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반 1년 과정을 마무리하며...
자카르타의 드림센터 프로젝트 목공예 전공은 1년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생들은 1년간 다양한 목공 연장 사용법과 안전한 기계 작동법을 배우고, 의자, 테이블, 서랍장 등 대략 8~9 가지 가구를 직접 만들어 본다. 그리고 커리큘럼의 마지막에는 각자 자기가 만들고 싶은 가구를 자유롭게 설계하고 직접 만드는 시간이 있다. 한 해 동안 수업 중에 만든 가구들과 마지막 개인 작품을 모두 모아서 연말에는 졸업 전시회를 한다. 그리고 어느덧 연말이다. 어김없이 졸업전시회 시즌이 왔다.
처음부터 졸업전시회를 이렇게 구색을 갖춰서 할 생각은 아니었다. 옛날 초등학교 때 한 학기 끝나고 책을 다 배우면 책거리 하듯이 그냥 쫑파티 겸 품평회를 하면서 수업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이 내 생각과 다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가구반이 졸업 전시회를 한다는 소문이 직업학교 전체로 퍼져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KOICA 보고서에 졸업 전시회 이야기를 쓸 예정이니 전시회를 제대로 한 번 해보라는 의견이 NGO회의에서 나왔다. 생각보다 일이 커져버렸다.
학생들의 작품이라 해봤자 조그만 콘솔, 좌식 평상, 용도를 알 수 없는 박스와 심플한 의자 같은 것들이다. 전시회에서는 학생들의 작품을 판매도 할 예정이었고, 작품이 팔리면 그 돈은 학생에게 주기로 했다. 학생들의 투지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평소에는 떠먹여 주지 않으면 먹지 않던 아이들이 이번엔 주도적으로 뚝딱뚝딱 일을 하기 시작했다. 목공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하나하나의 작업이 그리 쉽지는 않지만, 나무를 깎고 홈을 딱 맞게 맞추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당히 집중하게 된다. 틈이 딱 안 맞으면 속이 상하고, 이쁘게 딱 맞으면 기분이 좋다. 레고 조립의 어른 버전이라고나 할까? 전시회 작품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이 전의 수업 때와는 달리 각기 다른 작품을 저마다의 방법대로 만들어 갔다. 학생들이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마침내 스스로 작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드디어 졸업 전시회 당일, 우리 학생들은 말끔한 옷을 입고 설레는 기분으로 아침부터 전시회장을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전시회 분위기를 내려고 각각의 작품을 흰 천을 씌운 단상 위에 올렸다. 간단한 스낵도 준비했고,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났다. 사람들이 하나 둘 오기 시작했다. 이 조그만 직업학교에서 다른 전공을 가르치는 현지 강사들과 다른 반 학생들, 그리고 학교 행정을 맡아보는 직원들까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와서 왁자지껄 한 분위기를 내주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사람이 없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나게 된다면 우리 학생들이 전시회를 망쳤다는 생각에 상처를 받을까 봐 조심스러웠는데 이렇게 행사 분위기가 나서 정말 다행이다. 사람들이 별 것 아닌 이 작은 행사에 와서 웃고 떠들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사람들은 전시 공간을 돌아보며 학생들 작품을 구경했고, 맘에 드는 작품은 문짝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자세히 살펴봤다. 학생들을 집합시켰다. 그리고 앞쪽에 전시된 작품부터 각자 차례대로 설명을 해보라고 했다.
"리즈키, 이 가구의 이름은 뭐야?"
"이름요?" 리즈키는 갑자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선 집중을 받아서 얼어버렸다.
"그래 이름 말이야, 이 가구는 무슨 가구야?"
"그냥 수납장이에요" 리즈키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러분 이 가구는 수납장이랍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쩌렁쩌렁하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나서 이 수납장을 왜 만들었고,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어보았다.
"... 수납장이랍니다."하고 큰 목소리로 얼어붙은 공기를 쨍하고 깨뜨려주니 리즈키는 긴장을 풀고 자기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인도네시아어 실력이 아직 부족해서 리즈키가 하는 말을 거의 못 알아 들었다. 하지만 리즈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술술 했고, 사람들을 귀담아 들었다. 그렇게 다음 가구, 그다음 가구를 학생들이 차례대로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동안 사람들은 학생의 말을 집중해서 들어주었다.
졸업전시회 행사만 커진 게 아니다. 아이들의 기쁨은 더욱 컸다.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살면서 누군가에게 제대로 된 칭찬과 인정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가구반 전시회에 와서 학생들을 축하해 주었고, 작품 하나하나를 보면서 멋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 행사를 계기로 우리 아이들의 자존감이 조금이라도 올라갔으면 좋겠다. 멋있고 쓸모 있는 가구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이 자부심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 작은 행사에서 느낀 조그마한 기쁨이 이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조그만 자양분이 되었으면 좋겠다.
전시회 기간 내내 들뜨고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은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비로소 내 역할은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