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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무드 Oct 21. 2022

밤 버스

 어릴 적엔 밤에 버스 타고 창밖을 보는 것을  낭만적으로 여겼다. 뒤로 뒤로 지나가는 불빛들을 보면서 쓸데없는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재수할  홍대 앞에서 미술학원이 10시에 끝나고, 정리하고 뭐하고 나와서 2호선을 타고 4호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마을버스를 타면 열한 시가 넘어있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수다를 떨던 친구들도 하나  내리고 혼자가 되면 적적하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깔깔대다가  소리로 인사하고 돌아서면 너무 시끄러웠나 민망하기도 했다. 마을버스 자리에 앉아 창밖에 반짝반짝 간판도 보고 아파트 불빛도 보며 불멍을 하면서 머리를 비우곤 했다.



한국에 와서야 밤에 밖에 있는다. 그동안 바르셀로나에서는 해가 짧을 때는 애가 워낙 신생아라 밤에 밖에 있을 새가 없었고, 저녁 산책을 할 수 있는 시기에는 해가 열 시가 되어서나 졌기 때문에 어두운 바깥을 걸어볼 일이 없었다.


 또 바르셀로나에서는 정말 철저하게 하루 일과를 통제하고 싶어 했다. 아이가 먹는 모든 것을 적으며 식단이 겹치지 않도록 신경 쓰고, 매일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도록 힘쓰느라 스스로 진을 빼기도 하고. 일정한 하루 일과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스스로의 스트레스 정도를 조절하며 육아하는 것도 중요한데. 왜 그랬는지 한 치의 어긋남도 허용할 수가 없었다. 불안해서 그랬던 것 같다.



불안해서 아이 표정이 좋은 대로, 책에 나오는 대로, 의사가 말하는 대로, 내가 맞다고 느껴지는 대로 해야지만 마음이 놓였다. 점심을 열두 시 반에 먹여야 하는데 애가 낮잠을 열두 시부터 자면 혼자 불안해했다.   점심 먹고 낮잠 잘 시간인데 손님이 와서 애가 잠을 안 자고 놀고 있으면 이따가 졸리기 시작하면 엄청 울어댈 텐데, 그걸 내가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걱정했다. 정말 그때는 뭐 하나 삐끗해서 애가 왕왕 울어버릴까 봐 항상 전전긍긍했던 것 같다. 잘 먹고 잘 자는 평화로운 나날이 더 많았는데도 불안했다.



내 나라에 내 가족과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안다’라는 마음이 나를 편하게 만든다. 육아를 처음 하는 거고 이 아이도 처음 만난 사람이니 서로 모르는 것이 당연한데, 내가 내 아이를 ‘모른다’라는 것을 너무 불안하게 받아들인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 이제 알아가면 되지’ 생각하면 되는데 ‘몰라 어떡해’ 했다.



적다 보니 한국에 와서 내가 이 나라를 안다는 사실이 불안함을 가시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새 나랑 아리아랑 더 친해진 것이다. 그새 시간이 지나 아리아가 의사표현도 나름 하고 나도 이 애 표정을 더 잘 읽게 된 것이 나를 안정되게 하는 것 같다.



엄마 일이 끝나고 같이 집에 돌아왔다. 아홉 시가 넘은 마을버스에 아무도 없이 우리뿐이었다. 깜깜한 밤에 아기랑 버스를 타니 옛 생각도 나고, 가만히 아빠 품에 기대는 아기를 보다 보니 지나가는 풍경도 예쁜 배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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