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판테라 유복자 입양기
요셉의 장인은 그의 인생의 위대한 정점에서 추락했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장인 인생의 정점이 아메리카 삼나무 하이페리온보다 훨씬 더 높아졌을 것이라고 요셉은 믿었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당연히 추락을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더 큰 추락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결혼 이후 아내의 믿음대로 장인을 하나님의 사자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요셉은, 그 사건에서 사자의 행태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얄궂어서 더 큰 혼란에 빠졌다. 내내 기다리던 소풍이 갑작스럽게 나쁜 날씨로 당일 아침에 취소된 기분이었다. 물론 요셉이 받은 충격을 마리아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비유를 들면, 요셉이 날씨의 변덕에 그저 당황했다면 마리아는 날씨의 변덕을 변덕이 아닌 하늘이 무너진 것으로 받아들였다. 신앙과 관련해서는, 마리아가 무너진 하늘의 폐허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했다면, 요셉은 하늘의 변덕스러운 조화에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야 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하늘의 폐허에 깔린 하나님을 구조하는 일이 하나님의 변덕스러운 뜻을 헤아리는 것보다는 덜 어려운 것처럼 보였다. 겉보기가 그랬다는 얘기고 실상이 어땠는지는 더 들여다봐야 했다.
요셉이 신학 공부를 마치고, 그 사이 그의 아내가 음악 공부와 목회자 과정을 마치고, 그들 부부는 귀국했다. 요셉 부부의 목적지는 마리아의 아버지가 세우고 키운 그의 교회였다. 요셉의 장인은 당시 욱일승천의 기세를 보이던 참이었고, 요셉에게 학위 과정을 서둘러 마치라고 종용하곤 했다. 사건은 요셉ㆍ마리아 부부가 귀국하여 교회에 어느 정도 안착한 후에 일어났다.
그분에게서 특별한 감화를 받은 여자 집사가 있었다. 목사님을 추앙한 여집사가, 권사까지, 차고 넘쳤지만, 문제는 이 여집사에게 임재한 감화가 특별한 데 그치지 않고 그녀의 용모까지 특별했다. 이 여집사가 감화를 감화로 받는 데에 그치지 않고 감화를 은총으로 승화해, (혹은 반대로 목사님이 감화하는 데에 그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하여간) 어느 날 그녀가 그날까지 이어온 멀쩡한 결혼생활을 내팽개치고 오피스텔에 들어앉았다.
목사님은 일주일에 두어 차례 여집사를 방문했다. 주로 주일이 아닌 평일을 이용했지만, 목사님이 특별히 위로부터 강한 감화를 받은 주일엔 받은 것을 아래로 나누려고 저녁에 오피스텔을 찾았다.
사건의 그날은, 나중에 문상 온 다른 목사들이 그나마 주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소곤거렸는데, 요셉으로서는 왜 그게 다행인지 이해할 만큼 신앙심이 깊지 못했는데, 아무튼 교회 성직자의 휴일에 해당하는 월요일인 그날, 그녀와 마찬가지로 목사님 교회 집사인 그녀 남편이 갑작스레 오피스텔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목사님이 혼비백산해 미처 은총을 전하지 못한 채 속옷 차림으로 오피스텔 베란다 창틀에 매달렸다. 목사님은 베란다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자신의 팔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우두망찰하여 순간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린 탓이었다. 힘이 서서히 빠져나갔고,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서야 소리쳐 도움을 요청했다. 너무 늦었다. 119구조대가 출동할 겨를이 없이 제법 많은 인파가 몰려 지켜보는 가운데 사람들이 걱정하며 비워놓은 자리로 정확하게 떨어져 즉사했다. 남녀 집사는 베란다에 때맞춰 등장하지 못했다. 속옷 차림으로 피 칠갑한 채 땅에 널브러져 죽어 있는 목사님을 높은 곳에서 뒤늦게 내려다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윽고 땅바닥의 사망자보다 더 가볍게 옷을 걸친 여집사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천사의 애곡인 양 하늘을 무지개로 가로질렀고 시체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소리 나는 쪽을 올려다보는 게 성화의 한 장면 같았다. 놀란 아내를 남편이 안아 위로하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풍긴 천상의 아름다움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이야기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엔 목사님이 죽자 하늘에서 성스러운 천사가 내려워 애통해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이 무책임하게 유포됐다.
잠깐 망신을 당하고 말 일이었다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친하게 지내는 교계의 유력한 목사들과 신학대학 선후배 목사들이 모여서 탄식했다. 그 큰 교회를 일궈놓고 여집사 하나 때문에 이 무슨 개죽음이냐고, 헬스장을 열심히 다녀야 했다, 오피스텔을 1층이나 2층에 얻어야 했다는 식의 다양한 촌평이 나왔다. 장례식이 성대하게 열렸고, 수많은 조문객이 다녀갔으며, 그만큼 많은 애통이 장례식장을 맴돌았다. 언론에는 오피스텔의 오자(字)나 여집사의 여자(字)가 전혀 오르내리지 않았고, 한국 기독교의 큰 지도자의 이른 죽음을 아쉬워하는 내용이 대서특필되었다. 그의 영성과 목회 신학을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작업이 여러 대학 다수의 신학과 교수가 이름을 올린 가운데 착수되었다. 이 모든 일에 교회에서 만만찮은 예산을 투입했음을 아는 사람은 알았다. 몰라도 짐작하는 사람은 짐작했다. 하긴 교회 돈을 이때 쓰지 않으면 언제 쓸 것인가.
장인의 장례식장에서 요셉은 장인의 부재를 더욱 실감했다. 장인의 존재 자체보다는 다른 목사들의 문상하는 태도를 보면서였는데, 목회자로서 장인의 위대함을 새삼 느낀 경로는 훗날의 독서를 통해서였다. 요셉은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게르망트 쪽으로’에서 할머니의 죽음 장면을 읽으면서 생전의 장인을 떠올렸다. 왜 다른 목사들을 보며 장인의 위대함을 실감했는지를 프루스트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었을까.
교수는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슬픈 모습으로 들어와 거짓이 빤한 애도의 말도, 요령에 어긋나는 가벼운 실수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낮은 소리로 아버지에게 몇 마디 하고 나서 어머니에게도 공손히 머리를 숙였는데, 그때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디욀라푸라 교수님이오.”라고 말하려다 자제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교수는 우리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는 듯 이미 머리를 돌렸고, 단지 그에게 쥐어 준 봉투만을 잡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태도로 나갔다. 그가 봉투를 쳐다보지도 않은 것 같아서 우리는 그의 손에 봉투가 제대로 쥐어졌는지 잠시 생각할 정도였는데, 그만큼 그는 마법사와도 같은 민첩함으로 봉투를 사라지게 했으며, 그럼에도 실크 안감을 댄 긴 프록코트를 입고 고결한 동정심이 가득한 아름다운 얼굴에 깃든 그 위대한 입회의사의 근엄함은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다. 그의 느린 동작과 활기찬 모습은 그의 왕진을 기다리는 곳이 아직 백 군데나 된다 해도 서두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만큼 그는 요령과 총명함과 친절함 그 자체였다. 이 저명한 인물도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장인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디욀라푸라 대신 장인의 이름을 넣고 입회의사 대신 목사라고 바꿔 쓰면 생전 장례식장을 다니던 장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장인의 장례식장에서 생전의 장인처럼 문상하는 목사를 한 명도 보지 못하자 요셉은 장인에 대해 처음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당시엔 막연한 이유에서였는데, 동시에 자신이 목사로서 부적격이라는 판단은 냉정하게 내릴 수 있었다. 부적격 판단의 근거 또한 모호했으나 적격이 아님은 확실했다.
마리아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필요한 만큼 슬픈 표정을 지으며 꿋꿋하게 조문객을 받아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요셉에게 이 여자를 사랑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임포가 된 지 오래였고 장인의 후계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개운함이 너무 커서 그는 마리아가 있는 저쪽 강둑으로 넘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장인의 교회는 이인자격인 야심만만한 다른 목사에게 넘어갔다. 요셉에겐 후계 다툼에 뛰어들 마음이 전혀 없었고, 설령 그가 뛰어들었다 해도 장인이 그렇게 죽어버려서는 승리할 가망이 희박했다. 교회를 잃었지만, 경로를 알지 못할 많은 돈이 후계자를 통해 마리아와 마리아의 어머니에게 넘겨졌다. 그 사건 이후 마리아의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다가 얼마 안 돼 그녀의 남편을 따라갔다. 그녀가 받은 충격을 생각하면 안 죽는 게 이상하다고 그녀의 장례식에서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어머니의 몫까지 부모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음과 함께 마리아가 고아가 됐다. 마리아는 중첩된 충격을 일단 극복한 듯 보였다. 그녀에겐 세상과 무관한 하나님이 있었다. 하지만 마리아가 결국 하나님이 사랑하는 나라 아메리카를 떠올린 걸 보면서 요셉은 그녀가 신앙은 지켰지만 충격은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나라의 오리건주와 워싱턴주의 태평양 연안 지역에 이상한 숲이 있다. 이 숲은 1700년 캐스케이디아 대지진의 증거로 자주 인용된다. 당시 대지진으로 나무들이 죽었고 숲이 죽은 채 아직 보전되고 있다. 1700년 1월 26일경 캐나다 밴쿠버섬에서 아메리카 캘리포니아 북부까지 이어진 캐스케이디아 섭입대에서 거대한 지진이 발생했다. 대지진으로 해안 지반이 갑자기 수직 가깝게 침강했다. 지반이 가라앉으면서 반대로 해수면이 상승했고, 이에 따라 숲에 바닷물이 들어찼다. 옆에서 관찰하면 아마 숲이 바다로 뛰어든 모양새였을 터였다. 소금기가 많은 염수에 뿌리가 잠기면서 민물에 의존한 서방측백나무 등의 나무들이 모두 말라 죽었다. 이 죽은 나무들의 상당수가 오늘날까지 쓰러지지 않고 서 있어 멀리서 보면 숲으로 보인다. 유령의 숲으로 불린다. 사후(事後)에 요셉이 내린 판단으로 그의 아내 또한 유령의 숲이었다. 유령의 숲이 있는 아메리카는 어차피 마리아의 고향이었다. 유령의 숲 저 너머로 침수 피해를 입지 않은 아메리카 삼나무 하이페리온이 고고한 자태를 자랑했다. 내륙에서 숲을 바라보는 요셉은 바닷가에 자리한 유령의 숲을 보지 못했고 그 앞을 가로막은 아메리카 삼나무 하이페리온의 밀집대형만 볼 수 있었다. 가끔 어떤 기운을 느꼈지만, 요셉은 마리아가 유령이 숲이 된 것을 알지는 못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