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판테라 유복자 입양기
창밖으로 경쾌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소리로 보아 굽이 가늘고 길다. 뒤축과 바닥이 만들어 낸 마찰음만으로 그 굽이 기꺼이 감당하였을 아담한 신체의 탄력이 넉넉히 그려졌다.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느린 화면인 양 여자가 옆으로 휘영청 달처럼 떠오른다.
잠시 정지화면 후 화면이 다시 움직이며 유리 너머로 마찰음이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발소리로 상상한 모습을 이제 그녀의 뒤쪽에서 실제로 바라본다. 생각보다 키가 컸고, 보일 만한 곳이 다 풍성한 글래머의 몸을 지냈다. 시간이 한참 지나 모세가 요셉의 동거인으로 간택을 받고 그러고 또 한 2년쯤 지났을까, 어느 날 마리아를 처음 만난 이 날을 그는 문득 떠올렸다. 걸어가는 모세의 뒤태를 보다가 이유 없이 그 날의 마리아를 떠올렸고 이어 자동완성 기능이 작동한 듯 그 날 그녀의 뒤태가 그의 시야를 장악했다. 여성인 그녀의 워킹이 남성인 모세와 성과 무관하게 또 종과 무관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터무니없는 것이겠지만,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게 그 날 그는 모세와 다를 바 없이 찬란하게 휘날리는 마리아의 꼬리를 보았다. 요셉은 마리아의 얼굴보다 그녀의 꼬리를 먼저 보았다.
사전정보가 있는 사람들은 마리아를 처음 만나고 그녀에게서 대뜸 경건한 분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동시에 그녀에게서 암캐의 발정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강한 성적 에너지가 대담하게 분출되고 있어 그들은 속으로 당황하곤 했다. 사실 마리아의 몸은 한국적 체형에 아메리칸 스탠다드를 적용한 느낌이어서 경건과는 거리가 멀어야 했다. 하지만 경건의 분위기가, 보디가드인 양 넘사벽 수준으로 마리아를 휘감아 경호하고 있었기에 이질적인 다른 느낌은 곧 애써 무시됐다. 당연히 남자들이 대담한 이 기운을 끝내 눈감지 못했고 헤어진 후에도 종종 기억해냈다. TV나 잡지에서 본듯하면서도 동시에 생경한 이 통속적이고도 경건한 선정성에 요셉은 휘둘리지 않았다. 그가 주목한 것은 마리아의 꼬리였다. 그에게 단박에 눈에 띈 그녀의 꼬리를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 같아 요셉은 이상했다. 그들은 꼬리 자체는 못 보고 꼬리의 움직임만을 감지하는 듯했다.
마리아를 처음 만난 날부터, 투지라고 불러 마땅할 성적 진정성을 요셉은 주변 남자들의 시선에서 목격했다. 이 시선들이 남극대륙 주변의 남극환류처럼 그녀를 에워싸 소리 없이 아우성쳤다. 여자의 치마 속에서 발기한 남성같이 밋밋하고 길쭉한 물체가 개가 꼬리를 치는 것과 같은 움직임을 끊임없이 보였고 그 움직임에서 비롯한 진동이 남성 호르몬을 소환하는 듯했다. 마리아가 등을 보이면, 그들 테스토스테론의 울혈이 그녀의 궤적을 따라 느물거리는 십자포화로 퍼부어졌다. 발소리가 멀어짐에 따라 그들의 욕망이 점점 더 촘촘하고 더 끈끈하게 노골적으로 출렁댄다. 그녀를 향한 시각의 욕망은 도플러효과를 역전했다. 그들이 보지 못한 꼬리 때문이었다.
아메리카 서부 다이아몬드방울뱀의 꼬리를 연상시키는, 살ㆍ가죽ㆍ털이 없는 뼈뿐인 그 꼬리가 요셉은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항문 바로 위에서 우월하게 나부끼는 깃발이었다. 차라리 깃대였을까?
마리아가 요셉 앞에 나타났다. 유리창 바깥에서 안쪽으로 유리를 투과한 듯 불쑥 등장했다. 대화하는 내내 요셉은 마리아의 꼬리를 상상했다. 요셉은 하체가 묵직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성적 취향을 정화하려고 하나님이 이 여자를 보내주었나,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묵직함이 내내 가중돼 테이블이 요셉 쪽으로 서서히 기울어졌다. 마리아는 미소 지으며 바뀌는 테이블의 기울기를 가늠했다. 그녀는 그의 아내가 되었다. 그녀는 태어나서 곧 죽은 그들의 아들을 낳았고, 그 아이를 보내며 그들은 슬퍼하였다.
그들은 그때까지 서로를 몰랐지만 그들 주변에선 두 사람을 충분히 알았다. 마리아는 기꺼이 그의 아내가 될 생각이다. 마리아는 그녀의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 사이의 합의에 이견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상대 남자가 그녀의 마음에 드는지가 마리아가 결혼에서 염두에 두어야 하는 사항에 포함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고른 남편감이라면 어떤 결함이 있는 남자라도 받아들일 태세였다. 마리아로서는 요셉이 아닌 다른 어떤 남자라고 해도 그녀 아버지의 권면이 있는 한 기꺼이 수긍할 것이란 사실을 요셉이 나중에 알았지만, 그가 특별히 상처를 받지는 않았다. 그는 아메리카 서부 다이아몬드방울뱀의 꼬리로 만족했다.
조건이나 스펙 등 외양상 요셉에게 결격사유가 없었고, 만나 보고 그가 마리아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하나, 마리아는 요셉이 살인자인 줄은 몰랐다. 요셉 역시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다이아몬드방울뱀 꼬리가 없었다 해도 자신의 아버지가 정한 상대를 배우자로 받아들일 작정이었다. 게다가 불쑥 신 내리듯 임재한 마리아의 다이아몬드방울뱀 꼬리에 요셉은 정신을 빼앗겼다. 신이 마리아에게 정화의 채찍을 들려서 자신에게 보낸 듯하다고 믿기로 했다.
마리아가 요셉의 아내가 된 데에는 다이아몬드방울뱀의 꼬리 말고도 다른 신의 섭리가 작용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몇몇 대형교회 중 하나를 창업한 저명한 목사로, 그 교회를 축으로 신흥 교단을 세워 교계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확장하는 중이었다. 교회가 성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에서 기독교인이 아닌 아버지가 모종의 정치적 도움을 주었는데, 당연히 일방적 시혜가 아니었고 주고받는 비즈니스 관계였던 이 세속적 인연이 느슨한 거래 관계를 넘어 인척 사이로 발전한 계기는 갑자기 신학 공부를 시작한 요셉의 변덕때문이었다. 마침 그 목사에게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신심이 깊고 다소곳한 시민권자인 딸이 하나 있었다. 요셉의 아버지는 아들의 변덕 이후 아들의 장래를 염두에 두며 그 딸을 며느릿감으로 눈여겨보게 된다. 목사의 여식이 외딸이라는 데에 아버지가 특히 주목한 듯하다고 요셉은 느꼈다. 양가 아버지 사이의 이심전심과 무관한 어떤 계시를 받았는지, 뒤늦게 하나님에 귀의한 남자를 믿음이 돈독한 마리아가 주저 없이 남편으로 받아들이려고 한 것에서 요셉은 또한 신의 의지를 믿기로 했다. 계시 때문에라도 그들이 잘 어울리는 부부가 되리라는 데에 마리아는 추호의 의심이 없었고, 그저 가장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전공이어서 이 길에 들어선 게이 신학생인 요셉으로서는 로스쿨에 진학하는 대신 여자와 결혼한다는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선을 보러 나갔다가 아메리카 서부 다이아몬드방울뱀의 꼬리를 통해 제대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다. 요셉은 덜컥 게이 생활을 끝내기로 작정했다.
그들이 천생연분이자 행복한 부부가 되리라는 데에 어떤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사소한 난점으로 이 결혼엔 사랑이 결핍되어 있었다. 사랑이 영 없다고 할 수는 없었고 살짝 부족해 보이는 정도였다. 따지고 들면 결혼에서 과잉보다 부족이 나은 건 아마 사랑이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결혼생활에 없어도 되는 것 하나를 고르라면 그것은 사랑이다. 믿음이 충만했고 소망이 넘쳤으니 사랑의 결핍은 감내할 만했다. 신의 계시와 의지에 의해 맺어진 그들은 축복을 받아 마땅한 신혼부부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