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일랜드>는 이식 장기를 공급할 목적으로 양산된 복제 인간들이, 본인들이 태어난 시설에서 탈출하여 이식 장기의 공급처가 아닌, 한 명의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쟁취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이다. 사실 영화에서 복제 인간이라는 소재는 일련의 탈출극을 연출하기 위한 계기로서의 모티브에 지나지 않는다. 구체적인 내용면에서도 <아일랜드>는 복제 인간에 관한 윤리적 난점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기 보다, 스펙터클의 묘사에 집중하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서의 접근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일랜드>는 개인이 (설령 그가 실험실 안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일지라도) 독립된 인격체로 존속하고 있는 이상, 개인은 그 자신의 불가침한 권리를 지닌다는 주제 의식의 측면에서 (흥미 본위적인 작품으로서는) 꽤나 일관된 견해를 관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주제 의식이 서사 과정 전체를 궁극적으로 추동하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 점에서 <아일랜드>는 그 노골적인 '할리우드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분명한 윤리 의식적 관점을 내포한 작품이라 평할 수 있다. 비록 그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증을 제기하기 보다는 시각적 충격을 통한 감상적 호소에 그치기는 하지만 말이다.
1. 본 영화에 등장하는 복제 인간들은 모두 복제 장기 공급을 위해 세워진 시설에 격리되어 있으며, 이들에게 외출은 허락되지 않는다. 또 복제 인간들 스스로도, 외부 세계가 생물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어 있다는 시설 측의 선전에 의해서 바깥으로 나가면 안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들 모두는 정기적인 추첨을 통해 선발된 인원들이 보내진다고 하는 지상 낙원, ‘아일랜드’에 가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아일랜드’라는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설 측의 선전에 의해서 다들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아일랜드에 도달한 인원은 아무도 없다. '아일랜드'로 갈 인원을 선발하는 일련의 추첨 과정은 각 개체의 복제를 의뢰한 의뢰인이 장기를 필요로 한다고 통보해 왔을 때, 장기를 적출할 인원을 선발하는 과정일 뿐이다. 물론 장기를 적출한 인원들은 절차에 따라서 ‘폐기’된다. 복제 인간들 중에서는 대리모의 역할을 하는 개체도 있다. 이 개체들도 출산일이 되면 추첨에 선발되어 의뢰인을 위한 아이를 낳고, 마찬가지로 폐기된다.
시설 내부의 복제 인간들은 코드로 된 이름을 부여받고, 기계 안에서 천편일률적인 기억을 주입받는다. 또한 과도한 호기심, 지능 수준은 효율적인 관리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이들의 지능은 청소년 수준의 지능으로 조정되어 있다. (청소년 시기야 말로 평균적으로 인간이 가장 강한 호기심을 가지는 시기가 아닌가 싶긴 하다마는) 두 주인공이 시설을 탈출하는 도중에 다다르는, 수백, 수천개의 캡슐 안에서 새로운 복제 인간들이 배양되고 있는 방의 모습은 실로 이들이 ‘공장제’ 인간임을 보여준다. 이들에게 보장되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도, 이들에게 베푸는 동정심이나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보통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해야만 장기의 상태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다는 (다분히 작가 편의주의적인 의도가 깃들어 있는) 지극히 상업적인 이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고 양육되어 본래의 쓸모를 다하면 폐기되는 운명에 지배 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복제 인간들은 (일찍이 반-기술 주의자들이 경고해 왔던) 기술에 의해 도구화된 인간의 모범적인 전형이다. 지금 누리고 있는 형태의 삶 이외에 다른 가능한 삶은 존재하지 않고, 얌전히 때를 기다리다 보면 지상 낙원 ‘아일랜드’로 향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이들의 삶을 지배하는 총체적인 기만은 이들이 하나의 상품으로서 소비된다는 사실 자체만큼이나 중대한 도덕적 문제를 암시한다. 요컨대, 작중의 복제 인간들은 어떤 강압적인 통제 수단이 요청될 만큼, 온전한 자유 의지를 지닌 인격체로 간주되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가축처럼, 다만 몇 가지의 얕은 거짓말로 다스릴 수 있는 교묘한 관리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을 따름이다.
이렇게 철저히 이용 당하다가 용도를 다하면 버려지는 신체의 이미지들은 현대 사회의 규모화, 체계화된 육체 노동에 대한 은유로 해석될 수도 있다. 포드Ford 사의 포드 시스템으로 처음 정립된 현대 사회의 대량 생산 체제, 저숙련 육체 노동은 근로자의 신체를 일정한 생산 체계 내부의 집적된 기능 요소의 일부로 종속시킴으로서 작동한다. 노동자는 주어진 일, 목표를 계약 조건 하에서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전에 설정된 구체적인 생산 절차를 그대로 이행함으로서 생산 과정의 구조적 실재를 이루게 된다.
그런데 그 절차는 생산 과정을 가능한 한 최소 단위로 세분, 단순화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것을 일정한 효율로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생산 과정에서는 근로자가 일에 투여하는 시간과 노력이 추상화되고 개인의 개성은 무화되고 만다. 개인을 생산 메커니즘을 이루는 기관적 요소로써 전용하는 체계 속에서, 근로자는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부품과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저숙련 육체 노동자의 불안한 고용 지위는 이처럼 그가 하는 일을 다른 어느 누구도 할 수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근로자 개개인 자체가 아닌, 그가 지닌 인간 신체의 일반적 기능만이 생산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또한 계약 근로자의 노동은 자체로 파생적인 인신 매매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근로 계약에 의해서 일정 기간동안 근로자의 신체와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할 권한이 사용자에게 귀속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그 심각성은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과 같은 타의에 의한 장기 매매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단순 노무자들이 개인으로서의 개성, 창의력 따위를 발휘할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할 만한 전문 기술, 자격 요건 등을 가지지 못해, 자기의 직장을 선택할 자유를 행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현대의 인력 집약적 생산 과정은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과 같은 구조적 강압과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지는 못한다.
2. <아일랜드>에서 복제 인간 개체를 만드는 데에는 500만 달러라는 거액의 비용이 든다고 설명된다. 때문에 유명 모델, 스포츠 스타와 같은 극소수의 부자들이 인간 복제 서비스의 주 이용 고객으로 묘사된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생명 공학의 발달이 전개할 빈부 격차의 또 다른 국면을 암시한다. 대부분의 최첨단 기술이 그러하듯이, 혁명적인 발전을 이룩한 생명 공학 기술은 (적어도 그것이 널리 보급될 때까지는 한동안) 엄청난 비용을 수반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자연히 그 수혜를 소수의 부자들만이 누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유전자 조작을 통한 외모, 질병, 지능, 운동 능력 등에 관여하는 유전 형질 개선, 맞춤 아기 수정fertilization 서비스와 같은 생명 공학 기술들은, 유전자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조건에 관여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단순히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본질적인 우열의 격차를 초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빈부의 격차가 곧 생물학적인 우열 격차에 직결될 것이다. 이제 부자는 많은 자산을 가진 사람일 뿐만 아니라, 유전적으로도 무결한 생물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조성된 생물학적인 빈부의 격차는 기존의 물질적 빈부의 격차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회적 갈등 국면을 조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적 빈부의 격차가 개개인의 본질적 우열성을 담지하지는 않지만(비록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개인이 어떤 방면에서 뛰어난 자질과 품성을 지니고 있을 수는 있다.), 유전적 형질 차이는 개인이 가진 잠재력 그 자체를 오롯이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뛰어난 개인과 열등한 개인간의 구분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지점인 것이다.
물론 이런 기술이 상용화되어 있지 않은 지금도, 우리는 개개인이 모두 질적으로 평등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다. 우리는 이미 교육을 통해서도 좁힐 수가 없는 타고난 잠재력, 재능의 격차, 그리고 성향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격차, 차이가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서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우연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비용을 들여서 얼마든지 수정 및 개선될 수 있게 된다면, 그러한 차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일환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생물학적 열등함의 증표, 내지는 숭배 되어야 마땅한 우월성의 표지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유전자 레벨에서 결정된 '이견의 여지없이' 나타나는 우열에 근거하여 생물학적인 승자의 오만함이 정당화 될 것이고, 반대로 패자에게는 어떠한 동정의 여지도 없게 될 것이다.
3. 작중 등장하는 복제 인간들은 모두, 원본인 의뢰인들과 동일한 외모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는, 생물학적인 동일인으로 묘사된다. 때문에, 결말부에서 주인공 링컨-6 에코가 그의 의뢰인, 원본격의 인물과 함께 (탈출한 복제 인간을 잡기 위해서) 시설 측이 파견한 용병과 대적할 때, 어느 쪽이 복제 인간이 아닌 진짜 인간인지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생물학적 특징으로는 사실 양자간의 구분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링컨-6 에코가 복제 인간들이 착용하는 식별 팔찌를 의뢰인에게 착용 시키는 기지를 발휘하자, 도리어 의뢰인이 복제 인간으로 오인되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처럼 생물학적으로, 유전자 단위에서 정확히 동일한 개인을 양산할 수 있게 된다면, 개개인의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함이라는 관념은 자연히 중대한 위기를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러한 관념의 흔들림은 개인들 사이에서의 지대한 존재론적 위기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고유함이란 상당 부분 그 자신의 생물학적 실재에 의존해서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유전자는 단순히 개인의 외양적 특징을 형성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유전자는 개인의 성격, 성향, 지적 능력, 운동 신경을 위시한 모든 인간적 특징, 능력의 형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지 그런 선천적 요인의 영향력이 교육, 주변 환경과 같은 후천적 요인에 비해 얼마나 큰 비중을 가지는가에 관한 논란이 있을 뿐이다. 서로 다른 가정에 입양된 일란성 쌍둥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련의 추적 연구들은 개인의 삶에 유전자가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일란성 쌍둥이 추적 연구에서, 쌍둥이들은 서로 다른 성장 환경, 문화권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외양적 조건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유사한 학업적 성취를 이룩하고 비슷한 성격, 성향 등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복제 인간 기술을 통한 생물학적 동일인의 양산은 여러 범죄적인 악용의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우선 생물학적 동등성의 확인을 통한 여러 기존의 신원 확인 절차에서 불가피한 혼란이 초래될 것이고, 원본이 되는 개개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 무분별한 인간 복제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특히, 최근 특정 개인의 얼굴 이미지를 빌려서 만들어지는 '딥 페이크' 영상물을 두고 논란이 빚어지는 것과 같이, 개인의 이미지만이 아니라 그 육체 자체를 악용하기 위해 개인의 의사에 반하는 인간 복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파장은 단지 특정 개인의 화상을 빌려, 가상 공간에서 그것을 재차 구현하는 데서 비롯하는 현대의 기술 윤리적 문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심대할 것이다. 하나의 개인이 자신과는 별개의 (어디까지나 복제물로서 원본과는 구분되는) 파생 이미지를 가지는 것과 생물학적으로 동질적인 개인이 동시에 여러 명 존재하여, 개인의 실재적인 구분이 흐려지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