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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생각]_1: 한국 대학생이 바라본 독일 교육

영향력 있는 개인의 필요

by 성장흐름



차이 나는 클래스(20.03.04 방영 본)를 시청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용으로 이 글을 연다.


방송에서는 8년간 독일에서 생활한 독문학 김누리 교수가 독일의 교육제도를 포함하여 독일인의 이념을 강연하였다. 독일과 대한민국의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교육방식이다. '경쟁 없이- 그리고 비판적으로.' 우리나라의 초과열 경쟁 구도와 무비판적 공부 방법과는 정반대에 있는 모습이었다.


객관식 문항이 없는 독일 시험

학생들의 경쟁 구도가 없다.


독일 시험에는 객관식 문항이 없다. 갇힌 정답이 아니라 열린 사고를 요구하는 것이 독일의 교육방침이다. 애당초 그들의 수업 방식은 한국과 동떨어져 있다. 교사가 먼저 학생들에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모든 말을 비판적으로 들어라.'라고 말문을 연다.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열린 장에서 수업을 받으며 자란다. 배우는 학생의 태도는 경쟁이 아닌 연대이며, 순응이 아닌 비판인 셈이다.


한국에는 없는 독일의 3가지 교육

성교육, 정치교육, 생태교육


1) 성교육


독일은 기본적으로 청소년의 성을 존중하면서 큰 책임감을 부여한다. 여기서 권위주의적 성격 이론이 교육학에 도입되어 성교육이 가장 중요한 정치교육으로 이뤄지고 있다. 성에 대한 자기 선택은 존중하지만, 성범죄는 강력하게 단죄하는 것이 그들의 교육이다.


※권위주의적 성격 이론: 바람직한 성충동(libido)은 자아(ego) 형성과 초자아(superego)와의 관계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초자아(규범, 규칙)가 성충동을 죄로 인식하고 압박할 경우, 개인은 성충동을 죄책감으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죄책감이 내면화된 자아는 권력에 굴종한다. 독일은 열린 시민 양성을 위해 이 이론을 교육 전반에 도입한 셈이다.



2) 정치교육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독일은 비판하는 인재를 양성한다. 수용할 수 없는 지배관계와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저항능력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교육이다. 어려서부터 거리에 나가 시위하고, 또 자신들의 힘으로 사회가 바뀌는 모습을 보고 자라는 독일인은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의 강력한 일원으로 성장하게 된다.



3) 생태교육


독일인들은 소비하는 것 자체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한다. 자신들의 잘못된 소비문화가 환경을 해칠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한 설문에서는 인구의 80퍼센트 정도가 환경을 위해 소비를 포기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이다.



기본적으로, 독일의 현대 교육을 가능케 한 것은 아우슈비츠 정신(무비판이 이끈 비극)과 만인에게 교육을 보장하려는 국가의 지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자국의 역사를 반성하며 열린 자세의 민족 시민을 양성하려는 독일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반면, 한국은 많은 부분에서 미달된다.



한국 교육의 연약한 점

입시 경쟁 사회부터 기득권의 사고까지.


한국은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지만, 교실 속을 들여다보면 민주적인 수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명의 교사가 지배하는 단순 공급형 구조이며 학생들은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하지 않는 개인은 무비판적 수용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성장한 개인이 다시 사회에 조립되는 방식의 한국 사회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지지 않는다.


한국은 왜 죽은 학생을 기르는 구조가 되었을까. 필자는 서열화된 대학 구조가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인격이 공격받는 사회라는 인식 탓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펜을 들었을 때부터 대입이 목표가 된다. 대입도 개인의 성장이라는 바람직한 목표 하에서 이뤄지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서열화된 대학 구조 때문에 학생들은 자연히 경쟁 구도로 접어드는 공부를 택한다. "질문은 시간 낭비잖아, 1~5번 중에 정답만을 찾으면 돼."


아쉽게도, 현 입시제도에서는 모두가 승리할 수 없다. 90%가량이 자신의 입시 결과에 불만족해 재수를 택하거나 자존감에 타격을 입은 채 대학생활을 한다. 더 안타까운 점은, 대학생들의 공부법도 똑같다는 것이다. 대학생이니 목표가 취업으로 바뀌었을 뿐, 학점을 중심으로 경쟁 구조인 모습은 비슷하다. 대외 활동, 공모전, 자격증 공부도 개인의 성장보다는 스펙의 조건으로 따라오게 된다. 대학생들의 놀이 문화도 그들의 순수 성장에 기여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술자리 회식과 선동형 게임, 이것들 전부 회사 공동체의 연약한 점을 그대로 내려받은 셈이다.



한국 사회의 지향점

스스로 혁신적 인재가 되는 것, 영향력 있는 개인의 필요


한국의 교육 수준은 이미 최상위권이다. 이는 학생들의 사고 능력이 미달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는 희생과 상처가 일반적인 현 세태를 청산해야 한다.


굴러가는 톱니바퀴를 멈추려면 '작은 충격'이 있으면 된다. 송곳이어도 좋고, 작은 톱니바퀴가 그 역할을 해낼 수도 있다. 한국 사회를 움직이고 싶으면 그 사람이 변화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 여성의 인권 해방은 여성이 이끌었고, 흑인의 인권 해방도 흑인이 이뤄냈다.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그 사람이 혁신의 주인공이다. 물론, 기존 방식으로 자리 잡은 기득권과의 마찰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마찰도 이겨낼 수 있는 혁신적 인재가 스스로 나타나야 한다. 적어도 상황 밖에서 문제를 인식할 줄 아는 사람, 사회와 다른 본인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들이 차세대 리더가 되어 영향력을 발휘할 때 사회가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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