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시각적 즐거움일 것이다. 뉴욕타임스 영화평이 “시각적인 아름다움으로 당신을 몰입시킬 것”이고 LA타임스는 “디자인된 모든 공간이 센스 넘친다”이다.
실제로 많은 관객들이 <파라다이스 힐스>가 색감, 공간구성, 디테일 등 영상매체의 장점을 충분히 살렸다는 느낌을 받지 싶다. 제목에 들어가 있는 단어 ‘파라다이스’에 걸맞은 비주얼이 의상, 소품, 배경에까지 일관되게 관철된다.
파라다이스의 개념으로 설계된 수용소
영화의 제목이자 영화 속 가상의 장소인 ‘파라다이스 힐스’는 고립된 외딴 섬 위에 조성된, 일종의 리조트이다. 무엇보다 매혹적인 푸른 바다, 아름답게 잘 가꾼 정원, 장미 숲, 공주에게 어울릴 법한 화사한 침실, 맞춤 미용과 화장, 엄선된 식단, 예절 프로그램, 요가를 비롯한 건강 강좌 등 ‘파라다이스’란 이름에 부응하여 모든 것을 구비한 환상적인 공간이다. 화면 속의 정원, 숙소, 연회장, 해안가 등 카메라에 잡힌 모든 공간에서 독특하고 세련된 색의 미감을 엿볼 수 있다.
영화 내내 펼쳐지는 퍼플, 핑크, 화이트, 그린, 블루와 같은 다채로운 컬러들은 이 영화가 표방한 판타지 미스터리를 구현하는 후경이 된다. 등장인물들의 의상 또한 색의 향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몽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조명, 거울, 침구, 쿠션 하나까지 영화 속 모든 소품들을 어느 하나 빠짐없이 인물과 배경 그리고 각 장면에 맞췄다는 제작진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완벽한 ‘파라다이스’는 관객의 즐거움을 만족시켜준 걸로 소임을 다한 것일까. 그렇게 말해도 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완성도 높게 구현된 ‘파라다이스’는 스토리의 기반이 되기에, 사실 비주얼에 공들인 게 제작의 사치라기보다는 연출의 기본으로 작동한다. 추가적인 소임이 있다는 얘기다.
영화가 전개되며 곧 드러나듯 이 파라다이스는 일종의 감옥이다. 최고급 부르주아 취향에 맞춰, 또는 여전히 유효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서구사회 귀족 취향에 맞춰 지어진 수용소. 그곳에 누가 수감되는지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알게 된다.
어느 날 우마(엠마 로버츠)는 ‘파라다이스 힐스’라는 낯선 곳에서 깨어난다. 하지만 어떻게 누구에 의해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수용소 속으로 던져진 채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 초반부부터 계속해서 우마는 탈출을 시도하지만 계속 실패한다. 어떻게 보면 영화 <빠삐용>의 ‘젊은 미녀’ 판(版)이다.
우마 등이 있는 섬이 <빠삐용>에 등장한, 끔찍한 환경에다 고립무원인 프랑스령 기아나의 어느 섬과는 많이 다르지만, <파라다이스 힐스>나 <빠삐용>이나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갇혀 있으며 우마를 기준으로 하면 끊임없이 탈출하려고 시도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탈출에 성공한다는 결론 또한 공통적이다. 하지만 탈출의 의미는 동일하지 않다.
<빠삐용>과는 다른 의미를 내어놓아야 하기에 감옥의 디자인 또한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우마 등이 갇힌 ‘감옥’은 빠삐용 등이 갇히 섬과 달리 파라다이스로 설계되어야 했다. ‘파라다이스 힐스’는 감옥 같지 않은 감옥으로 설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은 가족제도 또는 가부장제에 대립하거나 억압받는 젊은 여자들이 새롭게 구축되는 장소이다. 나름 창의적이고 충격적인 결말을 보면서 알게 되겠지만 ‘파라다이스 힐스’는 빠삐용의 감옥보다 더 참혹한 공간이다. 그곳은 일종의 무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인용하면 ‘회칠한 무덤’처럼 ‘파라다이스 힐스’는 반드시 아름다운 곳이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곳. 그러므로 영화에서 구현된 시각적 즐거움은 꼭 시각적 즐거움만을 겨냥한 장치는 아니다. 반드시 필요한 장치였다.
여성주의 영화라고 불러야
<파라다이스 힐스>는 여성 감독, 여성 주연에다,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여성이다. 남성 출연자는 여성 출연자를 돋보이게 하는 소품 정도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메가폰을 잡은 첫 장편인 <파라다이스 힐스>에서 많은 가능성을 보여준 감독 앨리스 웨딩턴, 9살의 어린 나이에 할리우드에 데뷔하며 탄탄한 연기 커리어를 쌓아 온 검증 받은 연기력의 엠마 로버츠,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에서의 강렬한 연기력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밀라 요보비치, <베이비 드라이버>, <분노의 질주: 홉스&쇼>로 특유의 매력을 선보여 온 에이사 곤살레스, 2020년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아콰피나 등이 팀워크를 이루었다.
이 영화에는 아마도 ‘여성주의’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텐데 그러려면 당연히 감독과 출연진이 여성이라는 점만으로는 안 된다. 극단적인 예로 여성 감독과 여성 배우들이 레즈비언 포르노를 만들었다면 그것을 여성주의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는가. 엄마로 대표되는 가족제도와 가부장제, 결혼 등의 억압에 짓눌린 젊은 여성들이 순종을 거부하고 ‘파라다이스 힐스’ 탈출을 기도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분명 페미니즘을 주장한다. 특히 우마를 통해서는 결혼이란 제도와 남성이란 가부장제의 대표자에 대한 투쟁이 뚜렷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판타지와 미스터리를 결합하며 할리우드적인 재미와 결말을 추구하면서 페미니즘 의식은 다소 흐려진 느낌이다. 상업주의와 페미니즘을 어느 선에서 버무릴 것인지 웨딩턴 감독이 많이 고민했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주의 깊게 사용된 이미지는 거울이다. 가벼운 존재론의 터치를 통해 인간론을 심각하지 않게 다룬다. 거울과 관련하여 관객은 영화의 결말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들이 어쩌면 영화 <아일랜드>를 연상하였을 수 있다. 그러나 비슷한 듯 판이하다.
보다 전통적인 장치를 시나리오에 넣은 데서 반전 자체를 복고적으로 반전하고자 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러한 반전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인간을 대면하고 인간 사이의 유대와 사랑을 목격하게 된다. 물론 이 영화에서 그려진 유대와 사랑은 여성끼리의 것이다. 결말이 시작되면서 일어나는 반전의 개연성이 조금 부족하다는 데서 아쉬움이 남는다. 꼭 필요한 설정을 디테일을 갖춰서 줄거리로 구현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디테일이 보이는 디테일보다 항상 어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