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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Aug 17. 2020

안전감과 신뢰

2020.08.17 즈음의 질문들

1. 지난 주말 정동진독립영화제에 다녀왔다. 너무 좋은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종종 ‘왜 이걸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속이 상하곤 하는데, 정동진독립영화제는 그 이상이었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무엇이 좋았는지는 소화가 되면 따로 정리해야지(좋은 게 너무 많아서 아직도 소화가 안됨) 이번 여행을 함께한 팀의 캡틴 손현은 13년째라고 한다. 매년 꼭 와야지 하고 애를 쓴다기보다 살면서 일 년에 사흘 정도 여기 올 수 있는 여유는 가져야지 한다고. 정동진독립영화제의 첫 경험을 이런 친구들과 함께해서 더욱 좋았다. 내년 8월에도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면.


2. 행복 [명사] 1. 복된 좋은 운수. 2.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낄 때마다 굳이 "행복해"라고 소리 내어 말한다. 내가 행복한 순간들을 스스로에게 기억하게 하고 싶어서. 그리고 내가 혹시 잊을 때, 그 순간을 함께한 사람이라도 대신 기억해줬으면 해서.

요즘 내 행복의 순간들은 블랙핑크 공연 영상 볼 때, 누워서 아이패드로 만화책 볼 때, <여름방학>을 본방으로 볼 때, 메일에 담은 마음을 상대방이 알아주는 듯한 답장을 받았을 때, 인터뷰 중 상대의 눈빛과 표정이 탁 무장해제되는 순간,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잘하고 싶다, 더하고 싶다’는 주파수가 통할 때, 갑작스레 잡은 친구와의 저녁 약속에서 요즘 뭐가 재밌는지 뭐가 재미가 없는지 별일 없는 서로의 안부를 사회생활이 아닌 우정으로 확인해줄 때. 일상의 고단함으로 쪼그라들었던 몸과 마음이 급속 충전되는 느낌이다.


3. 넷플연가 #기획자클럽 첫 모임을 했다.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를 보고 동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다. ‘좋은 동료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동료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나는 "좋은 이야기이든, 나쁜 이야기이든 뭐든 다 털어놓고 온전히 솔직하고 투명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관계가 좋은 동료라고 생각한다”라고 했고, “그런 신뢰 관계를 위해 안전감을 줄 수 있는 동료가 되고 싶다”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그 안전감과 신뢰는 어떻게 쌓을 수 있나 싶다.

며칠 전 한 디자이너의 인터뷰 원고 작업 중에 놓치고 싶지 않아 하이라이트 해둔 내용이 있다. “동료는 일 잘하는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무조건. 처음에는 감정의 영역이나 동료 간의 케미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일을 잘하면 감정까지도 안 가거든요. 일 잘하는 사람이 최고인 거 같아요. 성향도 상관이 없는 거 같아요.”


4. 요즘 어떤 책은 정말 깔깔거리고 보게 된다. 실컷 재밌게 보고 나면 현타가 오기도 하는 그런 책. 예전엔 이런 콘텐츠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의문을 가졌었다. (심하게 말하면 이런 한번 보고 말 책들은 왜 만드는 거야,라고 생각한 적도…) 요즘은 이런 콘텐츠에도 탁월한 기획자와 창작자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라는 질문이 끼어들 틈조차 주지 않는, 순수한 즐거움으로 가득 찬 콘텐츠. 1.5만 원으로 찰나의 행복을 살 수 있다면(책 기준), 정말 대단한 일 아닌가.  


5.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만들 수 있는 콘텐츠를 잘 하자.



이번 주 나를 살린 콘텐츠 <그리고, 또 그리고>

란님의 추천으로 보게 된 만화. and then and(?) 뭐 이런 뜻인 줄 알았는데 drawing, keep drawing 같은 뜻이었다. "어떤 순간에도 그리는 사람은 그저 그리는 수밖에 없다. 늘 그리고 또 그려라"는 삶의 기본기를 가르쳐준 선생님에 대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 개그만화 작가로 유명한 히가시무라 아키코의 작품이라 웃으면서 울게 된다.

슬럼프 같지 않은 슬럼프, 좋아서 하는 일이 결국 '일'이 되었을 때의 번민, 자기만족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인정'이 개입된 일을 할 때의 내적 갈등. 그럼에도 그리기(쓰고 만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그저 그리는(쓰고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 뿐 아니라 만드는 사람들, 창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보고 싶은 선배와 친구들이 몇 생각났다.

<그리고, 또 그리고> 히가시무라 아키코,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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