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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Mar 02. 2020

이만희와 박근혜시계

3월 2일 이만희(89)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총회장이 신천지 연수원인 경기 가평군 평화의 궁전 문 앞에서 가진 긴급 기자회견장은 짧고 굵은 인상을 남긴 자리였다. 무엇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명의가 새겨진 기념시계를 착용해서 화제가 됐는데, 이 시계가 가짜임이 밝혀져 더 한 번 화제가 됐다.


최초 보도는 이 시계가 박 전 대통령이 2013년 취임한 뒤 제작해 유공자와 귀빈들에게 선물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시계에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문양의 휘장과 무궁화가 박혀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서명으로 보이는 이름 석 자도 시계 안에 적혀있었고, 시계는 황금빛으로 칠해졌다.


그러나 이 시계가 모조품이라는 반박이 곧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이 회장의 시계는 가짜”라고 말했다. 유 변호사는 “(박근혜 청와대에서) 은색 시계밖에 만들지 않았다”며 “시계 안에 날짜판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보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한 이건용 전 행정관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은색 시계 단 하나의 종류로 제작을 지시했다”며 “은색시계만 기념품으로 사용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탁상시계나 벽시계 등 다양한 기념품이 제작됐지만 ‘금장시계’는 만든 적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만희 회장이 찬 시계는 모조품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대통령 기념품과 관련된 모조품은 늘 존재했으며, 보도엔 이 회장이 찬 것과 똑같은 ‘박근혜 시계’ 중고가 49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기자회견장에 고가의 에르메스 넥타이를 맨 이 회장이 49만원짜리 가짜 금장 ‘박근혜 시계’를 찼다는 사실은 신천지의 본질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우선 (종교적으로) 주류인 척 하지만 정파에서든 사파에서든 결코 정통의 권위를 지니지 못한 열등감과 주류적인 권위에 대한 갈망을 표출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화장한다고 똥칠한 격이 되고만 이단에 적합한 코미디를 연출하고 말았다. 이러한 해석은 이 가짜 ‘박근혜 시계’가 이만희의 애장품일 때에 한한다.


만일 이 시계를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차고 나왔다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상황을 정치적 상황으로 바꾸고자 하는 노림수가 존재할 텐데, 뜻대로 가능할지는 미지수이다. 특별히 ‘박근혜’의 범주에 포괄되는 정치인과 권력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면, 일종의 협박일 수도 있겠다. 이만희가 자신과 신천지에게 우호적인 세력을 만들기 위해 그들에게 ‘공’을 들였을 개연성이 충분하기에 ‘보호’ 신호를 보냈다고 볼 수도 있다. 잘못하면 같이 죽는다고.


이도 저도 아니고, 그저 이만희의 노망증세는 아니었을까. 기자회견장에서 큰절을 두 번이나 해놓고 마지막에 기자들에게 호통을 치는가 하면 ‘엄지척’까지 한 것은 정상적인 생태로 보이지 않는다. 그나저나 신천지 신도들은 이만희 교주의 기자회견을 보며 비통해 했을까, 아니면 뭔가 각성하는 계기가 됐을까. 


아무리 봐도 허접한 이런 보잘 것 없는 노인네에게 25만명이 놀아난 세태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현대인의 정신적 허약함과 현대사회의 곤고함을 입증하는 간접지표? 분명한 사실은 이만희와 신천지가 발호한 곳은 중국이나 미국, 일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며, 그런 독버섯을 자라날 환경을 방조하고 방치하였을 때 만일 우연과 악운이 겹쳐지면 엄청난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비용을 물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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