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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onthewall
Sep 07. 2024
직업의 귀천은 존재하는가? 일반적으로는 직업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엄밀한 선악, 귀추의 구분이 있다기 보다, 단지 진입 장벽이 낮고 다량의 사회적 수요가 요청되어 질 나쁜 인간들을 거르기 어려운 여건상 그러한 인간들의 행적이 과대 대표되는 직업들이 있을 따름이지만, 어떤 직업의 특성 자체가 인간사에서 권면하기 어려운 악덕을 직업적인 소양으로서 권면하고 배양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사이버 렉카, 그 밖에 동네 시정잡배들과 구분되지 않는 인터넷 방송인들이 그 예인데, 이들은 이른바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의 수혜자로서 불특정 다수의 관심을 수입원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많을 수록 그들은 더 많은 광고를 더 높은 단가에 수주할 수 있고 늘어난 추종자들에게서 더 많은 도네이션 금액을 '수금'할 수 있다. 그러한 '직업적 관심병자'로서 인터넷 방송인들은 자기의 수익 구조를 유지하고 개선하고 극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타인의 관심을 끌어모을 동기를 지닌다.
다수의 인터넷 방송인들이 갖가지의 문제적 언행으로 논란에 휩싸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어그로'를 끌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게 그들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잊혀지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화제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한편, 그걸 지켜보는 대중의 감각 역치는 높아져만 간다는 것이다. 이미 보여줬던, 봐왔던 것들은 금방 사람들이 싫증을 내기에 계속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줘야만 한다. 게다가 그들이 의식해야 할 경쟁자들도 있다. 그들이 관객들에게 무엇을 보여줬는지, 관객들이 다른 경쟁자들에게서 무엇을 보아왔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아마도 관객들은 (인터넷 방송의 시청자들이 대체로 능숙한 인터넷 사용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은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미 접했을 것이다. 또 인터넷의 군중들은 대개 제도권에서 수용되기 어려운 고수위의 자극을 추구하는 취향의 소유자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제도권 방송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욕설과 막말, 기행을 목도하기 위해, 가장 순수한 형태의 하위 문화를 탐닉하기 위해 인터넷을 배회한다. 그러므로 보통의 '안전한' 컨텐츠로는 이들 관중을 만족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상식적인 가정이다. 따라서 방송인들은 자기가 누리고 있는 풍요의 기반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점점 더 과격하고 기괴한 언행을 취해야만 하고, 자기를 과장해서 표현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수요에 응하여 자기를 비틀어나가다 보면, 어느덧 통상적인 사회 상규에 부합하지 않는 이상한 인간이 되어 있는 것이다. 또는 그러한 수요에 합치하는 인간상을 미리부터 함양하고 있는, 시청자가 시키는대로, 원하는대로 '무엇이든' 해보이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자들이 시장의 선택을 받아 성공적인 인터넷 방송인이 된다.
한때 사이버 렉카들을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나간 악인들을 공권력 대신 응징하고 소탕하는 정의의 대행자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게 있었으나, 일군의 사이버 렉카들, 그리고 모 유명 인터넷 방송인을 중심으로 드러나고 있는 일련의 촌극은 역시 남의 뒤를 캐서 치부를 드러내어 망신주는 짓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인간일 리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은 단순히 '개별적으로' 악하지 않다. 어떤 정보를 유포해서 대중의 이목을 끄는 방식으로 돈을 벌고 신뢰할만한 심의 절차나 자격없이 자의적으로 타인을 심판하는 사이버 렉카라는 직군의 직업적 특성 자체가 그러한 질 낮은 인간들을 '체계적으로' 만들어낸다.
자칭 사회 고발, 이슈 유튜버들이 누군가의 부정을 고발하고 치부를 드러내는 일의 가장 본질적인 동기는 결국 '돈'이다. 어떤 고결한 당위를 동원하여 스스로를 포장하더라도, 영상 제작을 통한 일체의 수익 창출이 불가능해지면, 그들이 대외적으로 관철해왔던 올바름에 대한 관심도 그 즉시 중단되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즉, 고발 대상의 선별은 철저한 시장 조사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타인을 단죄함으로써 스스로의 도덕적 우월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민중의 욕망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추문에 휩싸인 유명인의 몰락, 순수한 것으로 연출된 악을 자기에 대조해보임으로써 마찬가지로 본질적인 선을 함양했다고 가정되는 자신과는 절연된 것으로 파악하고 스스로를 높이는 일에 대한 민중의 열망에 가까운 관심이 사이버 렉카 활동을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만든다. 이때 여론을 동원한 단죄는 죄인의 실제 죄질에 입각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얼마나 그의 몰락을 기대하고 있는가를 척도로 이루어진다. 모르는 사람에 대한 증오와 관심은 강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때 사이버 렉카들이 조두순 취재에 열을 올렸던 건 그가 당대의 가장 흉악한 범죄자여서가 아니라, 단지 그가 우리 시대의 가장 '악명높은' 범죄자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이버 렉카들이 자행하는 '사적 제재'는 그들 스스로를 파급하는 일련의 과정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의도되는 것은 죄에 대한 응보가 아닌, 적절한 화제의 선별이다. 의외의 인물에 충격적인 추문을 결부시키고 악인으로 판명된 자에게서 그의 다른 일면들을 모조리 발라냄으로써 범죄는 가십이 된다. 범죄는 개인의 본질적인 결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가정되면서 언제나 정당한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유의미한 반성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보통의 선인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도덕적 무결성을 의심없이 자부하게 될때, 또 반대편의 타인들을 철저한 타자로 이해하게 될때, 규율, 도덕의 문제는 단지 비난받아 마땅한 대상에게 고수위의 욕설과 비난을 경쟁하듯이 쏟아내는 스포츠와 같은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향은 이행될 수 없다고 가정되는 명료한 개념적 구획에 기대어 있는 만큼, '변동될 수 없다고 믿어지는' 현상에 대한 아무런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에 따르면, 선인이 자기의 선한 본질을 계속해서 간직하는 만큼, 악인 역시 앞으로도 영원히 악인으로만 남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