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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Aug 23. 2018

게이로 살아갈 권리와 같지 않음을 다르게 표현하기

[영화평] 톰 오브 핀란드

*이 글에는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톰 오브 핀란드> 포스터ⓒ 레인보우팩토리



남과 다르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남'은 무엇이고 '다르다'는 무엇일까. 남과 완벽하게 다르다면, 그것은 하나뿐인 존재를 의미하기에 신(神)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결국 인간사회에서는 남과 완벽하게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어서 같음들 사이의 수량 차이가 다름을 대체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다른 것은 없고, 같음들 사이에 규모 차이가 있을 뿐이란 얘기다.


일상에서 같음들 사이의 수량 차이는 큰 문제가 아니며 대체로 존중받는다. 예컨대 양복을 입는 사람 가운데 싱글버튼을 선호하는 사람이 더블버튼을 선호하는 사람보다 많다고 해서 '싱글'이 '더블'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같음은 다른 같음을 폭력적으로 배척한다. 서로 달라서가 아니라 같지 않아서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이성애자의 배척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배척은 때로 야만의 모습을 취한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남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자아의 파괴를 경험하기도 한다.


영화 <톰 오브 핀란드>는 영화 제목과 같은 필명으로 '게이 그림'을 그린 핀란드 출신의 아티스트 토우코 라크소넨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톰 오브 핀란드', 즉 토우코 라크소넨은 빈번하게 자아 파괴의 위협에 직면한다. 타율에 의한 자아 파괴를 회피하는 방법은 예방적이고 강제적인 자기 부정이다. 자아 파괴의 위협과 자기 부정의 비참을 넘어, 예술을 통해 자신을 긍정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을 이 영화는 그렸다.


핀란드의 국가적 브랜드로 각광받는 '톰 오브 핀란드'

▲ 톰 오브 핀란드스틸사진ⓒ 레인보우팩토리


배급사의 설명에 따르면 '톰 오브 핀란드'는 '무민'과 함께 핀란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일러스트이다. 2014년 '톰 오브 핀란드' 기념우표가 발행됐고, '톰 오브 핀란드'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도보여행이 관광상품으로 개발됐을 정도로 '톰 오브 핀란드'는 국가적인 브랜드로 각광받는다.


그러나 생전에 라크소넨은 자신의 조국 핀란드에서 사랑받지 못했다. 라크소넨의 가족은 그가 '톰 오브 핀란드'라는 사실을 1991년 라크소넨의 사망 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이 일화는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1920년 생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세운 공로로 조국 핀란드로부터 훈장까지 받았지만 게이이자 '게이 그림'을 그린 금단의 아티스트를 국가는 용납하지 않았다. 게이는 말하자면 '비(非)국민'이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톰 오브 핀란드'의 군대시절 상관이 게이임이 밝혀져 시설에 수용되는 장면이 나온다. 게이는 병에 걸린 자로 간주된다. 따라서 치료되어야만 한다.


게이임을 숨기며 성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금지된 욕망을 추구한 라크소넨의 삶은 국가의 야만적인 억압 아래서 어쩌면 좌초하고 말았을 테지만, 1956년 미국 최초의 게이 매거진 '피지크 픽토리얼' 표지에 '톰 오브 핀란드'라는 필명으로 자신의 그림이 실리면서 돌파구를 찾게 된다. 이후 미국으로 넘어가 드로잉 등을 통해 게이문화를 하나의 당당한 문화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라크소넨은 금단을 온몸으로 돌파한 문제적 예술가이지만 영화에서 그려지는 그의 모습은 엄숙하지 않다. 돔 카루코스키 감독의 터치도 강약과 농담을 적절히 배합한다. '톰 오브 핀란드'의 그림의 특징은 "장난스런 반항"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보이는 그의 '게이문화적' 드로잉들은 도색적이라기보다는 위트를 느끼게 한다. 물론 그럼에도 기본적으로는 진지하다. 자신의 존재와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소설 속 동성애 교수


서구 문학에서도 동성애 소재가 제대로 다뤄진 지는 100년 남짓하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감정의 혼란>(1926년)의 주인공은 로란트라는 대학생이다. 동성애를 다룬 이 소설에서 한데 주인공 로란트는 동성애자가 아니다. 대학생인 로란트는 존경하는 교수와, 서로 느끼는 감정이 다른 사제 관계를 이어가다가 마침내 교수의 동성애 열망을 파악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정작 성적인 관계를 맺는 상대는 교수 부인인 여성이다.


소설 <감정의 혼란>에서 동성애자로서 교수가 겪은 고통은 영화 <톰 오브 핀란드>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모종의 유머와 위트가 느껴지는데, 그것은 영화의 주인공이 주체로서 담대하게 세상과 맞서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면 과장일까. 소설에서 교수는 저자로부터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할 정도로 타자화한다.

▲ 톰 오브 핀란드토우코 라크소넨 역을 맡은 핀란드의 국민배우 페카 스트랭ⓒ 레인보우팩토리


주인공이자 고유명사인 이성애자에 의해 관찰되고 이성애자로부터 연민을 사는 타자화한 보통명사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타자화하고 물화하며 수동적으로 쫓겨 다니는 존재이다. 반면 '톰 오브 핀란드'는 남과 다른 존재이기를 거부하고, 대신 같은 인간임을 선언하며 때로 휘청거리고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나 그 길을 걸어간다. 적어도 영화가 조명한 라크소넨의 삶은 그러했다.


토우코 라크소넨 역은 핀란드의 국민배우 겸 극단의 예술감독으로 잘 알려진 페카 스트랭이 맡아 '톰 오브 핀란드'의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의 모습을 소화했다.


<뉴욕타임스>는 "평생 관습에 도전하는 삶을 살았던 그에 대한 헌사. 금기의 경계를 허물어 수용하는 예술가"라고 평했고, <워싱턴 포스트>는 "<톰 오브 핀란드>는 예술이 창조하는 새로운 사회를 보여 준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 예술가의 고독"이라고 평했다.


영화의 본질을 잘 짚어낸 평들이긴 하지만, 조금 보완한다면 '톰 오브 핀란드'는 무엇에 도전했거나 무엇인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기보다는 예술을 통해 자신이 자신임을 표명했다고 보아야 한다. 자신이 자신과 같지 않으며 자신이 자신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과 폭력이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꾼 사람이 '톰 오브 핀란드' 한 사람만은 아니지만, 그런 꿈을 꾼 사람의 명단을 작성한다면 반드시 '톰 오브 핀란드'를 포함시켜야 한다.


8월 30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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