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울프콜’
영화 <울프 콜>은 심해에서 벌어지는 잠수함 작전과 잠수함끼리의 전투를 그린‘잠수함 액션물’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설명하면 뭔가 부족하여 사실을 조금씩 추가해야 하는데, 먼저 그냥 잠수함이 아니라 핵잠수함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적시하여야겠고, 국제정세를 이용한 테러리스트의 세계평화 파괴음모가 개입한다는 점도 밝혀야겠다.
핵잠수함은 핵을 연료로 한 잠수함과 핵무기(미사일)를 탑재한 잠수함이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대체로 두 가지 기능을 겸한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의 6개국이 핵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은 원자로를 실은 잠수함을 통해 바다 속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국가가 이들이란 뜻이다. 영화 <울프콜>은 프랑스 핵잠수함 안에서 벌어지는 국제정치와 핵전쟁 이야기로 요약된다.
리얼리즘의 극대화
<울프 콜>의 주요 등장인물은 4명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인물보다 잠수함이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잠깐 비친 러시아제 잠수함 말고는 두 대의 프랑스제 잠수함이 주인공이다. 하나는 핵을 원료로 한 잠수함, 즉 핵 추진 공격 잠수함(SSN)이고 나머지 하나는 핵을 원료로 쓰면서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 즉 핵 탄도 미사일 잠수함(SSBN)이다. SSBN은 수중 배수량이 1만 2천 톤에 달하는 가장 거대한 수중 이동체이다.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기 위해 <울프 콜> 제작진은 실물과 현장의 촬영을 병행했다. 영화에 등장한 것과 동일한 실제 잠수함을 촬영한 것은 물론이고 수중 촬영까지 진행했다는 이야기다. 모든 세트장은 잠수함 실물과 같은 크기로 만들었다고 한다. 세트장 제작의 어려움은, 최대한 경제적이고 압축적으로 공간을 설계하는 잠수함의 특성상 실물 크기 세트장에서 카메라를 설치할 공간의 확보였다고 한다.
영화에 사실감을 부여하는 것에 집중한 <울프콜>의 안토닌 보드리 감독은 “광활한 우주 같은 심해에 비해 잠수함은 매우 폐쇄적이다. 단순히 공간을 넓게 만들기보단, 심해와 잠수함처럼 극과 극의 공간이 압도적인 스케일을 체감할 수 있는 마법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군사용어와 절차는 실제 잠수함 작전에 사용되는 것들이다. 철저한 자문을 거쳐 영화제작에 활용되었지만, 한국 관객 입장에서는 언어적인 제약 때문에 용어보다는 절차에 주목하며 볼 수밖에 없겠다. 또한 영화 속에 등장한 것과 같은 잠수함들을 한국이 보유하고 있지 않아 우리 군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한국 해군의 잠수함에는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데 필요한 절차가 아예 없지 않을까. 그런 잠수함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울프콜> 제작진이 자랑하는, 예컨대 극의 완성도를 위해 프랑스 해군 잠수함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심해에서 연출진과 출연진이 승조원과 함께 생활한 것과 같은 경험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현재 프랑스 해군에서 잠수함 승조원으로 복무 중인 프랑스 군인들이 대거 엑스트라로 출연한 것도 영화 <울프 콜>을 보며 떠올리면 좋을 법한 감상포인트이다. 물론 이렇게 했다고 극의 리얼리티가 높아지고 영화적 완성도가 제고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만큼은 인정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노력한 값이 영화에 나타났다고 본다.
가장 치열한 국제정치의 현장은 고립된 심해의 잠수함
이 영화의 주된 무대는 심해와 잠수함 속이지만 소재는 국제정치와 테러를 다룬다. 핵전쟁을 일으키려는 테러리스트에 맞서 핵전쟁을 막으려는 등장인물들의 긴박한 움직임이 비교적 정교하게 표현돼 있다.
스토리는 가상이지만 영화 속에서 구현된 프랑스 해군의 군사작전 시스템은 모두 현실과 같다. 미확인 선박을 탐지하는 단순 업무부터 핵 미사일 발사 명령의 검증 같은 복잡한 업무까지 모두 실제 프랑스 해군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보드리 감독은 ‘대통령이 잠수함에 하달한 핵 미사일 발사 명령은 절대 번복할 수 없고 심지어 명령했던 대통령조차 취소할 수 없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극화의 동력을 얻었다. 러시아로부터 핵잠수함을 탈취한 테러리스트들이 프랑스를 향하여 핵미사일을 발사하였다. 테러리스트의 행위인 줄 모르고 러시아의 공격으로 간주한 프랑스로서는 대응발사를 결단할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대응발사를 명령한 이후에 테러리스트의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데 있다.
이제 프랑스 해군은 핵 미사일을 발사하려고 심해로 숨어들어간 아군의 잠수함을 탐지하여 발사를 막기 위해 온갖 작전을 다 동원한다. 이러한 상황은 잠수함에 한번 하달된 핵 미사일 발사명령을 번복할 수 없다는 작전규칙 때문에 빚어진다. 현실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을 시나리오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리하여 최악의 상황에서는 아군이 아군 잠수함을 격침하는 방법밖에는 남지 않게 된다. 핵 탄도 미사일 잠수함의 함장 그랑샹 역을 연기한 레다 카텝이 언론 인터뷰에서 “단순한 팝콘 무비가 아닌, 논쟁할 거리가 있는 진짜 전쟁 영화”라고 말한 것은 이 지점을 겨냥하였다.
영화에서는 핵 탄도 미사일 잠수함(SSBN) '무적함' 함장 그랑샹에 맞서, 그랑샹의 부하인 음향탐지사 샹트레드(프랑수아 시빌)ㆍ핵 추진 공격 잠수함(SSN) '티탄함' 함장 도르시(오마 사이)ㆍ해군 제독 알포스트(마티유 카소비츠)가 난제를 풀어나간다.
인간인가 시스템인가
<울프 콜>은 안토닌 보드리 감독의 첫 장편 영화이다. 2004년 프랑스 외교부 소속 외교관으로 임명되어 미국과 스페인 등지에서 외교관 생활을 한 보드리는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2015년 외교부를 떠났다. 그는 <울프 콜> 구상을 가지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영화사이자 유럽 최대 영화사인 파테(Pathé) 제롬 세이두 회장을 찾아갔다고 한다. 두 사람이 만난 그 자리에서 영화 제작이 결정되었다.
보드리 감독은 “잠수함이란 근본적으로 인간적이고 시적이며 영화적인 환경”이라며 “잠수함 속 승조원들은 지상의 모든 일상과 단절되어 오로지 명령과 절차 속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만을 가지고 생사를 결정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철저히 잠수함 승조원의 관점에 서 있다. 특히 핵 미사일 발사와 같은 극단적으로 예외적인 상황에 처하여, 작전규칙에 따라 외부와 모든 연결을 끊고 의사결정을 할 때 그 결과에 대해선 명령에 복종하는 것 말고는 책임지지 않지만, 동시에 인간인 이상 군인으로서 그러한 결정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에 관한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잠수함에 하달한 핵 미사일 발사 명령은 절대 번복할 수 없고 심지어 명령했던 대통령조차 취소할 수 없다’는 작전규칙은 규칙 자체로 어마어마한 전쟁억지력이다. 만일 테러나 쿠데타와 같은 변고로 대통령이 억류된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와 국가의 이익에 반하여 명령을 취소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규칙인 만큼 타당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영화 <울프콜>이 다루듯 ‘함정’에 빠졌거나 ‘착오’가 발행했을 때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은 시스템 상의 가장 큰 하자로 느껴진다. 영화는 시스템보다는 인간을 신뢰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으며 끝난다. 아마도 그게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감동과 울림일 테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논란거리가 남는다. 그런 번복이 잘못된 선택이 아님을 죽어가는 인간은 어떻게 확증할 수 있는가. 보편적인 논쟁거리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심각한 논란이 사실 논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국가관과 군인윤리에 입각하여 갈등을 겪는 상황을 영화화할 수는 있겠지만, 적에 의해 우리가 핵폭탄을 맞았다면 그 순간부터 보복은 무의미하다. 전쟁 억지력은 억지를 위한 수단이지 보복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합리화하여도 선하고 정당한 핵미사일 발사는 없다.
만일 시스템과 인간 중, 시스템에 해당하는 것이 영화에서 다룬 핵미사일 발사처럼 극단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때 선택은 항상 어려움에 처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그 말은 아무리 강력한 시스템도 언제나 인간으로부터 도전을 받는다는 이야기이겠다. 감독의 결어가 그다지 틀리지는 않은 셈이다. 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