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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Aug 06. 2024

좋은 연기, 그러나 ”딱 요만큼“ 아쉬운 영화

영화평 <리볼버>

문학이든 영화든 마지막 장면이 어렵다. 관객의 뇌리에 남은 영화 마지막 장면이 적잖을 텐데, 그중엔 배우의 얼굴이 포함된다. 주인공 야쿠쇼 코지(役所広司)가 운전하는 얼굴을 클로즈업한 <퍼펙트 데이즈>의 엔딩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싶다. 매우 인상적인 엔딩이어서 많은 관객이 주인공의 그 표정을 기억하며 극장 문을 나섰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마 성공적인 사례에 속할 <퍼펙트 데이즈>처럼 대사 없이 클로즈업한 얼굴로 영화를 끝내는 건 감독이나 배우에게 모두 큰 도전이다.      


얼굴의 영화?     


오승욱 감독은 <리볼버>를 ‘얼굴의 영화’라고 규정했다. 얼굴의 미세한 선과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카메라의 앵글과 빛에 신경을 썼다. 예컨대 영화에서 하수영(전도연)의 정면 클로즈업이 중요한 대목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된다. 감정이 비집고 새어 나오는 장면은, 되도록 측면 클로즈업으로 배치해 마치 관객이 발견한 것과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오 감독이 "마지막의 하수영 얼굴을 위해 달려온 영화“라고 말한 만큼 <퍼펙트 데이즈>의 엔딩만큼이나 마지막의 전도연 얼굴은 중요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마지막은 얼굴이 핵심이 아니었다. 주인공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바닷가에서, 구운 꽁치를 안주로 소주를 크게 들이키는 동작과 분위기가 얼굴을 설명한다. 대사는 없지만 즉석구이 꽁치를 파는 가난한 어촌 아낙과 주인공 사이에 상호작용이 있고, 얼굴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느낌이 영화의 엔딩이다. 


게다가 하수영 말고 또 다른 얼굴을 끼워 넣어 보여주며 영화를 끝냈기에, ‘마지막의 하수영 얼굴’이 말 그대로의 ‘얼굴’이 아닌 데다 마지막 얼굴로도 집중도가 떨어진다.


영화는 익숙한 줄거리로 구성됐다.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 형사 하수영이 출소 후 약속과 달리 보상을 받지 못하자, 보상을 약속한 범죄자들을 찾아가 힘으로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이런 역할은 대체로 남성이 많이 했으나 <리볼버>에선 여성이라는 게 살짝 다른 점일까. 그것도 전도연이 주연을 맡아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영화 내 등장인물은 하수영 대 하수영의 적대 진영으로 나뉜다. 보상을 약속한 앤디(지창욱)를 찾아가 약속한 보상을 받아내는 과정에 하수영을 돕는 사람과 앤디를 지키는 사람이 얽혀서 영화적 흐름을 만들어낸다. 유일하게 이 대립에서 애매한 입장을 견지하며 모호하게 처신한 인물이 윤선(임지연)이다.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면서 이쪽ㆍ저쪽에 모두 협조하고 모두 배신한다. 종국엔 사면초가인 같은 여자 하수영을 조력하기로 선택한 듯하다.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은 캐릭터     


화류계 여자인 윤선은 영화의 시작과 끝을 하수영과 함께한다. 산전수전 다 겪었고 손해 보지 않고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에 일가견이 있으며 톡톡 튀는 성격이다. 복잡하지 않은 캐릭터로 설정됐고 그렇게 연기했지만, 하수영을 돕는 이유와 과정의 심리는 미묘하고 복잡한 것으로 표현했다.


하수영과 윤선은 이 영화에서 사건의 발제자 역할을 하고 초반에 사망한 경찰(이정재)을 사랑한 여자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같은 남자를 사랑한 여자로서 느끼는 동질감에다, 극중에서 윤선이 말하듯 남자한테 강하지만 불쌍한 여자에겐 약한 윤선의 성정이 그를 하수영의 조력자가 되게 했을까. ”딱 요만큼만 언니(하수영) 편이에요“’라는 표현으로 양면적인 감정을 잘 드러냈다. 


윤선이란 캐릭터가 없었다면 영화의 재미가 반감했다. 매력과 현실감을 모두 잡아낸 연기였다.     

재미는 있지만..     


하수영이 죄를 혼자 뒤집어쓰고 교도소에서 2년을 지낸 대가는 현금 7억 원과 아파트 한 채이다. 수감 전에 자신이 입주하기로 이미 예정한 아파트여서 아파트가 통째로 ‘대가’에 포함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범죄영화에서 취급하는 금액치고는 소박하다. 극중 본부장(김종수) 말대로 7억 원은 크지도 적지도 않은 돈이다. 일반인에겐 당연히 큰돈이고, <리볼버>가 다룬 범죄 세계에선 본부장 말처럼 양가적인 것이며, 보통의 영화적 설정에선 적은 돈이다. 다른 범죄영화에 등장한 숫자와 비교하면 너무 미약해 보인다.


하수영이 일확천금을 노리지 않고 주기로 약속한 ‘적은’ 돈을 받아낼 뿐이란 절제된 설정이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하수영에게서 돈다발 하나를 받은 어촌 아낙이 거기서 5만 원짜리 한 장만 가져가고 돈다발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장면과 맞닿는다. 


이러한 개연성의 설정은 폭력을 과장하지 않는 전개와 연결된다. 여기에 전도연의 경륜이 느껴지는 차분하지만 웅숭깊은 연기가 어우러져 이 영화의 차별점을 만들어냈다. 다만 몇몇 개연성 설정에서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는 게 아쉬웠다. 


대미로 치닫는 산길 장면에서 등장인물이 총집결하는 것이 불가피했을 터이고 따라서 사태 해결을 위해서 앤디가 꼭 모습을 보여야 했겠지만, 휠체어를 탄 앤디가 폭력배들을 데리고 나대는 게 현실적이지 않다. 폭력배가 얼떨떨한 동네 깡패인 것도 좀 그렇다. 경찰관을 살해하고 자살로 꾸밀 역량과 배포가 있는 범죄조직의 일처리 방식이 아니다. 앤디의 개인적인 보복인지, 앤디가 소속된 범죄조직의 대응인지 불명확하다. 


하수영과 폭력배들 사이의 산중 결투 장면에서는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밖에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한 장치와 설정이 정교하지 못하거나 다소 불필요한 구석이 있어서 부주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어 나름의 연출력을 인정받은 영화 <무뢰한>이 <리볼버>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무뢰한>에 출연한 전도연이 오 감독의 작품이라면 또 출연하겠다고 한 말이 <리볼버>로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무뢰한>을 본 관객은 김남길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다른 얼굴의 등장을 기다렸을 테지만, 끝내 다른 얼굴이 나타나지 않았고 김남길이 욕을 내뱉으며 끝난다. <리볼버>에선 대사 없는 전도연의 인상적인 장면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얼굴을 엔딩에 살짝 등장시킨다. 지금과 다른 엔딩이 얼마든지 가능해 보이지만, 열린 결말 혹은 배신의 암시 등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둔 산만한 삽입은 피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단순하게, 애초에 염두에 두었듯 전도연의 얼굴로 잔잔하게 함축을 담아 끝냈으면 어땠을까.


”관객들이 전도연의 얼굴을 보고 싶어 했으면 좋겠다“는 오 감독의 바람은 맞아들어간 듯하다. 단 그건 전도연의 얼굴이 아니라 연기이지 싶다. 제작진이 자랑하듯 전도연의 얼굴은 무표정하지 않았고 무표정한 표정이 넘실거렸다는 얘기는 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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