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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아메리카

마리아의 판테라 유복자 입양기

by 안치용


아내가 요셉에게 한 말 중에서 가장 빈도가 높은 단어가 사랑해였다. 사랑합니다로, 굳이 경어체를 쓸 때가 대부분이었고 그랬기에 요셉은 덜 사랑받는다는 기분을 느꼈지만, 저도요로, 간단히 숟가락 얹고 마는 그가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마리아가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절대량만 본다면 그녀는 남편에게 특별히 사랑 표현을 많이 하는 아내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다만 경어체와 평어체를 구분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사랑해란 말은 두 사람이 섹스를 할 때나 가끔 자연스럽게 튀어나왔을 뿐 주로 요셉쪽 형편으로 두 사람이 잠자리를 멀리한 후 평어체가 등판할 기회가 소실되었다.


경어체 기준 집계 방식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마리아의 사랑합니다 중 요셉에게 할당된 비율이 높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사랑의 종교에 속해 삶에서 사랑을 적극 실천하는 마리아로서는 당연히 일상에서 사랑 표현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을 경계로 두 사람이 떨어져 살게 된 이후로 대화량 자체가 급감하며 마리아의 사랑합니다는 이래저래 요셉 앞에서 자취를 감추는 중이었다. 요셉이 보지 못하는 상황이 어땠는지는 마리아의 처지 탓에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보지 못해 짐작하지 못하는 상황과 별개로 요셉에게 마리아는, 죽지 않았다면 그처럼 늙어가고 있을 중학교 때의 펜팔과 형식상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최백호의 고향으로 지금은 대도시에 편입된 기장군 바닷가 마을에 산 그 소녀는 창고 안 가방 속 눅눅한 사진에서 앳된 얼굴로 바랜 미소를 짓고 있다. 창고에 소복이 쌓인, 찾지도 버리지도 않는 기억. 어리고 단정한 글자가 빼곡한 그 소녀의 편지가 다른 기억과 고무줄에 묶여 변색하고 있다.


소녀가 편지 끝에 남긴 예컨대 응원해 등과 같은 인사말과 통화를 끝내며 마리아가 붙이는 사랑합니다는, 문구가 다를 뿐 기능상 등가이다. 어쩌다 이루어지는 사적이지만 도식적 소통에서, 친밀감을 표시하며 다소 공식적으로 마무리하는 기능.


요셉은 그렇다고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그녀의 사랑처럼 자명하다. 그 사랑과 사랑에 대한 믿음은 팩트이지만 다소 추상적이어서 실감하지 못할 뿐이다. 각자의 삶의 공간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보니 실감이란 풀 같은 게 있다면 그게 뿌리내릴 토양이 하루하루 세월에 씻겨 내려갔다.

Nostalgia (1895), Ladislav Mednyánszky (Hungarian, 1852 – 1919).jpg Nostalgia (1895), Ladislav Mednyánszky (Hungarian, 1852 – 1919)


태평양 건너편에서 아내와 함께 살 때 요셉에게 함께 한 그 삶이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요셉의 삶이 발 디딘 공간에서, 문득 그가 뒤돌아본다 치면, 만일 거리낌이라는 풀이 있다 치면, 그가 남긴 발자국에 그게 보일 듯 말 듯 자라 있었다. 그와 같은 피부색의 원주민을 학살하며 건국된 나라였고 그가 완전하고 비타협적인 비국민이었기에 요셉에게 기본적으로 아메리카에 애착이란 게 있을 수 없었다. 아메리카 인디언에게 인종적 유대를 느껴서가 아니었다. 장구한 시간을 들여 체계적으로 행한 인종 청소의 공간이란 생각은 드물게 떠오른 정도였으나 학살은 학살이었고, 광주나 제주, 밀라이가 사방에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드물게 언짢았다. 태어나고 자란 나라가 마찬가지였으니 아메리카가 더 못한 나라라고 할 이유는 없었다. 그의 나라에서 정치군인들이 같은 말을 쓰는 같은 민족을 학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여서 사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 격이었다. 마리아는 요셉이 한 것과 같은 생각 자체를 떠올린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 아메리카는 본디 백인의 나라였을 뿐이었다.


요셉이 아메리카의 위대함을 실감한 때는 크랙에 절어 있을 때였다. 그때는 절로 The Star-Spangled Banner를 흥얼거렸고, 밤새 the land of the free and the home of the brave를 반복했다. 한국에서 대학 다니며 공부한 대로 한반도에 38선을 그었고, 한국 현대사의 온갖 질곡을 만든 나라라서, 그런 역사의식이 작용해서 요셉이 아메리카에서 불편을 느낀 건 아니다. 엄격히 말하면 싫어하지 않았다. 돈 많은 이방인에게는 아메리카에서 많은 쾌적한 선택지가 주어진다. 요셉은 돈 많은 아시아인의 아들이었다. 동아시아 분단국의 운동권 대학생다운 인식은 나날이 희미해졌고, 주어진 삶이 흔쾌했으니 주어진 것에만 집중하면 아메리카에 반감을 품을 이유가 잘 찾아지지 않았다. 친미 독재정권의 실력자인 아버지가 보내주는 돈으로 호의호식하면서 반미 운운하는 건 상도의에 어긋난 행태였고 그렇다고 반대로 요셉이 단호하게 호의호식을 끊어낼 성격은 아니었다. 트롤은 아메리카산이 아니라 한국산으로 봐야 했다. 아메리카에 요셉이 밀입국시킨 한국산 괴물. 아메리카는 자신의 손에 묻은 피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인간적으로 최소한의 반감 정도는 지녀야 하지 않느냐는 어떤 의무감이 그에게 작동한 결과가 그 거리낌의 원인일 수가 있었겠다고 훗날 요셉은 회상했다.


찾아보면 부유한 외국인으로 살아가기에 그때 아메리카보다 더 좋은 나라가 없지 않았겠지만, 아버지가 보낼 곳이 아메리카 말고는 없었다. 그에게 그곳은 이방 중에서 유일한 선택지였다. 요셉이 싫어했고 요셉의 아버지는 좋아한 나라. 아버지가 좋아한 나라라는 사실이 요셉으로 하여금 그 나라에 거리낌을 느끼게 한 또 다른 이유였을 수 있다. 아메리카에서 지낸 15년을 요셉은 유폐의 시기로 규정했지만, 그 기간 동안 향수병 같은 건 전혀 앓지 않은 다소 편리한 유폐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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