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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은정 Sep 26. 2018

영화로 만나는 '청소년' 이야기

청소년들과 영화를 도구로 인문학 토론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영화가 바로 <스파이더맨>이었다. 처음 시도했던 일련의 나의 열의 가득한 영화들은 아이들이 접해보지 못한 영화들이 많아서 영화를 설명하다가 아까운 시간들이 모두 허비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흔히 접해봤을 또는 앞으로도 접할 영화들을 고민하다가 "딱이다" 외쳤던 영화이다. 이유는 10대가 주인공이기 때문이고 게다가 히어로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DC'에서 '마블'로 대세가 넘어올 때 큰 공헌을 한 히어로가 스파이더맨이라고 인정받기를 기대한다. 물론 나는 'DC' 히어로 세대이고 아직도 팬이지만 현재 청소년들과 만나면서 '마블'을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때 반한 것이 스파이더맨이었기 때문에.
그러다 '마블'이 10대의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에서의 동의와 일종의 희열을 느낀 것을 공유하려 한다.

가장 고개를 끄덕인 장면이다. 스쿨버스를 타고 견학을 가다가 지구에 무슨 일이 난 것을 촉으로 감지하고 친구 네트에게 소란을 떨어달라고 한다. 그 사이 스쿨버스 한 쪽에 매달려 변신(복장 장착)을 하고 잔스포츠 가방을 한 손에 들고 있는 장면. 이 친구는 지금 지구를 구하러 가기 위해 스쿨버스를 탈출(?)하고 있는 것이다. 어른(대표적으로 부모 or 선생님)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경악할 장면인가. 무모하고 위험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인피니트 워에서 스파이더맨을 이렇게 등장시키는 것이 어쩜 그리 마음에 들던지. 우리 안에 이런 청소년이 있을지 모르지만 식별이 불가능하니 모두 이런 능력을 가진 아이로 보는 것을 권유한다. 그 아이는 지금 평범(몹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뭐 표현 상)한 아이들처럼 학교를 다니고 수업을 듣고 견학을 가지만 사실 그는 이 지구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행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자신의 가진 (초)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여러 위험해보이는 시도와 다소 문제로 보이는 돌발 행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시도에 존중과 존경을 담기를.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의 스파이더맨 나이는 15세이다. 만 나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 학령기로는 중학교 3학년이고 그보다 한 학년 낮은 아이들은 모두 병에 걸렸다고 치부되는 중학교 2학년이다. 이번 스파이더맨 나이가 18살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나이가 엄청 어려진 것이다. 이 이유 하나로 나는 홈커밍이 몹시 기다려졌었고 개봉 후 흡족함은 매우 컸다.

일단, 어려진 만큼 실수가 많아졌다. 동네 담장들을 마구 부수며 나쁜 악당을 쫒아가는 장면은 캬~ 정말 멋진 은유이다. 또 무려 아이언맨이 준 슈트가 있는데 그것이 아닌 자신이 제작한 천조각 같은 것을 입고 문제를 모두 해결한다. 거의 혼자서. 그리고 마지막에 세상에서 가장 멋있어지는 기회를 스스로 뿌리치고 돌아서 나온다. 우리 청소년 멋지다. ㅎ
내가 꽂힌 장면은 아니 잊을래야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바로 위 장면이다. 악당이 반으로 갈라버린 배의 양쪽을 잡고 버티며 마치 십자가처럼 혼자 버티고 있는 장면. 그렇게 배의 사람들은 결국 모두 안전하게 구조된다. 그냥 눈물이 났던 장면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또 하나의 10대가 등장한다. 그루트. 사춘기가 되더니 어릴 적의 온통 호기심은 어디로 가고 아니 온통 모아서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는 녀석. 길쭉한 길이와 반항적인 눈가와 누가 무슨 일이 일어나던 무신경하고 뭐라고 하면 몹시 반항적인 그루트이다.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로켓이 "너 게임기 부숴버린다"라고 협박하는 장면은 은유법도 아닌 직유법이다.

현실을 그대로 갖다가 쓴 것. ㅎ 물론 굴하지 않고 게임기만은 사수하겠다는 그루트는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게임을 한다. 이 아이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도 없고 꿈도 없고 친구도 없이 게임만 하는 골칫덩이 청소년? 오 노노노~~ 그루트는 '단지' 그런 아이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루트의 겉모습과 행동에만 판단이 머물러있다. 행동 그 너머로 아이를 보지 못하거나 볼 생각이 없다.

토르가 타노스를 무찌를 수 있는 무기라며 목숨을 걸고 만들어내는 도끼(스톰브레이커)가 완성되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손을 뻗어 그것을 집고 자신의 손을 과감하게 잘라내어 손잡이로 내어준다. 자신의 손을 내어주는 일을 서슴없이 하다니. 물론 다시 자랄 것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중요한 순간, 게임기를 놓고 자신이(혹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판단하자마자 그걸 해내는 그런 청소년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타노스가 지구에 침법했을 때도 겁내지 않고 양손을 뻗어 위협하며 다른 히어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게임만 하는 사춘기가 아니란 말이다. 

지구를 구하는 두 청소년. 주변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자신의 손을 내미는 두 청소년 이야기가 여기 있다. 
그런데 우리가 늘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영화는 삶을 따라한다. 이 영화에서처럼 우리 삶에는, 우리 주변에는 이런 청소년들이 있다. 무모하고 서툴고 어리숙하고 무기력하고 문제가 많아보이는 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보는 어른들의 얕은 시선이다. 그러니 바꿔야 할 것은 청소년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다. 

by 원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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