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목수 Jan 06. 2020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의 모든 것 1

인도네시아 행정수도 이전의 원인 분석과 파급 효과 (1) 


 인도네시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19년 하반기에 인도네시아의 행정수도 이전이 공식적으로 확정된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뒤섞여 있는데, 굳이 그 이유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자카르타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도시인데 그 문제를 도무지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물, 공기, 치안, 교통, 위생문제 등에 있어서 총체적 난국이다. 한 마디로 자카르타는 인간이 숨 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조건이 기준 미달이다.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과 관련된 글은 총 2부로 나누어 쓰겠다. 1부에서는 수도 이전의 원인에 대해 분석하고, 2부에서는 파급 효과에 대해 알아보겠다. 


 자카르타가 더럽다고 표현하면 자카르타가 고향인 사람에겐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 그러한 것을 어쩌랴? 자카르타는 동남아에서 가장 큰 국제도시로, 수도권인 자보데타백 인구는 약 2천5백만, 한국 수도권과 비슷하다. (JABODETABEK은 자카르타와 그 주위에 있는 위성도시 카르타, 고르, 폭, 그랑, 카시를 통칭해서 부르는 명칭이다) 사실 인도네시아는 인구 집계가 엉망이라 수도권 인구가 2천만인지, 3천만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아무도 모른다.

자카르타의 도로는 차와 오토바이가 사이드 미러를 서로 스치며 다정하게 나눠 쓴다.


 5년 전 내가 자카르타 처음 왔을 때 가장 먼저 충격을 받았던 교통문제부터 살펴보자. 자카르타의 교통 상황을 서울과 비교해서 상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우선 서울의 지하철이 딱 1호선밖에 깔려있지 않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버스 노선을 대략 10분의 1 정도로 줄이자. 다음으로 서울에 있는 도로의 절반을 걷어낸 다음, 거기에 오토바이를 천만 대 정도 추가하자. 마지막으로 10%의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바꾸고, 10%의 막다른 길을 추가하고, 10%의 상습 병목구간을 토핑 하자. 자 이제 서울의 교통 상황은 자카르타와 비슷해졌다. 상상도 하기 싫은 교통 지옥이 자카르타에서는 매일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 NGO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비에르'군은 이렇게 말했다. "I spent half of my life in the traffic jam."(저는 인생의 절반을 도로 위에서 보냈어요) 자카르타에서는 하루에 외부 일정을 2개 이상 잡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첫 번째 약속을 마치고 두 번째 약속 장소로 시간 맞춰 이동할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자카르타에서는 교통체증으로 낭비되는 비용이 연간 약 6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6억 아니다. 6조다. 인도네시아의 꾸준한 경제 성장으로 5년 전에 비해 자동차는 부쩍 많이 늘었지만, 도로는 5년 전과 그대로다. 즉, 교통 체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질 뿐 개선될 기미는 전혀, 전혀 없다. 




 자카르타의 두 번째 문제는 물이다. 중국 고전에는 치수를 지배하는 자,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수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중국과 다른 문화권이라서 그런지 치수 문제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나 보다. 자카르타는 상수와 하수 시스템이 모두 엉망인데, 그냥 엉망인 것이 아니라 이건 뭐 정부가 도대체 왜 있나 싶을 정도로 엉망이다. 우선 상수도의 문제는 자카르타라는 도시의 존립자체를 위협할 정도다. 자카르타의 지반은 매년 약 7.5cm씩 가라앉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자카르타 북부 해안은 2.5m나 가라앉았고, 이미 자카르타의 절반 이상은 해수면 보다도 낮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의 문제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자카르타의 문제는 무분별한 지하수 사용으로 인한 지반 침하다. 


 수천만이 거주하는 자카르타의 상수도 보급률은 대략 60% 수준이다. 그나마 보급된 상수도에서 나오는 물도 식용수로 사용할 만큼 깨끗하지가 않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자카르타 사람들은 지하수를 퍼올려서 쓰는데, 일 년 내내 무더운 나라다 보니 물 사용량이 많은 것은 자명한 일이다. 수천만의 사람들이 자카르타라는 좁은 지역에 모여서 땅속의 물을 쉴 새 없이 마구 퍼올려서 쓰는 상황은 지구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마치 들러붙은 뱃가죽에 빨대를 꽂아 얼마 남지 않은 영양분마저 쪽쪽 빨아먹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약 20년 전 상수도 서비스를 민영화했었는데, 민간 상수도 운영 업체가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서 상수도 설비 보급에 소극적이었단다. 민영화를 좋아하는 시장만능주의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물처럼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것들은 갖고 장난치면 안 된다. 


 자카르타 지반 침하와 관련해 웃픈 장면이 하나 있다. 자카르타 북항 근처에는 화교들이 모여 사는 아주 비싼 초고급 아파트 단지가 몰려 있다. 1998년 인도네시아 폭동 때 수많은 화교들이 폭동의 희생자가 된 이후, 돈 있는 화교 부자들이 폭동이 다시 일어날 경우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같은 해외로 쉽게 피신할 수 있도록 자카르타 북항 근처에 터를 잡은 것이다. 해상 도시처럼 만들어진 이 지역은 도개교를 올리면 출입할 수도 없을 정도로 보안이 잘 되어 있다. 문제는 이 비싼 해상도시가 바로 지반침하가 가장 심한 지역이기도 하다는 것. 살아남으려고 만든 해상 도시가 다시 물속에 가라앉고 있는 웃픈 현실. 그야말로 지못미. 그래도 이 지역에 사는 화교들은 돈이 많아서 어디서든 다시 터를 잡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쓰레기도 하수도 하천에 그냥 버린다 _ 출처:  Bay Ismoyo/AFP via Getty Images


 하수 시스템은 그냥 짧게 설명하겠다. 일반 가정에서는 하수를 정화하지 않고 하천에 그냥 흘려보낸다. 15개나 되는 자카르타의 세세한 강줄기는 모두 썩을 대로 썩었고, 우기에는 툭하면 홍수가 난다. 홍수가 나면 썩은 물이 가정집으로 마구 밀려드는데,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 이런 하천 근처에 있다. 썩은 하천의 일부는 땅으로 스며들어 지하수가 된다. 지하수 역시 마실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자카르타에서는 아주 가난한 사람도 물을 돈 주고 사 먹어야 한다. 그리고 생수 값은 한국과 비슷하다. 하루 일당이 1만 원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밥 짓는 물 마저 돈을 주고 사야 한다니...




 물, 지반 침하, 매연, 교통 체증, 이런 문제는 단순히 생활에 불편을 야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카르타 사람들은 이런 조건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주변 환경에 대해 굉장히 소극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길이 막히면 도로를 새로 놓는다. 강물이 더러우면 목소리를 높이고, 미세먼지가 창궐하니 천문학적 예산을 미세먼지 절감 정책에 편성한다. 그런데 자카르타에서는 꽉 막힌 도로 상황을 보고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말해봤자 안된다는 것을 시민들도 알고, 공무원도 알고, 대통령도 알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더러운 물과 오염된 공기, 지반침식과 매년 반복되는 홍수, 그리고 교통체증은 그냥 삶의 일부분이다.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자 힘 낭비기 때문에 누구도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실제로 내가 만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 대부분 문제 해결에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 것이 자카르타와 자카르타 시민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다. 


저 멀리 우뚝 선 마천루의 불빛이 보이지만 그 밑에는 서민들의 낮은 주택이 넓게 깔려 있다. 

 물론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르다. 인도네시아가 살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가정부와 운전기사를 저렴한 급여를 주고 고용할 수 있으니 집안일하느라 손에 물 안 묻혀도 되고, 자가용에 편안하게 앉아 있으면 운전기사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니까.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시골 사람인가 보다.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 그리고 교통체증 없이 친구를 만나러 갈 수 있는 안전한 도로와 편하게 휘적휘적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가정부나 운전기사보다 더 중요하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나 같은 NGO 활동가에게 가정부나 운전기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ㅋㅋㅋ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도망치듯이 행정수도 이전을 결정한 이면에는 다양한 정치. 경제적 이권 다툼이 어지럽게 얽혀있다. 인도네시아의 정계는 한국과는 달리(?) 귀족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한다. 그리고 그 귀족은 대부분 자카르타 마천루와 비싼 부동산의 주인이기도 하다. 그들로서는 당연히 수도 이전으로 자카르타 내의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달갑지 않았겠지만, 지옥 같은 상황이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게 하였다. 그리고 2019년 조코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마침내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아무튼 그래서 인도네시아가 수도 이전을 한단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수도 이전을 통해 경제적 효과와, 환경적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수도를 옮겨서라도 문제를 해결하여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보려 노력한다는 제스처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제스처는 분명 사람들의 소극적 태도에도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환경은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하다. 사회과학을 전공한 야매 목수의 눈에는 이번 수도 이전 결정이 그러한 뜻의 발로로 보인다. 


 다음 글에서는 수도이전의 파급 효과에 대하여 썰을 풀어 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회의 땅, 인도네시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