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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Jul 09. 2024

노벨문학상의 문장으로 아침을 여세요

인문학 9단의 해제와 함께 메일로 받아보는 노벨문학상 문장


매일 하나 인문학 9단 안치용의 해제를 곁들여 노벨문상의 문장을 배달해 드립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의 문장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인류 정신문명의 최고 정수라고 할 그들의 심오한 성찰과 촌철살인의 지혜를 가능한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최소 비용으로 프로젝트를 꾸몄습니다. 책을 통으로 읽는 게 최선이지만 때로 책 속에 보석으로 박힌 한 두 문장만으로도 인생의 오묘한 진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인문학 9단과 함께 하는 노벨문학상의 문장’은 인문학 구독 서비스로, 약정한 기간에 약정한 횟수로 저명한 인문학자인 안치용이 엄선한 노벨문학상 수상작 속의 문장을 감상 포인트 및 맥락과 함께 메일로 배달받을 수 있습니다. 문학, 예술, 사회과학, 신학 등을 넘나드는 전인적 지식인이자 전천후 인문학자인 안치용은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서 10년 넘게 노벨문학상 독서 모임을 지도하며 멘토로 활동했습니다. 그가 선정한 노벨문학상의 고갱이 문장을, 압축적이지만 풍성한 그의 해석과 함께 전달해 드립니다.


바쁜 일상에 쫓겨 마음과 달리 책과 담을 쌓고 지내는 현대인.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완독하지 않더라도 그 작품의 정수를 담은 하나의 문장만으로 때로 인생은 오로라처럼 감각적으로 환기되고 죽비처럼 마비된 정신의 바닥이 휘저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강한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작은 지혜, 혹은 대화하거나 글을 쓰는 데 써먹기 좋은 영험한 소재가 되지 않을까요. 하루 1~2분 시간 투자로 삶을 우아하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이메일로 배달해 드리는 ‘노벨상의 문장’과 별개로 노벨상의 문장이 적힌 아름다운 책갈피 선물을 선택하신 분께는 책갈피 1종 3매를 일반우편으로 보내드립니다. 책갈피로 직접 사용하시거나 주변에 가벼운 선물로 나누셔도 좋겠습니다. 


다음과 같은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장(예시)이 여러분을 이메일로 찾아뵙고, 그중 어떤 문장은 책갈피로 만들어져 전달됩니다.


“우리는 모두 그저 인간일 뿐이고, 각자가 하나의 시도이며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네. 그렇지만 그 인간은 완성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어야 해. 중심을 향해 노력해 가야지 가장자리로 빠져나가려 해서는 안 돼”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안개는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가려 주고 세상을 우리로부터 가려 주지. 그래서 안개가 끼면 모든 게 변한 것 같고 예전 그대로인 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아무도 우리를 찾아내거나 손을 대지 못하지.” - 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최후의 심판을 기다릴 필요 없어요. 매일 매일이 최후의 심판이니까요.” -알베르 까뮈 <전락>     

“어떻게 살 것이니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이냐에 대한 꿈이다.” -J. M.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먀>   

“줄을 선다는 건 기다린다는 거지. 만약 한나절 꼬박 줄 서서 기다렸는데, 파는 게 갈치가 아니고, 빨래판이었다면.” -가오싱젠 <버스 정류장>     

“죄가 단순히 말의 문제인 사람에게는 구원도 단지 말에 불과하다.” -윌리엄 포크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바로 그 순간 난 누군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으면, 누군가 내게 말해 주었으면 했어. 개새끼! 라고.” -르 클레지오 <조서>     

“흥미진진한 삶의 현상들은 언제나 이처럼 과거와 미래의 이중 시각을 갖고 있어서,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동시에 과거를 불러내는 경향이 있지.” -토마스 만 <파우스트 박사>  

“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란다. 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이게 쟁점이지.”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들>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으며, 누군가가 다가오면 나는 계속 눈을 내리깔고 있었어요.” -압둘라자크 구르나 <바닷가에서> 


'인문학 9단과 함께 하는 노벨문학상의 문장'은 대략 다음의 분량과 형태로 매일 여러분을 찾아뵙게 됩니다. 


[토마스 만: “흥미진진한 삶의 현상...”]


“흥미진진한 삶의 현상들은 언제나 이처럼 과거와 미래의 이중 시각을 갖고 있어서,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동시에 과거를 불러내는 경향이 있지.”

-토마스 만 <파우스트 박사>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47년에 출간된 <파우스트 박사>는 ‘한 친구가 이야기하는 독일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생애’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 음악을 매개로 가장 예민한 시기의 독일 정신을 조명한다. 주인공은 ‘한 친구’라는 화자가 말하는 음악가 아드리안이다.


소설은 괴테의 <파우스트>와 그 이전의 파우스트 전승을 현대적으로 계승했고, 매독에 걸려 인생 후반부에 미쳐버린 것으로 알려진 니체를 모델로 했다. 쇤베르크의 음악이론이 차용돼 곳곳에 등장하고 여기에 작가의 깊은 인문적 성찰이 버무려져 있어서, 그의 다른 소설 <마의 산>만큼이나 읽기에 어려운 책이다. 아드리안이 ‘친구’와 대화 중에 한 이 문장은 삶의 현상을 시제와 관련하여 흥미롭게 꿰뚫었다. 사실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특성이 없다면 흥미진진한 삶의 현상이란 게 성립하기 어렵다. 과거에서 미래로 한 걸음씩만 옮아가는 ‘현재의 인간’에게 인용문이 말한 것과 같은 이중적인 시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로 한 걸음 내디디면 과거로부터 한 걸음 떠나오게 되는 일상의 삶은 언제나 진행형이어서 특별히 미래와 과거에 관한 지각없이, 또 시제의 균탁(龜坼) 없이 분주한 현재에 통합되기 마련이다. 미래로 느닷없이 비약하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날 때 삶의 뒤편으로 확 달라진 풍경을 인식하곤 과거를 환기한다. 그러한 특별한 비약과 갑작스러운 환기야말로 흥미진진한 삶의 현상의 이면이다. 미래를 향한 전진은 문맥상 긍정적이다. 그렇다면 불러낸 과거는 어두운 내용일 것이다. 때로 미래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어쩌다 운 좋게 또는 갖은 노력을 기울여 빛나는 미래를 거머쥐는 순간, 우리가 종종 망쳐버린 현재가 과거로 축적돼 숨겨져 있다가 빚쟁이처럼 등장하는 게 인생이 아니던가. 그 성공과 무관하게 미래는 대비할 수 있지만, 과거를 대비하지 못한다는 게 언제나 우리를 슬프게 한다. 1929년 노벨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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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버나드 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는 단연 대단한 작가로 특히 묘비명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로 회자하는, 쇼의 유언으로도 알려진 묘비명은 그 문장의 설봉과 함께 자체의 진위를 포함한 주변의 일화로 유명하다. 떠도는 묘비명 혹은 유언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원문과 비교하면 인터넷에 떠도는 묘비명이 어쩐지 오역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떠도는 한글 묘비명에서 쇼를 연상시키는 신랄함과 발랄함이 느껴져 정말 그가 한 말 같다. 최근 마음산책에서 출간한 『버나드 쇼의 문장들』에서 “이만큼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지.”로 옮긴, 말하자면 오역을 바로잡은 문장은 반듯하고 꾸밈없는 진술이지만 쇼 특유의 까칠함이 사라진 게 아쉽다.


원문을 한글로 옮기는 데의 어려움은 “이런 일”로 옮긴 “something like this”이다. 죽음으로 해석하며 “살 만큼 살았으니 죽는 것도 좋은 일이지 않은가” 하는 달관을 보여준다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가능하고 나름의 달관이긴 하나, 쇼의 통찰치곤 지나치게 평범하다고 할까. 


‘이것(this)’이 미지의 것으로 남기에 보기에 따라 큰스님의 법어 같다는 반론 또한 예상된다. 우물쭈물하다가 예기치 못한 결말을 맞는 것보다는 두루두루 삶을 충분히 노닐다가 뭔가 훌륭한 것(something)을 성취하거나 도달하며 인생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상상이 위안이 된다.


문제는 쇼가 무덤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화장하여 살던 곳에 뿌렸으니 묘비명도 없지 않을까. 없는 무덤에 세워진 묘비명이 이렇게 후대에 강한 인상을 남긴 걸 보니, 쇼의 인문적 잔영이 대단하긴 대단하다. 없는 묘비명이 주는 통찰과 위로. 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100살 가까이 살았는데, 우물쭈물한 인생을 살지는 않았던 듯하다. 1925년 노벨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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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문학상의 문장> 메일 발송 서비스는 선택에 따라 주 1회, 주 3회, 주 5회의 서비스를 1개월, 3개월, 6개월, 50년 단위로 제공합니다.


안치용

전인적 지식인, 전천후 인문학자


-보통 ESG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상임이사, 국가기술표준원 ESG위원회 위원,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등으로도 활동하는 지속가능성ㆍ사회책임ㆍESG 분야의 국내 대표적 전문가이다. 경희대, 카이스트, 한국외대에서도 책임경영과 지속가능경영을 가르쳤다. 대학, 산업계, 시민사회, 공공 등 논의의 장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지속가능성, ESG를 주제로 많은 사람과 대화하며 사회적 의제화에 힘을 쏟는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문학 신학 예술 등을 공부하고 관심 있는 분들과 토론하고 글을 쓴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 오마이뉴스 등의 매체에 고정코너를 운영하며 정치 영화 문학 예술 등에 관한 글을 쓴다. 가천대에서 저널리즘 MBA 주임교수를 지냈고,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글쓰기 담당 교수이다. 여러 경로로 다양한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문예비평계간지 크리티크M 발행인이다.


-경향신문에서 22년을 경제부ㆍ산업부ㆍ문화부ㆍ국제부 기자로 활동했다. 2007년부터 2013년 퇴사까지는 사회책임 전문기자를 지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과 생활ESG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위원(장관급)을 역임했다.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을 1991년에 졸업하고, 서강대에서 경제학 석사(2009), 경희대에서 경영학 박사(2013) 학위를 받았고 한신대에서 신학 석사(2021년)를 받고 이어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세계문학 오디세이아-광인의 복화술과 텍스트의 오르가슴', ‘지식을 거닐며 미래를 통찰하다’, ‘코로나 인문학’, ‘ESG, 배려의 정치경제학‘, '인류의 북극곰 멸종 프로젝트', ‘미래 세대를 위한 기후 위기를 이겨 내는 상상력’,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등 50권 가까운 저서가 있다.


-매일 밤 개를 산책시킨다. 한때 바둑 등산과 같은 취미다운 취미가 있었으나 지금은 안타깝게도 산책 말고는 책과 영화 보는 것만이 취미 같지 않은 취미로 남아있다.


유튜브: 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https://www.youtube.com/channel/UCcvWLyCQItay03tqg4_euUQ)


트레바리: 이럴 때 읽지 언제 읽어, 노벨 문학상 수상작(https://m.trevari.co.kr/product/d086e1a6-1d33-4e9f-99c1-8cdadf3112c8)


르몽드디플로마티크: 노상수기(노벨문학상 수상작 읽기 모임)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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