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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Feb 29. 2020

폭력의 엔터테이닝은, 어떤 범죄오락액션영화를 만들어낼까

영화 '젠틀맨' 리뷰

사람들에게 현대 영화의 키워드를 뽑으라고 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중에서 '폭력'이 결코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영화와 미디어에서 폭력이 넘쳐나는 현상을 시대의 반영으로 볼 것인지, 반대로 영화적 배설을 통한 시대의 정화라고 볼 것인지는 더 깊은 논의를 요한다. 이 논의는 전개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무엇보다 폭력 자체를 정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국가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사회는, 이 말 자체가 논란거리이긴 하지만 아무튼 전통적인 폭력을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다양한 사회과학적 분석에서 확인되듯, 아무리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나 국가라 하여도 과거와 비교하여 현대는 평화롭다. 신체를 중심으로 구현되는 물리적 폭력을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당연히, 그렇다고 폭력성이 떨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대로 폭력성이 더 심해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어느 쪽이 맞는지를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영화에서 폭력은 장르를 불문하고 표현되며 폭력성은 영화산업의 기저에 깔려있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폭력과 폭력성을 특별히 구체적인 폭력조직과 연결지어 영화적으로 구현하는 데에 공을 들인다. 폭력과 폭력성은 초역사성의 현상이다. 이 초역사성을 현실의 폭력조직과 결합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영화적 성취가 드물지 않게 분출하곤 한다. 여기서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감독을 쉽게 떠올리게 되는데, <젠틀맨>을 국내에 선보이는 가이 리치 또한 빼놓을 수는 없다. 리치 감독의 전작이 디즈니 실사영화 <알라딘>이란 점이 흥미롭다.


<젠틀맨>은 오락영화이고 범죄물이다. 오락이 아닌 영화를 특별히 언급해야 할 정도로 거의 모든 영화가 오락성을 추구하고 있기에 오락영화라고 특별히 부각시켜려면 특별히 더 재미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만 감독이 의도하고 제작 및 배급사가 홍보한 오락성은 엔터테인먼트이다. 금요일 밤 클럽의 '댄싱 퀸'이라기보다는 주말 프라임타임 쇼프로의 아이돌 그룹 느낌이다. 캐스팅과 영화의 전개에서 아이돌 그룹의 개념이 활용된 분위기가 확연하다. 출연진이 각자 주연을 맡아야 하는 이들로 구성됐다.


장르를 막론하고 탁월한 연기력으로 영화계를 주름잡는 매튜 맥커너히를 필두로, 할리우드의 젊은 피 <킹 아서: 제왕의 검> 찰리 허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헨리 골딩, 인기 영드 <다운튼 애비>와 영화판 <다운튼 애비>의 미셸 도커리, <노팅 힐>, <러브 액츄얼리> 속 멜로 장인 휴 그랜트, <신비한 동물사전>속 신스틸러(scene stealer) 콜린 파렐 등 레전드 연기파 배우들이 역대급 연기 변신으로 합류했다.


출연진 설명은 배급사의 홍보자료에서 인용했다. 힘을 주긴 했지만 많이 틀린 설명은 아니지 싶다. 이런 아이돌 그룹 같은 출연진을 유기적으로 연결지으며 감독은 정교하게 잘 준비된 재미를 선보이려고 노력했다.


범죄물을 표방하지만 범죄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지는 않는다. 유럽을 장악한 마약왕 '믹키 피어슨'이 은퇴를 계획하자 그의 마리화나 제국 지배권을 두고 벌어진 범죄조직 간의 각축을 그렸다. 범죄는 만화처럼 묘사된다. 현실감이 별로 없다. 게다가 다른 심각한 약물종류의 마약과 달리 상대적으로 가볍고 친숙한 마약인 마리화나가 등장하기에 범죄의 소재 자체가 경쾌한 느낌을 준다. 당연한 귀결로 <젠틀맨>은 액션영화이어야 한다. 그러나 액션 또한 현실성 또는 실감보다는 쇼 같은 짜임새에 치중한 느낌이다. 피가 넘쳐나지도 않고 잔혹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영화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배급사 자체의 정의는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엔터테이닝 무비"이자 "새로운 범죄오락액션의 스웨그"이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영화 전편(全篇)에서 잘 준비된 TV쇼와 힙합의 색조가 넘쳐난다. 독특한 연출이다. 이러한 류의 연출이 성공하려면 강력한 힘과 자제가 필수적이다.


예컨대 암사자가 새끼 사자를 물어서 옮길 때 쓰는 이빨이 초식동물의 숨통을 끊을 때 쓰는 이빨과 같은 것이지만 그 이빨로 물어도 새끼는 안전한 동물 다큐를 떠올리면 어떨까. 치와와도 같은 일을 하지만 비유로서 그와 같은 연출은 실격이다.


엔터테인먼트와 스웨그가 범죄액션영화에서 결합하면 <젠틀맨>과 같은 화면이 나오는데, 여기에 약간의 함정이 있다. 암사자가 새끼 사자를 옮기는 장면에서 우리는 모성애와 평화를 느끼지만 그것은 사자 이빨의 예외적 현상으로 사자 이빨의 일상은 피가 넘쳐나고 살갗이 찢기고 뼈가 으스러지는 공포와 충격의 현장이다. 치명적 폭력과 맞닿아 있는 지점인데, 그것이 은폐된다. <젠틀맨> 또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젠틀맨>에서 나타난, 너무 저렴하지만 이 바닥에서 자주 쓰는 말로, 이른바 '폭력의 미학'은 폭력성을 분식함으로써, 또는 조금 어려운 말로 전치(轉置·displacement)함으로써 폭력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역설을 발생시킨다. '젠틀맨'을 발생시킨 영국의 젠트리(gentry) 계급에서 '젠틀'이 속물근성과 저속성을 감춘 외피(外皮)이듯이 말이다.


나는 "<스내치> 이후 최고의 범죄오락액션!"이란 'FILMINK'의 평에 주목하였는데, <젠틀맨>을 리치 감독의 <스내치>의 대구(對句)로 감상하는 방법이 상당히 그럴 듯 하기 때문이다. 제목 자체가 '젠틀'하지 않은 <스내치>에서도 브래드 피트를 비롯한 많은 유명 배우가 등장하여 우왕좌왕하며 오락적인 범죄액션을 펼쳐내지만, 스웨그를 망실한 데서 <젠틀맨>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게 된다.


두 영화 중에서 어느 영화가 더 재미있을까? 그건 취향에 달렸다.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좋은 상황에서) 턱을 살짝 들고 눈을 비스듬하게 또 그런 듯 아닌 듯 내리까는 사람을 보며 섹시하다고 느낀다면 <젠틀맨>을 더 좋아할 확률이 높다. 아니면 말고.


'폭력의 미학'이 아니라 '폭력의 사회학'의 관점에서 어느 영화가 더 바람직하냐고? '폭력의 사회학'을 아주 협소하게 해석한다면 두 영화 모두 세상에 나오지 않는 게 좋다. 그러나 이미 그런 세상이다. '바보상자'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은 이 영화들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폭력성은 훨씬 더 무자비하게 만연해 있다. 바다에 한두 방울 더해진다고 바다가 바뀔 것이라고 호들갑 떠는 게 웃긴 일이다. 재미라도 있으면 족하다.


26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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