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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Oct 14. 2020

기저귀 차고 기관총 쏘는 ‘마피아의 전설’ 알

영화평*영화리뷰) ‘폰조’

영화평*영화리뷰) ‘폰조’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마피아가 알폰소 카포네(1899년 1월 17일~1947년 1월 25일)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흔히 줄여서 ‘알 카포네’라고 부르는 이 전설의 마피아는 왼쪽 뺨의 독특한 흉터로 인해 ‘스카 페이스’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뉴욕 빈민가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나 혈통상으로 완벽한 마피아다. 


1920년대 미국 금주법 시대 시카고를 주름잡은 알 카포네의 범죄행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특히 영화 <폰조>에서 언급되는 1929년 2월 14일 ‘성 발렌타인 데이의 대학살’로 악명을 떨쳤다. 널리 알려진 그의 인생을 자세히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미국 범죄영화에서 전설의 배우에 속하는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가 모두 알 카포네를 연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는 것으로 그의 악명을 입증하기에 충분하지 싶다. <폰조>를 통해 톰 하디는 알 카포네를 연기한 배우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폰조’는 알폰소 카포네의 애칭이다.     


톰 하디 1인극     


톰 하디가 연기한 알 카포네는, 카포네를 소재로 한 모든 영화를 일일이 조사하지 않아서 확언할 수는 없지만 가장 특이한 캐릭터로 꼽힐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기저귀 차고 기관총을 쏘는, 뇌매독과 치매로 인해 앉아서 똥오줌을 싸는, 전설의 마피아의 생애 마지막 1년을 그렸다. 따라서 <폰조>를 범죄영화, 액션영화를 생각하고 관람한다면 극장 문을 나서며 크게 실망할 공산이 크다. 


극중 나이는 48세에 불과하지만 70~80세의 병 든 노인을 연상시키는 폰조에게서 전설의 갱의 풍모를 찾아내기는 힘들다. 2012년 첫 장편 영화 <크로니클>이 성공하며 단숨에 ‘미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최연소 감독’으로 기록된 조쉬 트랭크 감독이 <폰조>를 두고 “쏟아지는 평범한 영화 속에서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듯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른 영화다. <폰조>가 카포네를 다룬 작품 중에서 단연 “파격적인 영화”임은, 영화가 다루는 카포네 생애의 시기, 하디라는 배우의 연기 등이 기반이 된다. 하디의 연기는 발군이어서 <폰조>를 1인극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이다.

<폰조>는 카포네를 따라다닌 두 가지 소문을 극화의 소재로 삼았다. 하나는 카포네가 숨겨놓은 1천만 달러 돈가방이고, 나머지는 카포네의 혼외자식이다. 두 가지에 관하여 카포네의 생존시는 물론 사후에 무성한 소문이 떠돌았다. 카포네가 천문학적 돈을 벌어들였기에 어딘가에 거액을 숨겨놓았을 것이고, 또한 그가 많은 정부를 거느렸기에 혼외자가 있었을 것이란 추측은 상당한 개연성을 갖는다. 실제로 자신이 카포네의 자식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잖았다. 그러나 영화 <폰조>의 핵심 소재가 된 두 가지에 대해선 아무것도 사실로 증명되지 않았다. 당연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로 증명되지 않았지만 사실일 확률이 매우 높은 돈가방과 혼외자는 영화의 얼개를 구성한다. 여기서 핵심은 외양상 전면에 배치된 두 가지 소재 자체보다는 소재의 성격이다. 소문과 진실, 사실과 허위, 환상과 현실, 영화와 실제 등은 이 영화에서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유일한 사실 혹은 진실은, 그것은 사실일 수도 진실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실이 아닐 수도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의 카포네가 진짜로 치매에 걸렸는지, 치매에 걸린 척을 한 것인지, 두 가지 다인지 또한 확인되지 않는다. 시작과 끝의 객관적인 진술과 극중 주인공 카포네의 오락가락 인식을 영화에서 하나로 만나게 한 탓에 시점이 사실상 붕괴한다. 시제구분이 마찬가지로 흐릿하다. 통상 범죄영화에서 노년 혹은 죽음을 앞둔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는 ‘플래시백’이 많이 쓰이는데, <폰조>에서는 원천적으로 시제가 혼융되어서 ‘플래시백’이 불가능하다. 현재가 확고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가 동시에 무너진다.      


파격적 영화가 겨냥한 것은?     


이러한 ‘파격적 영화’는 무엇을 겨냥하였을까. 단순화하여 말하면 <폰조>는 범죄영화라기보다는 철학영화 같다. 가장 오래 남을 삶의 애착을 표상한 돈가방, DNA 안에 들어 있는 궁극적 애착인 혈연을 영화는 종과 횡으로 직조하면서 그 패브릭 위에다 모종의 성찰 같은 것을 던져놓는다. 상대성이론에서 설명하듯 성찰의 무게가 그 공간을 구부러뜨려 카포네라는 인물의 세계를 형상화하게 된다.

성찰은 업(業)이란 말로 바꿔도 무방하다. 종횡의 직조가 선행해야 그 위에 업을 올릴 수 있고, 이어 그 업의 무게로 직물이 휘어지는 상호작용이 일어나며 카포네의 삶을 최종적인 형상으로 보여주게 된다. 이 영화에서 바로 그것을 그려내었다.


업을 다른 말로 바꾸면 죄업이 되지 싶은데, 카포네는 ‘성 밸런타인데이의 대학살’ 외에 많은 범죄에 가담하여 그가 살인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건수가 300건 이상이라고 한다. 개인 수준에서 이루어진 전대미문의 폭력은 삶을 1년 남긴 그의 의식에 삼투하여 기이한 흔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끝나기 전에 돈가방을 보여주고, 혼외자와 카포네의 상봉을 마련한 이 영화에서, 카포네는 영화 내내 발휘된 집착에도 불구하고 종국엔 속수무책일 따름이다. 특히 혼외자가 아버지 카포네 옆에 앉아 말하자면 극적인 부자상봉이 이뤄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는 제 손 위에 아들의 손이 얹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영화에 배치한 맥거핀 비슷한 장치를 비롯하여, 이탈리아 영어 악센트, 시거 대신 사용한 당근 등 소소한 볼거리가 찾아보면 많다. 무엇보다 파격적 연출이 안출한 특별하지 않지만 가볍지 않은 전언도 찾아낼 수 있다. 만일 알 카포네란 이름에서 상상할 수 있는 전형적인 영화를 예상하고 극장에 간 관객이라면 감독에게 화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살짝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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