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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은정 Jan 15. 2018

중2병은 존재할까?

최근 한 신문에서 초4병을 발표했다. 이제 중2병 뿐만이 아니라, 초4병이라는 것이다. 중학교 2학년 전에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 아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 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애초에 유행처럼 중2병이 있었고 그건 이제 하나의 명사처럼 실제 존재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이번에 중학교 2학년 친구들과 캠프를 해요.”
“아유, 중2병들하고 괜찮으시겠어요?”
이렇게 심지어 자연스럽게 중2를 중2병이라고 연결하여 말을 한다.
중2병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일본의 한 라디오에서 DJ가 어떤 노래를 틀면서 “나는 이런 중2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에서 시작한 것인데, 

이것이 ‘병’으로 진화한 것이다. 청소년을 만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 단어를 들을 때마다 속상하고 마음이 움찔거린다. 그렇다고 일부러 악의적으로 하는 말도 

아닌데 일일이 그건 아니다 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중2병, 초4병, 초6병 등 이런 단어들 앞에 부모들 역시 우리 아이가 그렇다 라고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건 그냥 하나의 닉네임 같은 거지 악의적인 의미는 없다라고 말할 것이다.


허나 이런 예를 들어보자.
어느 날, 친구에게 
“나 요즘 마음이 복잡하고 울적해. 괜히 문득 문득 그러는 거 있지.”라고 말했을 때
“너 그거 병이야.”라고 말한다면 마음이 어떨 것 같은가?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서운하고 야속할 것이다. 마음이 복잡하고 답답할 때는 누군가 그 마음을 알아주고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마음을 향해서 병에 걸렸다고 치부해버리거나 이상하다라고 말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수많은 과정을 겪고 있다. 자신에 대해서 확신이 없어지기도 하고 미래가 불안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것이 많기도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그 어떤 모습도 영원히 머무르지 않고 변화된다. 그러니 주변 어른들이 그것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한데, 마치 지금 보여주는 모습이 전부인 양 평가하고 ‘너는 그런 애’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과정을 기다려주지 않고 믿어주지 않으면서 ‘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 사회가 우리 어른들이 게으르다는 증거이다. 더 부지런히 기다려주고 더 부지런히 믿어주고 더 부지런히 응원해줘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더 생각해볼 것이 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도 불안해하고 변덕스러우며 꿈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때론 예상치 못한 감정과 마주하기도 하고 소위 질풍노도의 시기를 늘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과 우리 어른들 모두 과정을 보내고 있고 과정의 삶을 살고 있다. 과정은 과정으로 인정받을 때 결과도 빛이 난다.


원은정. 한국청소년센터 대표, 부모의 인문학 질문법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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