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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Mar 01. 2020

신천지와 이만희에 대한 올바른 대처법


"좌파는 길을 잃었고 진보는 착각에 빠져있다" 


<진보의 착각>(크리스토퍼 래시, 휴머니스트)에서 1994년 작고한 래시 교수가 한 말이다. 같은 이념을 공유하며 흑백이 섞여 산 북부보다 흑인끼리 산 남부에서 더 강인하고 낙관적인 흑인이 생겼다고 그는 지적한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살고 싶은 것은 존중받아야 할 본능"이라고. 진보주의자들의 사해동포주의를 비판한 대목이다. 


특수성에 매몰되지 않는 보편주의만을 강조하다 보면, 보편주의가 아니라 추상화(抽象化)로 귀결하지 싶다. 저자가 한계와 희망을 함께 역설한 건 불가피한 결론이다. 노동과 관계(정확하게는 유대)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해가 간다. 역사와 삶에서 보듯 한계가 없다는 집합적 자신감은 곧 개별적 한계에 도달하는데, 이때 한계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지지하는 태도야 말로 진보의 덕목이었다. 


그 덕목을 지탱하는, 또는 생성하는 원천이 노동과 연결임은 많은 사상가들이 각기 다른 용어로 반복해서 지적한 내용이다. 다만 개별적 좌절을 집단적 희망에서 찾으라는 도식화는 또 다른 진보의 착각이다.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지만, 진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리버럴이어야 하기에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개별적 좌절을 집단적이고 사교(邪敎)적인 희망에서 찾으려는 시도하여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재앙을 초래하고 있는 신천지에 대한 진보의 대응은 어떠해야 할까. 이른 바 보수라고 자칭하는 어떤 정치세력은 신천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중국 타령으로 일관하고 있을 때 책임 있는 이른 바 ‘진보’의 자세는 무엇일까. 이른 바 보수는 코로나에서 당리당략만을 챙길 뿐이고, 이른 바 ‘진보’는 우왕좌왕할 뿐이다. 내 생각에 우리는 더 단호하고 과격하게 신천지 문제를 대하고 척결해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일 이만희 등 신천지 지도부 살인죄 등으로 고발한 것이나 이에 앞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강경하게 대응한 것에서 머물지 말고 더 결연하게 나서야 한다. 


한국의 좌파는 아직 생성되지 않았고, 그나마 명목뿐인 한국의 진보는 눈치만 보고 있다. 정치가 한계 안에만 머물고 희망찾기를 등한히 한다면 그건 정치가 아니라, 신천지의 미니 버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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