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의 <범죄도시> 시리즈가 그래왔듯이, 3편도 아무런 거칠 것 없이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밀고 나간다. 모든 문제가 명쾌하고 수수께끼가 없다. 구차한 설명도 없다. 애초에 그런 게 필요하지도 않다. 시리즈 최초로 투 톱 메인 빌런을 기용하여 삼파전의 양상으로 서사를 전개하는데, 근본적으로 두 빌런의 이해 관계가 하나의 동일한 지점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주인공 마석도의 발길이 닿는대로 사태의 실마리가 술술 풀리고, 결국 그의 (사람의 주먹이라기 보다는 '대포'에 가까워 보이는) 펀치 한 방에 모든 게 끝이 난다. 더 말할 것도 없고, 예상할 수 있는 대로의 해피 엔딩. 하지만 모두가 그걸 바라지 않던가.
이렇다 할 반전도, 위기도 없지만, 그럼에도 재밌다. 영화를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것도 능력은 능력이다. 어쩌면 범인은 도달할 수 없는 재능의 경지인지도 모른다. 통상의 액션 영화 시리즈는 주역과 빌런 사이의 '힘의 균형' 내지는 모종의 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서스펜스'를 만들어내지만(<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에단 헌트가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 하는 것처럼) <범죄도시> 시리즈에는 그런 게 없다. 마석도는 항상 '쉽게' 이기기만 한다. 몇 합의 공격을 피하고 대포 소리가 나는 펀치 몇 방 갈겨주면 상황이 종료된다. 메인 빌런과의 대결에서도 마석도는 다만 그의 '방탄 근육' 위에 몇 개의 스크래치만을 허락하고 (마석도는 설령 칼에 맞아도 모기한테 몇 방 물린듯이 대수롭지 않게 털어내고 싸움을 이어나간다.) 조금의 어려움없이 상대를 쓰러뜨린다. 아니, '날려버린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대단한 점은 그렇게 쉽게 이기기만 하는데도 전혀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출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는데, 마치 권투 경기의 레퍼리처럼 싸움의 현장 한복판에서 직접 대결을 목도하는 듯이 현장감 넘치는 구도를 고수하는 한편, 매번의 동작과 타격, 액션의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낸다. 자칫 영상이 지저분해지기 쉬운 핸드헬드 캠을 활용하면서도 이미지가 정돈되어 있고, 동작 하나 하나를 충실하고 선명하게 따라간다. 즉, 액션의 임팩트를 강조하고 집약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점상에 제약을 가하는 셰이키 캠 기법의 모범을 보여준다. 전작 감독이었던 이상용과 마동석이 이번에도 합을 맞췄는데, 액션 연출만 놓고보면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범죄도시 3>는 다소 투박한 면이 없지 않았던 전작들에 비해 훨씬 세련되고 스타일리쉬한 액션을 보여준다. 이제 마동석이 일방적으로 막고 패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무언가 합을 주고 받는 테크니컬함이 있다. (결국 마석도는 하나도 다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눈속임에 가까운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마석도가 과거에 복싱을 했다는 설정이 붙으면서 마이크 타이슨을 연상시키는 현란한 위빙과 솔리드한 펀치 컴비네이션 위주의 본격적인 복싱 테크닉이 액션의 중핵을 차지하는 한편, 본작에서 나오는 빌런들은 막싸움꾼에 가까웠던 전작의 빌런들(장첸, 강해상)에 비해 비교적 격투의 스타일, 성향이 확고하다.
아무래도 리키, 주성철 두 메인 빌런의 카리스마가 전작의 강해상, 장첸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전략적으로 잔혹성을 과시하며 뒷세계를 휘어잡았던 장첸이나 반대로 아무런 대전략없이 충동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이코패스였던 강해상에 비해, 리키, 주성철은 비교적 나름의 합리적인 동기에 충실한 캐릭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각자의 캐릭터가 잘잡혀 있어서 그게 큰 단점으로까지 부각되지는 않는다. 리키는 조직의 논리의 충실한 한편, (마치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든 드러내야 한다는 듯이) '굳이' 주무기로 일본도를 사용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야쿠자 캐릭터의 어떤 전형을 따르고 있고, 주성철은 그 비열하고 이기적인 성정에 걸맞게, 주변의 지형지물, 기물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스트리트 파이팅을 한다.
액션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룬 것에 비해, 영화의 유-우머 포인트는 지극히 쌈마이해졌다. 원래 고상한 위트를 자랑하는 시리즈는 아니었지만, 이번 작 들어서 그게 좀 심하다. 대부분의 웃음 포인트가 마석도라는 캐릭터의 비상식적인 무식함, 무엇이든 두들겨 패서 해결을 보는 폭력성과 위압감에서 비롯하는데, 웃긴 게 아니라 실소가 나온다. 그렇게 정립된 패턴의 문제가 아니라, 그 패턴 안에서도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변주만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나빼고는 다 웃었던 걸 보면 내가 문제인듯. 이 부분에 대해서 너무 안좋게만 말한 것 같아서 약간의 변호를 하자면, 사실 다수 대중을 공략하는 상업 영화는 어느정도 상업적으로 검증된 코드를 따를 수밖에 없다. 마동석의 험악한 인상과 근육질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마블리'적 면모를 강조하는 패턴이 이제는 진부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게 그런 것이니 계속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걸 단순히 답습하려 하지 않고 (전작들로부터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익숙한 맥락을 조금씩 비틀어서 나름의 변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는 칭찬할만 하다. 새롭지 않고 위트 있지도 않지만, 적어도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한 것이니까. 최소한의 성의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 최소한조차 하지 않는 영화들이 있다.
종합적으로,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을 영리하게, 기술적으로 잘 캐치해서 만든 재밌는 영화다. 보통 시리즈물이 3편을 넘어가면 어느정도 패턴이 고착되면서 매너리즘을 피해가기가 어려운데, 범죄도시는 그 패턴 자체의 설득력이 너무나도 강력하다. 이미 수없이 반복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석도가 누군가를 두들겨 팰 때의 후련한 타격감이 시쳇말로 '치트키'와도 같은 효험을 발휘한다. 마치 야구에서 스타디움의 2층, 3층 객석 높이까지 가닿는 거대한 궤적의 홈런이 볼때마다 비슷해 보여도 매번 장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같다. 전작들을 보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주연을 겸한 마동석의 제작자로서의 센스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이대로면 이 시리즈가 망할 일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