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하나를 떠올려 보자. 갓 결혼한 젊은 여자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당신 남편과 당신 아버지를 빼고는 이 세상 남자들이 전부 바람을 피운다.”고 말한다면, 그 의도의 적절함을 논외로 하고 이 이야기는 진실인가. 특별히 만일 남자는 모두 늑대이고, 어떤 형태/형식의 배우자와 살든 또는 관계를 맺든, 기회가 닿는다면 모두가 배우자 몰래 바람을 피울 것이라고 추정했을 때도 이 이야기는 진실인가.
내가 생각하는 대답은 이렇다. 사실을 파악할 필요 없이(왜냐 하면 여기서는 사실이 개입할 여지가 없으므로) 이 이야기는 진실이다. 세상의 모든 남자를 구성하는 누군가의 남편과 아버지의 ‘개별의 값’과 ‘전체 집단의 값’은 다르다. 사족을 달자면, 진실로서 현실을 구성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뒤집어서 현실이 진실로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보이는 게 항상 진실은 아니다’는 말을 많이 한다.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보다는 ‘진실’이다.
인체가 시각정보를 수집해 뇌의 회로에 전달하는 이유는 정보의 활용주체가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판단이라는 것이 진실의 지반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부득불 수용한다면, 보는 것은 진실이거나 진실에 근접한다. 인체가 수용하는 정보의 대부분이 시각에 의존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진실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사실 불가피하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란 견해는 진실에 대한 타협이다. 보는 것을 믿고 싶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믿기 위해서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조금 어렵다면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리는 것으로 금세 만회할 수 있겠다.
또 다른 문제도 존재한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의 긴장 말이다. 흔히 보는 것은 믿음의 영역이고, 보이는 것은 인식의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믿음과 인식, 혹은 믿음과 사실은 구분되어지지 않은 채 총체적 진실을 구성한다는 게 더 현실적인 진술이다.
요체는 우리가 보이는 것을 볼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보며, 보는 행위를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를 보이는 것으로 통합해 받아들이는 존재라는 점이다. 우리는 숙명적으로 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11월의 독일 쾰른은 정말 변경의 느낌을 준다. 지명 자체에서 이미 고대사회의 위계가 드러나 있다. 로마제국이 번성하던 때 이곳은 야만인들이나 겨우 살아갈 춥고 늘 비 내리는 을씨년스런 땅이었다. 문명인들에게는 태양이 찬란한 지중해가 제격이었다. 난방이 지금보다 훨씬 못한 옛 시절에는 쾰른이 더더욱 사람이 사람답게 살 만한 번듯한 도시가 아니었을 것이다.
쾰른과 독일이 자랑하는 쾰른대성당만 해도 그렇다. 고딕양식을 첨예하게 드러내는 그 높이와 웅장함은 분명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 손색이 없다. 그랬기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비행기의 폭격수가 차마 쾰른대성당에 폭탄을 떨어뜨리지 못했을 터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사진에서는 모두가 폐허로 변한 쾰른에서 대성당만이 본래의 모습 그대로 장엄하게 살아남아 이곳이 신의 도시였음을 증언한다.
폐허의 황량함과 고딕의 장엄함 간의 대비는 세계대전 오래 전부터 일관되게 유지된 논리이다. 중세인들에게 하늘 높이 솟아있는 성당이란 보기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믿기 위한 것이었다. 믿기 위해서는 보아야만 했으며, 믿음으로써 발밑의 남루함을 잠시 나마 망각할 수 있었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로 구성되는 것이다. 그런 강력한 진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진실이 아닌 것으로 강등시킨다. 역설적으로 그런 강등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은 구체적 진실로 복원된다. 진실이 아닌 것으로 견뎌내는 삶 자체가 진실이기 때문이며, 진실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 중세적인 방식의 판단을 통해 진실을 수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에 어떤 이름을 붙이든 진실은 진실이다. 또한 땅 위의 진실은 첨탑 위의 진실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더 생생해진다.
높이는 깊이의 다른 이름이다. 영광과 고통은 입자와 반입자처럼 서로 동반한다. 착시이든 직시이든 우리는 보는 것을 통해 높이와 깊이를 모두 볼 수 있으며(혹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대비를 극적으로 소화해 낸다. 빅뱅 초기 원시 우주에서 입자와 반입자의 미세한 비대칭에서 별들이 생성되었듯, 인간은 ‘대비의 시각’의 아주 예외적인 비대칭에서 위대한 것과의 합일을 모색해 내었다.
<지옥의 입구> 독일 쾰른대성당 앞 광장에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구덩이가 있다. 사실은 사람이 그린 그림이다. 광장에서도 특정 지점에서 봐야 구멍처럼 보인다. 사진으로는 영락없는 나락의 입구이다. 보이는 것을 믿지 말라는 교훈? 그러나 모를 일이다. 그러다 정말로 실족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