다.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유물이 영화의 핵심 소재이건만, 영화의 최후반부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쓰임을 받고 금방 퇴장한다. 게다가 그를 통해 구현된 과거의 경험은 현재와 철저히 양상적으로 단절되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하나의 신비 체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 자체가 유물에 그러한 권능이 깃들어 있고, 따라서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에만 기능적으로 소모될 뿐이다. 존스 교수가 실질적으로 서사상의 변곡을 만들지 못하는 명목상의 주인공에 불과한 것처럼, 서사의 지향점이 되는 유물 역시도, 일련의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마련된 공허한 모티브에 불과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시리즈의 최종장인 만큼, 팬무비로서의 구색을 갖추고는 있으나 단지 그 뿐이다. 시리즈의 주요 인물들, 전작들 가운데 특정 시점을 연상케하는 장면들이 몇몇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큰 줄기와는 조금도 맞닿지 않는 팬서비스를 위한 팬서비스, 카메오 수준의 연출에 그친다. 영화는 마치 관객에게 적선을 베푸는 것처럼 얄팍한 의도로 향수를 자극한다. 보다 보면 "너희들이 아는거 나왔으니까 반갑지?"하는 감독의 말이 들리는 듯 하다. 최종장답게 시리즈를 종결 짓는다는 느낌도 희박하다. 인디아나 존스는 은퇴 이후에도 변함없이 자기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중절모와 채찍과 함께, 잇따를 모험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때인데 불필요한 재회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으니, 아름다워야 할 작별이 아름다울 수가 없다.


시리즈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닌, 다른 감독이 제작한 인디아나 존스 작품이었으나, 이 실험은 시리즈의 네임 밸류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흥행 실적에서도 입증되듯이 철저한 실패로 끝이 났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팬을 자처할 만큼 큰 애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영화사상 가장 성공적인 시리즈 중의 하나가 이런 식으로 끝난다는 게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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