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in Hollywood)>는 여러모로 화제를 모은 영화다. 당장 감독이 쿠엔틴 타란티노다. 타란티노 감독은 열 개의 작품을 찍고 은퇴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 영화는 그의 아홉 번째 작품이다. 주연으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가 나온다. 두 사람이 한 작품에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 소재면에서도 개봉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쿠엔틴 타란티노 스타일로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 장면은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실제사건을 다뤘다. 1969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영화배우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이 모델이다.
만삭의 몸으로 '찰스 맨슨' 일당에게 16번이나 칼로 찔려 죽음을 맞이한 테이트는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였다. 할리우드의 전설로 남아있는 50년 전의 사건을 매개로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감독과 배우가 뭉쳤으니 이 영화는 그 자체로 화제일 수밖에 없었다.
보통명사+고유명사
배급사의 보도자료에는 "1969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배우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을 기발하게 뒤집은 타란티노 감독의 마스터피스!"라고 소개된다. 실제 이 사건은 전체 러닝타임 161분 중에서 13분에 불과하다. "입을 다물 수 없는 엔딩"(CLARIN), "과거 할리우드와 '배우 샤론 테이트 살인 사건'을 가장 훌륭하게 재구성한 영화. 모든 장면에서 영화와 할리우드를 향한 타란티노의 열광적인 사랑이 느껴진다"(ROLLING STONES)는 극찬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외언론의 찬양은 좀 과도하다 싶다. 특히 "'배우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을 가장 훌륭하게 재구성한 영화"라는 평가에는 갸우뚱하게 된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사건이 등장한다.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큰 사건은 액션스타와 대역배우의 우정이다. 그 우정을 매개로 1969년 할리우드의 풍경이 그려진다. 한물 간 액션스타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마찬가지로 퇴물이 되어가는 그의 스턴트 배우 겸 매니저인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가 각자인 듯 함께하는 인생사를 어깨에 힘주지 않고 담백하게 풀어놓는다. 타란티노는 이 사건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은 9년 전이었다. 다른 영화를 작업 중이었는데 연로한 배우가 출연하고 있었고 그에게는 아주 오랜 시간 함께 일한 액션 대역배우가 있었다. 그때 본 두 분의 관계가 매우 흥미로웠고 내가 만일 할리우드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면 이 아이디어가 흥미로운 소재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입을 다물 수 없는 엔딩"을 빼고도 영화는 완성될 수 있었을 터이다. 그랬다면 타란티노 냄새가 나지 않는 잔잔한 영화가 되었으리라. 한데 감독이 타란티노인 걸, 그렇게 끝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전설의 사건이 강렬한 13분으로 소환된다. 여기서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가 실명이 아닌 반면 샤론 테이트는 극중 대사에서 실명으로 언급된 점을 주목하자.
'배우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은 극중에서 변경된다. 간단하게 말해, 테이트가 죽지 않고 실제 사건의 살해자들이 살해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변경이 "가장 훌륭하게 재구성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렵다. '배우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 자체의 재구성이 훌륭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일단 유보해야겠다.
한 영화에 등장하는 두 개의 사건은 연결돼야 한다. 잘 연결됐을 때 유기적이란 표현을 쓴다. 이 영화가 그러한지에 관한 판단에 앞서, 이 영화에서 나타난 '사건 성격의 역전'에 대해 살펴보자. 호명방식으로 파악하면, '샤론 테이트 살인 사건'은 비록 극중에서 샤론 테이트가 살해되지 않았지만 실명으로 인용되었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고유명사이다. 같은 관점에서 비실명으로 등장한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는 그렇다면 보통명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한 두 개의 사건은 '보통명사+고유명사'의 구조를 취하기에 대미의 고유명사가 주는 강렬한 인상이 엔딩크레디트를 보는 관객에게 각인된다.
그러나 이 구조는 내용상 역전된다. 실제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극중 사건은 '샤론 테이트 살해 기도자들을 살해한 사건'으로 연출된다. 현실은 픽션이 된다. 즉 고유명사는 보통명사로 치환된다. 반면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의 우정은, 타란티노가 밝혔듯, 비실명의 실제 사건이다. 보통명사는 동시에 고유명사인 것이다.
영화의 사건결합 구조를 단순화하면, '보통명사+고유명사'가 '고유명사+보통명사'로 뒤바뀐다. 따라서 실제 사건의 후광이 사라진 13분은 타란티노 류의 관객서비스로 격하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우정 사건'은 사실 보통명사이기도 하고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그린 그러한 유형의 우정과 인생의 쇠락은 할리우드에 있었던 특정한 스토리이자 시공을 초월하여 거의 모든 인간이 목도하고 체험하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은 오직 고유명사로 존재하며, 보통명사화는 가능하지 않다. 이 영화에서처럼 보통명사로 만들면 사건명칭이 달라져야만 한다. 요점은 이 영화가 얼핏 '보통명사+고유명사'의 구조를 취하지만 '고유명사+보통명사'일 수도, '보통명사+보통명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해석의 자유
타란티노 감독이 이러한 미묘한 역전을 의식하고 작품을 연출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고, 작품을 발표한 이상 대답할 필요도 없다. 관객의 입장에서 고민은 남는다.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을 '샤론 테이트 살해 기도자들을 살해한 사건'으로 바꿈으로써 획득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테이트를 위한 '영화적 해원(解冤)'일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고 한다면, '우정 사건'의 불가피한 세속성/속물성의 타란티노 식 마무리와 해학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다. 복선을 충분히 깔아놓은 뒤 한꺼번에 쏟아부은 할리우드식 피날레일까. 만일 그렇다면 13분의 화려함은 너무 소박해지고 만다.
어쩌면 잘 차려입은 다음 손 가는 대로 골라 쓴 모자가 전체적으로 잘 어울린 우연한 상황일까.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라고 해도 이때 그의 패션감각을 상찬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이때 앞에서 미뤄놓은 질문에 답하자면 '유기적'이라고 말해야겠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개의 사건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히피문화에 대한 혐오와 정치적 보수주의의 투영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살짝 엿보이지만,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우선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을 정확히는 '찰스 맨슨의 살인 사건'으로 정정하고 이야기를 진행하자. 맨슨 일당이 애초에 테이트를 노린 게 아니라 폴란스키/테이트 집의 전 거주자를 노리고 저지른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살인마 맨슨의 잔혹성과 폭력성을 보여줄 뿐 히피문화의 본질과는 무관하다. 그 사건에 대해서 감정을 표현한다면 응당 혐오일 수밖에 없다. 타란티노 식 폭력으로 사건을 뒤바꾼 것을 혐오양식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영화 속에서는 그 사건이 주인공들에겐 행운으로 그려진다. 우연찮은 행운으로, '릭 달튼'의 쇠락의 인생행로가 반전을 맞는다는 결말은 진지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았다기보다는 인생에 대한 희화화한 성찰에 가깝다. 의미나 구조가 반복을 거듭하고 있어, 어디까지가 감독의 의도인지, 어디부터는 감독의 본능적 감각에 의한 우연한 성취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즉 사족 같겠지만, 영화를 관람하고 어떤 메시지를 찾아낼지는 관객의 몫이다. 이 영화를 평할 때는 필요한 사족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