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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onthewall Aug 07. 2023

정해진 공식대로의 <비공식작전>


<비공식작전>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위기, 난관이랄 게 없다. 내전 지역에서 피랍된 외교관을 구출하는 임무가 시작되고 거액의 몸값을 노린 현지의 공항 경비대, 테러리스트 조직이 끼어든다. 여기에 독재 정권에 아부하기 위해 서로 공을 다투는 관료 조직 사이의 알력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개입하면서 상황의 구도 자체는 거창하게 설정되는 한편, 그 모든 문제가 너무나도 쉽게, 순리대로 해소된다. 실질적인 난관, 위기가 없으니 서사를 지탱하는 긴장도 없다. 영화는 아무런 저항없이 운명처럼 예정된, 모두가 예측할 수 있는 해피 엔딩을 향해 나아간다.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연출되는 원초적 쾌락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구조 안에서 각각의 단계가 이미 예정된 수순인 것처럼 무난하게, 맥없이 흘러만 간다.


주인공 일행을 노리는 두 적대 세력들은 피랍된 서기관의 몸값에 관한 공동의 이해 관계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결코 같은 전선을 공유하는 일이 없다. 추적은 언제나 한 번에 한 세력에 의해서, 한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양자는 공동의 목표, 일점을 향해 수렴하지 않고 각자 점유하고 있는 위치에서 바깥으로 발산하기만 한다. 그래서 일견 두 세력 사이에 끼어서 양면의 투쟁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인물들에게 가해지는 상황의 압력은 언제나 한 단면에 국한되어 있다. 포위 의식siege mentality이 인물들의 심리를 지배하고 있는 한편, 실제 포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퇴양난'인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항상 도주로가 열려있다. 추적자들은 이민준(하정우) 일행을 뒤따르기만 할뿐, 그들이 향해야 할 국경 너머의 열린 공간으로 부터 접근해 가로막지는 못한다. 돌파해야 할 난관, 장해를 전제하지 않고 다만 한 쪽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인물들을 몰고 가는 위기는 실질적으로 서사가 각각의 단계에서 다음의 국면으로 이행하기 위한 하나의 계기에 불과한 것으로 기능한다.


임무 과정에서의 절차적 문제를 조율하는 관료 조직의 경직성과 안기부의 견제적 개입 역시도, 이민준 일행의 운신에 실질적인 제약을 가하지는 못한다. 이는 내전 지대의 무정부 상태, 관료, 정치 권력의 권외에서 그들이 어떠한 (사실 애초부터 받은 적이 없었던) 외부의 조력을 구할 수 없음을 재차 확인하는 사태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써 문제가 심화되었다는 건 어디까지나 그렇게 작중에서 가정되고 설명된다는 선에서만 그러하다. 왜냐하면 본국 사무실에서 결재 도장이나 찍는 '책상물림'들의 결정이 대사관마저도 철수한 무법 지대에서 활동하는 이민준에게 영향을 미칠 방법은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과장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민준은 영화 내내 행동의 주도권을 놓지 않는다. 상황의 압력에 의해 강권 받지 않는다.


두 거대 관료 조직(외교부, 안기부) 사이의 이권 다툼으로 초래되는 일체의 체계적 난점이 그저 선의를 가진 개인들의 결단을 통해, 순전한 도덕적인 당위의 차원에서 해소되는 과정은 실로 나이브하기 그지없다. 이때 이견의 여지없이 자명한 정의가 그 반대편의 명백한 불의에 의해 지연되고 있다는 문제 의식은 바로 그러한 문제 의식 자체에 의해, 즉, 지연된 정의가 곧 불의라는 전제에 의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 해소된다. 극중에서 일련의 현실적 제약, 정무적 이해 관계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고 가정된 자명한 옳음의 실천은 실제로는 이미 모든 게 구체적인 가능성의 형태로 예시된 상태에서 다만 늦추어져 있다가 적시에 소환되기만 한다. 이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 같았으면 뭐하러 그토록 많은 분량을 할애해가면서 연출을 한 건지도 알 수가 없다. 이는 <비공식작전>만이 아닌, 모든 시스템적 문제를 지극히 개인적인 선악의 문제로 환원하고 단순화하여 다루는 한국 영화계 전체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민준의 조력자, 김판수(주지훈)는 왜 '사기꾼'이었어야 했을까? 그의 사기꾼적 기질 및 이력은 사실상 극을 진전 시키는 데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사기꾼으로서 자기의 생존과 (금전적) 이익에 관해 편향된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타인과의 인간적인 신뢰를 구축하지 못하는 그의 기질적 결함은 사람 목숨 앞에 다른 어떤 것도 우선할 수 없다는 (본작이 여러 차례에 걸쳐 분명히 나타내는) 휴머니즘적 당위에 의해 간단히 지양된다. 김판수의 사기꾼 기질은 그것이 궁극적으로 이민준과의 긴밀한 유대를 구축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만 유효하다. 그의 '임시적인' 결함은 극 전체를 놓고 볼때 사소하기 그지없는, 무-기능적인 에피소드를 양산하면서 서사의 진행을 늦추기만 한다. 결국 김판수는 누구도 배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민준도 '사기꾼'인 그를 불신하지 않는다.) 그러기는 커녕, 사기꾼이라는 인간이 자기의 이익과는 무관한 철저한 선의에 입각하여 이민준을 돕는다. 극 초반 출세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속물로 비춰지던 이민준이 결국 타인을 위해 자기를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전형적인 선인으로 밝혀지듯이, 김판수라는 인물도 영화 전체를 놓고 볼때 스스로를 악인으로 가장할 뿐인 현신적인 조력자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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