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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Aug 10. 2020

나쁜 남편과 착한 정부의 공모, 기이한 로맨스

영화평 '부다페스트 스토리'

'부다페스트 스토리' 영화평

<부다페스트 스토리>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헝가리 영화로, 당연히 대사 또한 헝가리어이다. 장르상 로맨틱 스릴러로 봐야할 텐데 극중 인물의 발화를 매개로 한 사건의 구성과 전개 방식이 장르 특성 외의 재미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독특한 영화이다.


<부다페스트 스토리>는 달콤한 거짓말로 가짜 희망을 선물하는 천재적인 사기꾼 ‘한코’가 우연히 숲 속에 아들과 함께 남겨진 여인 ‘유디트’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하지만,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이 돌아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배경은 2차세계대전에 패전하여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된 헝가리로, 헝가리 영화계를 대표하는 아틸라 사스 감독의 신작이다. 아틸라 감독은 이 영화에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꾀했다. 원제는 ‘Apró Mesék’(헝가리어)으로 영어로는 ‘Tall Tales’이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 황당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현대적 감각의 고전적 스릴러     


<부다페스트 스토리>는 긴장과 자극을 과격하게 안출하지 않으면서도 어느 수준 이상의 긴장과 자극을 꾸준히 유지하며 진행한 스릴러이다. 물론 극영화인 만큼 당연히 클라이맥스가 있다. 긴장과 재미를 영화 전편(全篇)에 적절하게 배치하였기에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연출 감각이 뛰어나서, 마블링이 고루 좋은데다 적당한 크기의 떡심을 끼어 넣은 두툼한 스테이크 같은 느낌을 산출했다고 말해도 되겠다. 뒤에 살펴볼 ‘떡심’이 흥미로운데, 지성의 치아가 약하면 ‘떡심’을 소화하기 힘들다는 것이 이 영화의 문제점이다. 그러므로 그저 로맨틱 스릴러로 보고 싶은 사람은 그냥 그렇게 보아도 된다. 


스릴러의 축은 ‘한코’(사보 킴멜 타마스)와 ‘빈체’(몰나르 레벤테)이다. ‘유디트’(비카 케레케스)와 빈체는 부부 사이. 전쟁의 와중에 남편 빈체가 집을 떠나 실종 상태이다. 아내 유디트는 폭력적이고 야비한 인물인 빈체의 실종을 죽음으로 받아들인다. 정확하게는 그러하기를 희망한다. 갑자기 출현하여 사랑하는 사이가 된 한코는 유디트에게 새로운 삶을 모색할 가능성이다. 그러나 영화는 유디트에게 평온한 삶을 허용하지 않는다. 죽은 줄 알았던 빈체가 돌아와 다시 남편 행세를 하기 시작하자 한코는 졸지에 정부의 신세로 전락한다.  


하찮은 거짓말로 호구지책을 삼는 보잘 것 없는 인물 한코 앞에 빈체가 압도적 위협으로 느닷없이 등장하며 이제 스릴러가 본격화한다. 여기서 한코와 빈체 사이 대립의 원인을 제공한 유디트는 원인 제공자이기는 하지만 보조적 역할에 머물고 스릴러를 끌어갈 전반적 책임은 한코에게 주어진다. 갑작스럽고 감당하기 힘든 위협이 보통 사람에게 또는 주인공에게 주어졌을 때 일반적으로 최초의 반응이라 할 회피를 거쳐 이후 위협에 맞서 위험을 감수하며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내는 과정이 흔히 스릴러에 담긴다고 한다면 한코는 전형적으로 이 역할을 수행한다. “쿨하고 강렬한 분위기의 정통 스릴러 영화”(24.hu)라는 평이 이런 이유에서 가능하다.


조금 부연하면 정통 스릴러의 틀을 고수하는 가운데 디테일에서는 현대적 감각을 십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부다페스트 스토리>는 스릴러이면서 로맨스이다. 스릴러에서 보조적 역할에 머문 유디트가 로맨스에서 주역으로 떠오른다. 유디트는 로맨스의 두 주역 가운데 하나이며 로맨스의 전반적인 기획가이다. 영화에서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시쳇말로 운명 때문이겠지만 그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적극 수용하여 상대(한코)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 이는 유디트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유디트는 로맨스에서 완벽한 주역이 아니다. 자신의 욕망을 분명히 확인하고 선택도 확고하지만 거의 한코에 전적으로 기대어 활로를 열어가는 인물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장면을 비유로써 사용하여, 영화 초반에서 한코가 유디트ㆍ빈체 집의 덫을 발견하지만 거기에 걸리지 않은 반면 유디트는 영화 막판에서 비록 급박한 상황이긴 하였지만 자기 집의 덫에 걸려 위기에 처한다. 삶의 큰 덫에 걸린 유디트를 한코가 구해주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로맨스와 스릴러는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하나마나 한 이야기이지만 로맨스와 스릴러가 겉돌면 당연히 영화가 좌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요 세 인물 중에서 영화 스토리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은 한코이었고 그러한 영화적 설계를 통하여 추가적인 영화의 지평이 확보된다.     

세계와 담화     


한코는 영화가 시작할 때 보잘 것 없는 인물이었지만 영화가 끝날 땐 영웅적인 인물이 된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바로잡아 주는데, 그것도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 그 일을 해낸다. 전술한 문장의 주체가 바로 영웅이다. 물론 영웅이 다양한 술어를 호출할 수 있지만 이 영화의 한코가 영웅의 술어에 해당함은 자명해 보인다.


한코가 호구지책으로 택한 거짓말은 모두 ‘영웅’을 소재로 하였다. 목숨을 걸고 기꺼이 아이를 구하는 타인을 대상으로 한 자신의 거짓말이 나중에는 자신이 행위의 주체가 된 진담으로 바뀐다. 영화는 부다페스트의 행적과 탈(脫)부다페스트의 행적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며 각각이 전자와 후자에 해당한다. 부다페스트의 스토리는 탈(脫)부다페스트 스토리를 위한 전주(前奏)였던 셈이다. 그리하여 로맨틱 스릴러에서 영웅서사까지 탄생한다. 어찌 보면 대놓고 영웅서사의 포즈를 취했지만 영화의 흐름에 휩쓸려 내려가다 보면 이 서사는 후경으로만 포착된다. 그러나 그 후경은 파노라마로 주어진다.

이 영화는 담화와 세계 사이의 동학을 그려낸다. 한코가 꾸며낸 하찮은 이야기들(Tall Tales)은 누군가의 세계로 진지하게 구축된다. 부재는 스스로 발화하지 못하지만 발화된 부재는 ‘발화된 부재’라는 그 담화로부터 세계의 구성력을 획득하여 지경을 넓혀가게 된다. 신이 세계를 만든 방식과 동일하다. 발화의 서사와 서사의 발화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다가 두 가지가 엉기지만 엉김의 해소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부다페스트 스토리>는 영웅서사뿐 아니라 삶의 비의의 한 조각을 관객에게 내어민다고 하겠다. 이것이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떡심’이다. ‘떡심’을 조금 친절하게 설명하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로, 허상과 실상이 뒤섞여 이해하기 힘든 전경ㆍ중경ㆍ후경을 만들어내는 삶은 마침내 인간이 무엇인가를 ‘본경’으로 하기로 결정함으로써 그 인간의 삶으로, 그 인간의 세계로 확정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헝가리영화 <부다페스트 스토리>에서 프랑스영화 <마틴 기어의 귀향>을 떠올렸다. 주요 등장인물이 아내, (진짜)남편, (가짜)남편으로 동일하다. 적대의 구조가 동일하지만 두 영화에서 승자는 달라진다. 또한 한 영화는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두 영화에서 나타난 거짓을 대하는 세 사람의 입장차이이다. <마틴 기어의 귀향>에서는 아내와 (가짜)남편이 거짓을 공유하지만 <부다페스트 스토리>에서는 (진짜)남편과 (가짜)남편이 물론 잠정적이지만 거짓을 공유한다. 두 영화의 이러한 차이는 세계에 대면하여 헤쳐 나가야 하는 인간의 운명에 관해 화두를 던진다고 할 수 있다. 화두는 화두로 남겨두자. 8월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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