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서울이라는 복잡한 도시에서 왔어. 그 복잡한 도시에 아주 한적한 동네가 있는데, 그 동네에는 끝이 없는 아파트 숲이 있어. 엄마는 아파트 뒤에 아파트, 뒤에 또 다음 아파트가 우거진 곳에서 자랐어. 그 아파트 숲에는 이맘때쯤 벚꽃이 우거져 새하얗게 흐드러지곤 했어. 봄바람이 한 번 불면 눈이 내리는 곳이었어. 그래서 엄마는 삼촌이랑 그 숲에서 눈을 맞으며 뛰어다니곤 했어.
네가 내 뱃속에 막 도착했을 즘, 아직 엄마가 네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을 때, 좋은 꿈을 꿨어.
꿈에서 엄마가 그 눈내리는 숲에 살고 있었고, 굽이굽이 길을 따라 어릴 적 놀던 놀이터를 지나가며 집으로 가고 있었어. 눈앞이 하얗게 될 정도로 벚꽃눈이 내려서 기분이 좋았는데, 갑자기 뒤에서 암사자인지 퓨마인지(미안 둘을 구분하지 못하겠어) 아무튼 그렇게 생긴 애들 셋이서 내 뒤를 따라오고 있더라고. 아주 익숙한 풍경에, 너무 낯선 존재가 나타나서 덜컥 겁이 났어. 하지만 나는 침착하면 산다. 쟤네는 내가 무서워하는 것을 눈치채면 덤벼들것이다. 생각했어. 그래서 태연한 척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어.
엄마랑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삼촌이랑 살던 나무는 꽤 안쪽에 있어서 숲을 한참 걸어야 했어. 그래도 그 세 마리 암사자인지 퓨마인지는 가만히 엄마 뒤를 따라오고 있더라구. 이제 나는 저 나무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생각하다가, 어쩔 수 없다. 내 갈길을 가자. 마음먹고 나무 입구로 올라 섰어. 그러자 그 세 마리가 엄마를 가운데에 놓고 맴맴 도는거야.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세 마리 맹수 가운데에서 되뇌였어. 침착하자, 침착하면 살 수 있다.
그러다 그 중 가장 큰 애가 슬렁슬렁 돌다가 엄마 발치에 털썩 자리깔고 앉더니, 발을 괴고 눕더라. 내 작은 발등에 그 큰 머리를 가만히 괴고 부비적 거리는데 추운 겨울날 할머니 혼수이불 덮은 것처럼 무거우면서도 따듯했어. 꼼짝않고 가만히 기대어 선 내게 슬금슬금 올라타 누워 낮잠을 자는 그 짐승을 바라보다가 깼어. 그게 너인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