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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파이스토스와 아프로디테

마리아의 판테라 유복자 입양기

by 안치용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마리아는 미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리아의 매력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것을 거의 깨닫지 못했다. 당연히 매력의 원천은 그녀에게 은밀하게 달린 다이아몬드방울뱀의 꼬리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다이아몬드방울뱀이란 얘기가 아니고 무슨 조화인지 다이아몬드방울뱀의 꼬리만 그녀에게 옮아가 있었다. 마리아와 스칼렛 오하라의 근본적인 차이였다. 마리아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데에 자타가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보수적인 기독교인 스타일을 거부하며 여성스럽게 또는 조금 아니 많이 넘치게 꾸미는 걸 즐겼다. 마리아의 여성성은 라디칼 페미니즘은 물론 흔히 말하는 보수주의와도 결을 달리했으며, 현대 자본주의의 영향을 물씬 받은, 대체로 모두로부터 비판받는, 이른바 대상화라는 말이 자주 따라붙는 상업화한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여성성이었다고 할 수 있다. 스타일 말고는, 그녀의 가치관이 기독교 교회 전반의 시각과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었고 음전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매력적이고 자신감 넘치며 무엇보다 성적 대상화가 꽃핀 몸 위로 신실한 신앙의 열정이 얼굴에 반짝였다. 마리아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아가 아닌 요셉에게) 놀랍게도 아이를 가졌고, 임신과 출산, 아주 짧은 육아의 통과의례를 마치고 다시 성적 신실함과 활력이 넘치는 재원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왔다. 11일의 육아 경험이 그녀 인생에 어두운 흔적을 남겼지만,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는 듯이 지냈다.


주된 활동 무대는 교회였다. 강대상 앞에서 아내가 마이크를 잡고 은혜가 넘치는 목소리와 몸짓으로 찬송을 드릴 때 눈을 감으면 그녀의 하복부에서 방울뱀 꼬리가 내는 소리를 요셉이 들을 수 있었다. 마리아와 요셉이 교차하는 공간인 교회에서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참 지나 깨닫고 보니 아이가 죽고 나서 집에서는 그 소리가 사라진 상태였다. 소리의 중심인 하복부, 소망으로 충만한 가슴께, 믿음만큼이나 탐스럽고 풍성한 엉덩이 등 귀가한 아내의 생물학적이고 기독교적인 주요 지표 부위에 느근한 시선이 제법 많이 꽂혀 있는 걸 요셉은 발견했다. 마리아가 옷을 벗으면 몸에서 화살이 후드득 떨어졌다. 그중 정곡을 찌른 탄탄한 화살을 주워 들고는 촉과 깃의 세공을 살펴보는 것이 아메리카, 그리고 한국에서 아내와 함께 살 때의 요셉의 취미 생활이었다.

Mars, Venus and Cupid Mars and Venus With Cupid and a Dog (About 1580), Paolo Veronese (Italian, 1528-1588).jpg Mars, Venus and Cupid Mars and Venus With Cupid and a Dog (About 1580), Paolo Veronese (Italian)

정작 마리아는 자신에게 성적 매력이 넘치게 뿜어져 나온다는 사실을 몰랐다. 혹은 관심이 없었다. 자신에게 특별한 기관이 추가로 달려 있으며 남자를 보면 자동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몰랐다. 요셉의 관찰로는 마리아의 꼬리가 여자에겐 반응하지 않았다. 마리아는 자신이 여성스럽게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녀에게 꾸미는 오직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마리아에게 하나님은 남자였고, 그중에서도 최고의 남자였다. 하나님과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했고, 아버지의 후계자가 될 나를 사랑할 예정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요셉은 자신의 아내가 미인이 아닌 걸 일찌감치 알았다. 처음부터 다이아몬드방울뱀의 꼬리를 알아챈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인인지 아닌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첫눈에 그를 휘어잡은 아내의 매력은 항문 위에서 깃발로 나부끼는 방울뱀의 꼬리였다. 매력의 자장에 오래 붙들려 있지 못했다. 운명 때문인지 벗어나기가 생각보다 쉬웠다. 그 자장 안에 오래 머물고 싶었기에 이른 이탈이 아쉽긴 했다. 그러고는 어느 사이엔가 요셉은 임포인 남자가 되었다. 아이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이 너무 컸기에 죽은 아이를 되살릴 몸의 준비가 사라진 것에 당혹할 틈이 없이 그렇게 됐다. 어차피 아내가 스칼렛 오하라가 아닌 데다, 더더군다나 그녀가 클라크 게이블을 필요로하지 않았다.


요셉의 생각에, 임포 전보다 임포 후에 그들 사이가 더 좋았다. 두 사람 사이로 강이 흘렀다고 가정하면 임포 전 아주 잠깐엔 때로 넘치고 때로 수위가 내려가는 나일강처럼 유기물질이 풍부한 물이 흘렀다. 임포 후에는 시나이반도 사막의 와디처럼 그들 사이에 물이 흐르지 않아 왕래하지 않았지만 마음을 먹으면 양안을 편히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강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서로의 심사가 화평했다. 상류에 큰비가 내리면 그들의 와디에 탁한 격류가 흐르지 말란 법이 없었지만, 길운이 들었는지 그들이 와디라면 상류가 없는 와디였다.


강바닥처럼 요셉의 강둑에도 푸석푸석 먼지가 쌓여 있었다. 어떤 먼지는 하늘의 별로 폴짝 뛰어올라 뻔뻔하게 반짝거렸다. 모든 사람이 뻔뻔하지 않듯 모든 먼지가 별이 될 수는 없었다. 별이 된 멀리 있는 먼지를 시샘하며 땅 가까이서 별이 되지 못한 먼지들이 옥신각신하는 바람에 눈이 늘 윤리교사처럼 뻑뻑했다. 가끔 먼지를 씻어내려고 울어야 했다. 그때나 잠깐 강에 물이 흘렀다.


저편 아내의 강둑은 초록이었다. 강둑 위에 아내가 있는 게 아니라 아내가 강둑이었다. 아내가 등을 하늘로 하고 누우면 하나님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그곳에 단비를 내려주어 지평선 같은 아내의 등에 꽃과 풀을 무성하게 했다. 아내가 똑바로 누우면 꽃과 풀은 뿌리로 바뀌어 땅을 깊이 파고들었고 수상하게 뿌리와는 먼 쪽인 아내의 음부에 소나기가 퍼부어 또 거기서 싹이 났다. 싹이 나무가 되었고 나무가 자랐다. 음모 하나하나가 빠른 속도로 튼실하게 자라 각각 거대한 나무가 되었다. 장인의 그 일을 겪고 아내가 아메리카로 되돌아간 후 나무의 생장 속도가 더 빨라졌다. 아름다웠다. 가장 키가 큰 것은 레드우드 아메리카 국립공원의 아메리카 삼나무 하이페리온만큼 컸다. 푸석거리는 요셉은 이편 둑 위에 한미하게 서서 저편 둑을 울창하게 채운 거목의 숲을 바라보았다. 숲 우듬지 위로 마리아가 샛별과 계명성 사이를 오가다가 화성을 휘감아 하늘을 수놓을 때 요셉은 절뚝거리며 자신의 둑 밑으로 내려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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