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세계문학 시리즈 읽기 프로젝트'는 아직까지 큰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 두 번째 책이긴 하지만, 사실 도서관을 가면 제목으로, 디자인으로 나를 유혹하는 책들이 꽤 많다. 특별히 꼭 봐야 하는 책이 있어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면 가장 먼저 내가 향하는 곳은 '신착 도서'코너이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구김 없는 새책을 읽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지금 가장 핫하거나 이슈가 되는 부분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미가 당기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근래의 이슈를 다루다 보니 친근하기도 하고 이해하기 쉬운 부분도 있다. 재미있기도 하고.
아무튼. 약속을 어기고 싶지 않기에 기한 내 읽을 수 있는 책만 빌리기 위해 자제하며 책을 선택하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눈에 띄는 신간을 추리고 추려 2권 정도 고르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도서를 빌리고 나면 사실 마음의 부담이 생긴다. 그럼에도 세계문학전집이 모여있는 코너로 가서 책을 고르는 것은 분명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심적으로 안정된 상태도 아니거니와 책만 붙들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시리즈 물이나 두꺼운 책은 미루고 있는 편이다. 나름의 기준이 있다는 것. 그리고 가급적 많이 들어봐서 익숙한 책을, "설마 이 책 안 읽어 봤어?" 혹은 "이 책을 모른다고?" 할만한 충분히 들어보고 인용되었을 것 같은 도서를 위주로 고르곤 한다. 그렇게 내가 고른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사설이 좀 많이 긴 편...)
굉장히 쉽게 읽히는 책이었다. 가볍고. 그저 주인공의 시간에 따라, 장소의 이동에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그런. 그는 4번째로 고등학교를 퇴학당한 뭐랄까. 주류의 학생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자발적 아싸의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가 좋아하는 공부는 잘한다. 하지만 관심 없는 과목은 쳐다보지도 않는.
책을 읽는 내내 뉴욕 여행을 따라다니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퇴학이 결정된 후, 학교를 떠나기 전 다양한 사건들부터 학교를 떠나는 순간까지. 그리고 가본 적 없지만 세상 화려하고 가장 크고 복잡한 도시 뉴욕을 여행하면서도 우울함이 기저에 깔려있는. 굉장히 짙은... 한편으로는 아니 뉴욕에 갔으면 좀 기분 전환도 하고 해라!!!!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대부분의 독자는 작가가 원하는 시선에 맞춰 따라가고 감정도 따라가기 마련이기에 그저 그의 시선을 따라가며 같은 감정을 느껴야 했다. '저렇게 잠을 안 자고 놀 수 있다고???'라는 극도로 ST적인 생각도 함께 곁들여서 말이다.
책은 자발적 아싸인 주인공이 영어작문 1과목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에서 낙제를 하며 퇴학이 결정되고, 학교 모든 학생들이 열광하는, 전교생이 관람하는 스포츠 경기에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으며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룸메이트, 건너편 방에 사는 화장실을 함께 쓰는 여드름 가득한 더러운 친구를 묘사하며.
본인이 좋아하던(?) 좋아하는지의 감정조차 인지하지 못하지만 룸메이트가 데이트를 하러 간다고 하자 일렁이는 감정에 우울해지는. 그 와중에 데이트를 하러 가며 묘사에 대한 영작문을 부탁(?) 강요하는 룸메이트부터 씻지 않아 더러움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게 묘사하는 건너편 방의 친구까지. 주인공의 시선에 따르면 정상인 사람은 없다. 뉴욕 여행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까지도.
하지만 그의 감정을 알 것만 같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느꼈던 바로 그 감정이 떠올랐다. 나에겐 엄격하고 화나면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지만, 손님을 상대할 때면 세상 친절한 부모님을 보면서 나는 그게 너무 혼란스러웠거든요. '어쩌면 저렇게 이중적일 수 있을까. 너무 가식적이다. 사람들은 절대 모를 거야...!!' 지금은 너무나 성인이 되어버려 그것이 사회생활임을, 부모님이 원해서 온전한 마음으로 한 게 아니라는 것을. 그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던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으니까.
그의 이런 성장통은 그의 동생인 '피비'를 생각하는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다. 어린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 떠나려는 그를 동생인 '피비'가 짐을 싸와 "나도 오빠 따라서 같이 갈래"라는 말에 떠나는 것을 포기하고 정착을 선택하는 그를 보며 어린이를 지나 청년기, 그리고 성인이 되는 그 과정에서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통해 힘든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구나.. 를 느낄 수 있었다.
피비는 오빠에게 오빠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뭐야? 하고 싶은 게 있긴 있어???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며,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마지막은 떠나려고 마음을 먹었다 동생이 함께 가겠다는 말에 떠나기를 포기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모습으로 끝난다. 방황하는 청소년의 짧고 굵은 방황기를 본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느낌. 여자와 데이트는 하고 싶지만, 연예인들에게만 관심 있는 모습을 한심스러워하고 하룻밤을 같이 보낼 여자를 요청하지만, 이내 든 동정심과 우울함으로 시도조차 하지 않는 주인공. 전화할 사람들을 물색하고, 술 마실 사람을 찾고, 택시를 타며 방황했던 것은 그저 자기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모두가 튀지 않고 사회에 어울리고 융화되어 갈 때, 유독 나에게만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단점. 아니 장점이든 단점이든 상관없이 보이는 것들.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나 타당성 없이 그저 따라가는 사람들과 달리 내가 납득할 수 있어야 수용 가능한 홀튼이기에 3박 4일? 의 뉴욕 방황기가 탄생한 것 같다.
이 소설의 경우에는 책에 별도의 작품해설이 없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출판 당시, 센세이션 한 작품이었던 같다. 작품에 등장하는 욕설과 성적 묘사로 논란이 있었고,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었으며 불온한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했었다고 하는데 지금 시대에 읽은 나로서는 가볍게 읽히는 성장 소설이라고 할까? 아무튼 홀튼 그는 너무 P이다. 집이 잘 사는 것 같아ㅋㅋㅋㅋㅋ. 대책도 없는 편. 근데 나는 어렸을 때도 저렇게 생각 없이 못 살았던 것 같아 아쉬웠다. 언제 저렇게 생각 없이 막살아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