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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은정 Jan 15. 2018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로미오와 줄리엣을 이어가다 - 원은정

1. 사랑이라는 무모한 열정
대학원 수업에서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한 학기 동안 배우게 되면서 가장 마음이 가지 않았던 작품이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가장 익숙하고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가장 진부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진부한’에 끼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맥베스에서의 여성관, 햄릿의 대사의 빼어남, 태풍이라는 신선한 작품에 몰두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아주 잘 유지되는 듯 했으나 과제로 내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고전영화를 보면서 예상치 못했던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까지 잇달아 보면서 ‘사랑’을 향한 사색은 멈춰지지 않았다.
특히 사랑이라는 단어가 부르는 ‘무모’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는데 이것은 아무 때나 가질 수 없는 그 무언가로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아무 때나’라는 것은 정말 내가 선택할 수 있거나 한 시기로 그치거나 영원히 없을 수도 있는 그런 ‘때’이다.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마지막 회를 보면 직장생활을 시작한 여자주인공이 대학 시절 때 겪었던 비슷한 사람들을 직장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 자신의 패션 스타일을 따라 하는 사람, 자신이 해놓은 노력을 그대로 가져가는 사람, 진지한 면은 없이 유치한 장난만 치는 사람, 관심을 가지면서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사람 등. 그런데 이제 여자 주인공은 나이를 먹고 (혹은 경험이 쌓이고) 달라져있다. 그 모든 것에 몹시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큰일이 난 것처럼 반응할 열정이 없는 것이다. 대학(20대 초반) 때는 그것이 정말 큰 난리가 난 것처럼 울고 불고 힘들고 하던 것들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자신에게 ‘열정이 식었다’라고 말을 한다. 그런 것들에 격하게 반응할 열정이 없다 라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로 물음을 던지면서 드라마가 끝이 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에 목숨 거는 그런 철부지 시절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절대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이제 우리는(여기서 우리는 이것에 동의되는 되는 사람들만을 포함하기로 한다. 몇 되지 않을 수도 대부분일 수도 있다) 그런 ‘무모’한 사랑은 하지 않는다.
아니 이제 하지 못한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을 가져버렸다. 놓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아서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사랑을 향한 그리움, 선망, 열망들이 로미로와 줄리엣을 지금까지 가장 비극적이면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기억하게 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에 그런 것이 있다는 것에 위로 혹은 안도 아니면 가까이 가지 않지만 가고 싶은 곳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2. 사랑은 모든 것을 통합시킨다?
로미오와 줄리엣 책을 공독하면서 이 작품의 결말이 비극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 것은 개인적으로 큰 수확이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 대표적인 작품인데(4대 비극이라는 선정 기준이 개인의 의견이었다는 것도 신선한 부분이다)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비극이라고 놓고 보지 않는다면 둘은 사랑을 이루었고 오랜 원수 지간이었던 두 가문이 화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통합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물론 그것이 두 남녀의 ‘사랑’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아직 더 검토가 필요하지만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여러 시사점을 불러온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무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집안처럼 귀족이거나 잘 살지 않는다. 두 그룹 모두 가난한 지역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려고 다투는 것인데, 원래 살고 있던 가난한 자들과 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넘어온 가난한 자들의 다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이 사회, 정책, 불균형적인 구조에 대항해야 할 에너지를 서로에게 쏟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부조리하게 돌아갈 때 서로를 공격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눈에 들어왔다. MB 정부 때부터 등장했다고 하는 주폭(술에 취해 폭력 등을 행사하는 것)은 대표적으로 시민의 적이 시민인 것처럼 시선을 돌리는 단어라고 말할 수 있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에서 보면 그리스의 경제 공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한 가장이 그 원망을 시리아 난민들을 향해 쏟아 붓는 장면이 있다. 원망이 방향이 이 사회와 정부와 정책과 구조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약하디 약한 나와 같은 시민들을 향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가장은 시리아 난민들을 그리스에서 몰아내고자 사람들을 모아 폭력을 일으키고 그들을 죽이기까지 한다. 파시즘의 한 형태로 드러나는 아이러니가 이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시민을 난폭자로 규정하고 있는 경찰(정부)의 눈을 피해 서로를 몰아내고 자신들이 그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 자신들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수자, 이민자들이 힘을 합해 사회의 부조리를 깨고, 건의하고, 혁명하려고 하지 않고 서로가 방해가 된다고 규정한 와중에 각 그룹을 대표하는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이들은 영원한 이민자, 영원한 소수자로 남을 것이다. 경찰 크랩킨의 대사를 들어보면 마치 미국을 대표하는 느낌으로 전달이 되는데, 그럼에도 이민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 역시 2가지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데 남과 여 그룹으로 나뉘어 희망과 비관을 노래하고 있다. 하나하나가 대립적이면서 둘 모두의 입장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자 주인공이 “이 총으로 어떻게 쐈지? 아직 총알이 남았나? 너를 쏠 총알은 남았니? 너도? 너희 모두?”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총이 향했어야 할 혹은 그 총은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자신의 오빠와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한 것은 총과 총알이 아니라 ‘증오’라고 말하는 장면 역시 세상과 삶을 향해 증오를 하는 것이 나와 같은 사람들을, 나의 가족과 나의 친구를, 그리고 나 자신을 죽일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의 죽음은 원수 지간인 두 집안을 화해시켰지만 토니의 죽음은 사회를 통합시킬 수 있을까? 삶에 대한 증오가 서로에 대한 증오로 연결되고 그 증오를 말리기 위해 나선 토니가 죽음으로 인해 증오의 힘이 얼마나 파괴적인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약자들끼리 영역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힘을 합해 연민할 때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할까?
누군가를 잃어야만 각성하는 사회가 답답하게 느껴지고 그런 의미에서 반성이 많이 일어나는 영화였다. 청소년을 만나는 한 사람으로서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로 서로가 서로를 폭력 대상으로 보고 있을 때, 학교폭력예방 캠프를 하며 학교폭력이라는 단어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을 잠재력 학교폭력 대상자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조적인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청소년에 관련된 부분에서 많은 공감과 생각을 불러일으켰는데, 경찰-판사-정신과의사-사회복지사-경찰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웃긴데 웃을 수만은 없는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3.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소감 정리
왜 제목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일까 궁금한 마음에 검색을 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을 얻을 수 있었다.
“화려한 도로변에는 고급 호텔과 아파트, 록펠러센터·카네기홀·매디슨 스퀘어 가든 등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뒷길 빈민가에는 낡은 아파트에 푸에르토리코·그리스·이탈리아 등지에서 온 이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1950년대 미국의 인종문제와 청소년들의 문제점을 표현한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웨스트사이드 [West Side] (두산백과)
웨스트 사이드. 그 곳에도 사람이 있고 사랑이 있다. 그 곳에도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고 평화를 꿈꾸며 연대를 향한 과정이 있다는 것의 이야기의 골자가 아닐까?

영화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지나가는 와중에 고전 뮤지컬을 봤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과 많은 대사를 노래와 춤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아주 인상 깊게 다가왔다. 또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중심이라는 것이 느껴져서 그렇겠지만 긴장감을 가지고 보게 되고, 이미 애잔하게 주인공들을 바라보게 됐는데 이것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힘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충돌과 갈등 그리고 싸움의 장면을 춤으로 표현하니 잔인해 보이기보다는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지는 것 좋았고, 춤 대목 하나 하나가 하나의 무대를 보는 듯이 따로 그리고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도회장에서 둘이 만나는 장면에서 아무도 보이지 않고 둘만 보이도록 연출한 부분이나 사랑에 빠진 여자의 마음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모습(바로 결혼을 꿈꾸는 절정으로 닿는 사랑)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의 말을 끝까지 지키고 양심에 괴로워하는 토니의 부르짖음 등은 영화 전반에 흐르고 있는 ‘사랑’의 테마를 잘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유명한 장면인 발코니 장면이 어떻게 표현될까 몹시 기대하면서 봤는데 발코니가 화려하고 꽃이 피어있고 등의 배경은 전혀 없이 정말 미국의 어느 뒷골목의 배경인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현대 문명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수업명이 세익스피어와 현대 문명인데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영화였다고 결론을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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