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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Oct 09. 2020

리차드 기어와 호아킨 피닉스가 만나는 기이한 방식

영화평(영화리뷰) ‘그리드’



‘그리드(GREED)’는 제목 그대로 자본가의 탐욕을 전면적으로 포착한 사회비판 영화이다. 비판정신이 넘쳐나고 주제의식이 확고하지만, 관객이 지레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이 영화는 재미있다. 영화사를 뒤적거려서 코미디란 장르로 사회비판을 담아낸 사례를 찾아내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재미와 비판 각각에서 높은 완성도를 구현하며 전체로서 볼만한 영화가 되기는 쉽지 않다. ‘그리드’가 그 드문 예에 속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픽션과 넌픽션, 비판과 재미, 고전과 키치, 로마와 그리스, 비극과 희극, 모던과 포스트모던 등 온갖 이항대립이 넘쳐나는 가운데 이 영화는 현대 문명의 핵심을 통쾌하게 또 아프게 짚어낸다.     


다큐적 코미디?     


배급사는 ‘그리드’를 ‘리얼 팩폭 코미디’로 소개했다. 같은 계보에 속한 영화로는 2014년에 개봉한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가 거론된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가 ‘월가의 늑대’로 악명을 떨친 조던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란 실존 인물을 그렸듯, ‘그리드’는 패션 브랜드 ‘TOPSHOP’의 CEO 필립 그린을 모티브로 했다. 


패션산업에서 자수성가해 영국의 거부 대열의 앞줄에 자리잡는 데 성공한 그린이 실제로 멕시코에서 벌인 초호화 파티를 패러디하여 이 영화는 세계화 시대 ‘패스트 패션’의 실상을 고발한다. 동시에 그린이란 사례를 통해 자본가의 탐욕을 뾰족하고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사회적 문제들의 핵심인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윈터바텀 감독은 “‘그리드’는 어떤 의미에서 허구지만, 현실에 관한 이야기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현실은 더욱 터무니없다. 가능한 실제에 가깝게 재현해 관객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에 특별히 공감하게 되는 대목은 “현실은 더욱 터무니없다”는 말이다. 윈터바텀 감독은 2013년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라나플라자’ 붕괴로 의류산업 노동자 1100여명이 숨지고 약 2500명이 다친 사고를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다국적 패션 브랜드의 고수익과 고성장을 보장하기 위해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시아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저임금의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하는 현실을 영화에서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스리랑카 사례로 바꾸었는데, 이 사례마저 “터무니없는” 현실의 예에 속한다. 


혹시 이 영화를 보고 윈터바텀이 우리 말로 빨갱이가 아니냐, 혹은 너무 자본주의에 적대적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관객이 있다면 윈터바텀 감독이 비참과 탐욕 양쪽에서 매우 자제하며 영화를 만들었고, 기본적으로 그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지향을 지녔음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1960~70년대, 길게는 1980년대 초반까지 영화 속의 모습은 한국의 현실이었다.   


윈터바텀은 영화제작 결정 후 ‘트립 투’ 시리즈 등에서 함께한 스티브 쿠건을 찾아가 출연을 의뢰하여 두 사람은 ‘그리드’에서 6번째로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탐욕의 화신을 열연한 쿠건이 ‘그리드’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는 과하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윈터바텀 감독이 영화에 등장하는 ‘패스트 패션’공장과 노동자, 난민을 실제 스리랑카 공장과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현실의 시리아 난민을 섭외하여 출연시켜 극화했다는 점이다. 보기에 따라 번잡한 경로를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극영화를 만들었지만 다큐정신을 시종일관 붙들고 있었다는 표지였다고 나는 판단한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융합하려는 시도가 좋은 결과를 산출하려면 연출자의 탁월한 균형감각과 예민한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윈터바텀은 어려운 일을 ‘그리드’에서 해냈다.    

 

글래디에이터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영화에서는 주인공 ‘리차드 맥크리디’(스티브 쿠건)의 생일파티가 열리는 그리스를 현재 시점이자 기본 공간으로 하여 과거의 영국과 스리랑카를 넘나드는 시공간의 뒤섞임이 목격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뒤섞임은 보이지 않는 뒤섞임에 비하면 약과다.


우선 실제 난민과 노동자를 영화 출연에 섭외할 정도로 꼼꼼한 윈터바텀 감독이 실제 그린의 파티장소인 멕시코 대신 영화에서 그리스를 택한 이유를 살펴보자. 영화 속 맥크리디 부자의 대화 장면 중에 아버지 맥크리디가 파티장소인 그리스의 섬을 과거 상업의 중심지였다고 찬양하자 아들 맥크리디가 폐허일 뿐이라고 대꾸하는 게 있다. 촬영지인 그리스의 미코노스 섬의 해변을 걸으며 나눈 대화이다. 이 대화는 영화 결말의 암시이자 모종의 주제의식일 수 있다. 아들 맥크리디가 극중에서 애매한 어조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거론한 것도 기억하자. 이것 또한 영화의 결말을 연상시킨다.

이제 ‘그리드’가 리들리 스콧의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서사의 무대로 설정하였음을 지적할 때이다. ‘그리드’는 잊을만하면 ‘글래디에이터’를 대사나 분위기나 세트로 소환한다. ‘그리드’가 ‘글래디에이터’에서 염두에 둔 인물은 외견상 검투사 막시무스였지만 실제로 불려 나온 인물은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로마황제 코모두스였다는 데에서, 그리스라는 장소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글래디에이터’에 연결된다.


1952년생으로 작위까지 받은 필립 그린이 아직 생존한 반면 극중 그의 분신인 리차드 맥크리디는 60살 생일파티에서 어처구니없이 죽는다. 그의 죽음은 우연한 계기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 우연은 필연이었다는 역설을 내포한다. 리차드의 죽음은, 그가 평생에 걸쳐 쌓은 업(業)의 정점이 60살 생일파티를 위한 모조 원형경기장에서 우연찮게 도달하면서, 자신의 탐욕을 이어받은 아들의 탐욕과 자신의 직원으로 일하는 스리랑카 노동자 출신의 분노가 기습적으로 화학작용을 일으켜 발생한다. 


그러나 죽음으로 카타르시스는 일어나지 않는다. 탐욕의 화신의 우연찮은 제거 혹은 징벌은 자본가 개인의 소멸을 뜻할 뿐 자본가 자체의 소멸이 아니기 때문이다. 탐욕과 자본은 사자밥에 마약을 타는 멍청한 ‘오이디푸스’에게 상속된다. 탐욕에 대한 일종의 복수는 일어나지만 그럼에도 자본은 영속하고 ‘패스트 패션’ 또한 이어지며 응징자는 다시 ‘패스트 패션’ 노동자로 돌아가야 한다는 냉철한 상황인식이 영화의 대미이다. 


그리스 비극의 오이디푸스가 실제로는 극중에 등장하지 않는 로마황제 코모두스로 아들 맥크리디에게 현현하고, 학대받은 누군가가 급작스럽게 분노를 터뜨리면서 리차드는 황망하게 사자밥이 되고 만다. 여기서 그리스 비극과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각각의 영역에서 가장 키치적인 내용을 추출하고 종합한 하이브리드가 되어 ‘그리드’의 결말로 승화한다. 윈터바텀 감독은 극중 대사를 통해 ‘글래디에이터’가 사실(史實)을 왜곡했음을 분명히 확인하면서도 ‘글래디에이터’의 설정을 받아들여 ‘탐욕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조잡하고 힙한 서사를 완성한다. 


신화의 서사와 탐욕의 서사는 블랙코미디에서 황당한 방식으로 합체하며 할 말을 분명하게 내뱉는다. Empire지를 인용하면 “그리스 태양 아래 묵직한 주제 속에서도 경쾌한 풍자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과거와 현재의 그리스, 과거와 현재의 로마,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와 세계화 시대인 현재, 영화와 그리스 비극, ‘메타’ 영화와 상영 영화, 그리고 거대 자본가와 가장 비참한 노동자 등 많은 생각거리가 영화에서 발견되지만 모든 것이 조화롭게 또 과장하거나 힘주지 않은 채로 재미와 비판을 완성한다.      

리처드 기어의 그리드     


‘그리드’에는 리차드가 거부로 일어서는 계기로 거대 패션기업의 인수합병이 그려진다. 그 방법이 현대 자본주의에서 유명한 LBO(leveraged buyout)라는 것으로, 영화에 나온 건 아마 ‘프리티 우먼’이 가장 널리 알려졌지 싶다. LBO를 요약하면, 영화 ‘그리드’에 잘 설명돼 있듯이 사들이려는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잡혀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뒤 그 돈으로 그 기업을 인수하는 방법이다.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고 합법적이고 현실에서 통용되는 방법이다. ‘프리티 우먼’의 리처드 기어는 그렇게 인수한 기업을 쪼개서 팔아 이익을 남기고, ‘그리드’의 리차드는 인수한 기업에서 배당 등으로 이익을 빼내 가는 수법을 쓴다. ‘그리드’ 영화의 첫 장면이 이 약탈을 표현했다. 약탈이란 표현이 가능한 게 자본가가 자기 돈을 거의 투자하지 않은 채로 회사 이익을 가로채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은행이 거액을 빌려주게 하는 힘이다. 극중 리차드의 전처 ‘사만다’(아일라 피셔)가 “돈이 돈을 번다”라고 말하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탐욕으로 무장한 금권이 더 많은 돈을 벌게 한다. 윈터바텀 감독은 그들의 탐욕과 사치 외에 조세회피, 갑질 등 자본의 사악한 행태를 깨알같이 유머에 버무려 영화에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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