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하려면...

108 계단을 오르면서...

by 글짓는 목수

나는 매일 108 계단을 오른다.


처음 오를 땐 계단의 수를 세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문득 궁금해졌다. 10 계단쯤 올랐을 때였다. 다시 내려가 처음부터 하나씩 헤아리면서 오르기 시작했다. 정확히 108 계단이었다. 이건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이 계단을 시공할 때 그 시공자 혹은 학교 설립자의 의도였을까? 캠퍼스 입구에 솟아 오른 계단은 마치 산 중턱에 있는 사찰의 계단과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매일 이른 아침 이 108 계단을 오르면서 귓속으로 울려 퍼지는 가사 없는 잔잔한 음악 속에서 이런저런 감정을 느껴왔다. 그 감정들은 108 번뇌가 아니었을까?




처음 이 108 계단을 올랐을 땐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힘들었다. 이제는 몸이 적응되어서 그때의 격한 반응은 사라졌다. 그래도 몸이 데워지고 이마에 땀이 맺히는 건 어쩔 수 없다. 처음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이것이 견딜만한 고통으로 바뀌면 뇌는 무념의 세계에서 상념의 세계를 허락한다. 이건 내가 등산을 할 때와 같다. 처음 힘든 고비들을 넘기고 몸이 적응되면 뇌는 그 고통에서 빠져나와 생각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과거 직장을 다닐 때 내가 주말마다 산에 갔던 이유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일과 관계로 인한 수많은 잡념과 스트레스는 산에 오를 때 느껴지는 육체의 고통으로 사라졌다. 고통이 나를 잊게 만든다. 무아지경(無我之境)이다. 그때는 상념의 세계를 알지 못했다. 잊기 위해 오르는 것이었다. 그건 아마도 가끔씩 하는 등산은 언제나 익숙해질 수 없어 고통 밖에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를 잊는 것만 가능했다. 하산 후 먹고 마시는 것은 그 고통에 대한 보상이었다. 고통으로 잊고 술로 잊으며 한주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시 월요일이면 다시 나를 찾는다. 오르는 행위는 모두 현실에 묶여 있는 나를 잊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생각 없이 빨리 올라가서 정상을 찍고 빨리 내려와 먹고 마셨다. 힘들게 오르면 보상이 따르는 현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잊고 찾고 또 잊고 다시 찾는 윤회의 고리를 반복했다. 생각이 많은 현대인은 사실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등산과 등산 계단 위의 길막 당랑권 in 乘鶴

108번의 의미 (6 x 3 x 2 x 3)


계단을 다 오르고 문득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108번의 의미를 물어보았다. 궁금증이 생기면 바로바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이다. 궁금증이 생길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 시대이다. 그리고 그 궁금증을 어떻게 상세하고 지혜롭게 물어볼 수 있는가가 남다른 능력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108 번뇌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불교 용어이리라. 그런데 이 108 가지의 번뇌는 어떻게 산출된 것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이것은 6*3*2*3=108이라는 공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6은 인간 육체가 가진 오감(시각, 청각, 후각, 촉각 = 5)에 마음(+1)을 더한 것이라고 한다. 불교에선 이것을 육근(六根)이라고 표현하더라. 이 감각을 통해서 느끼는 감정은 좋은 것과 나쁜 것 그리고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는 3가지로 나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삼수(三受)라고 얘기한다. 그럼 18 가지(6*3)의 감정이 생긴다. 그리고 이 18가지 감정은 두 가지의 상태를 가진다. 그 두 가지는 오염된(과도한)의 상태와 치우치지 않은 맑은 상태로 나뉜다. 여기서 앞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었는데 그럼 이건 중복이 아닐까?


이건 한 가지 예를 들면 알 수 있다. 방금 내가 108 계단을 올라올 때는 나쁨과 치우치지 않은 두 가지 상태를 느꼈다. 계단을 오를 때 느끼는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과 힘듦의 느낌은 나쁨 상태이지만 이것이 과도하지 않은 저항과 고통을 주면 오히려 몸에 활력을 주고 신체의 근육과 체력발달에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은 좋은 것이지만 이건 많이 먹으면 오히려 몸에 독이 된다. 과식은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몸에 해로운 이치와 같다. 좋은 것이 탐욕을 만나는 벌어지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용(中庸 or 과유불급=過猶不及) 이 어려운 이유이다.


3개의 시간, 3가지 감정


그럼 마지막 세 가지는 무엇일까? 여기서 신통방통한 발상이 나온다. 불교에선 이 감정을 세 가지 시간으로 나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이다. 현재의 느끼는 감정은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과거 고통이었던 것이 지금은 무난함이고 미래에는 오히려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등산을 예로 들면 체력이 저질이던 초보 등산인이었을 때 등산은 고통 그 자체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처럼 등산이 어느 정도 익숙한 자에게 등산은 삶에 활력을 주는 무난한 일상의 한 부분일 수 있다. 그러나 전문 산악인에게 등산은 쾌락과 환희를 주는 목적 그 자체일 수 있다. 이 과정이 모두 한 사람에게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면 한 가지의 현상이 한 사람에게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3가지의 감정 상태로 분화된 것이다. 이 3가지 감정을 모두 다 느낀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시작과 마지막은 다르다. 오랜 세월 무언가 한 가지를 지속적으로 해온 자는 이것을 모두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이런 자를 경지에 오른 자라로 말한다.


드디어 왜 절에서 108번의 절을 하는지 이해되었다. 인생에서 이 108가지의 감정을 모두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삶의 모든 감정들을 다 경험했다는 것일 수 있다. 그럼 아마도 이 어지러운 '삶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과 궁금증이 모두 '받아들임'이라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았을까?

학교와 사찰(통도사 자장암)의 계단

이 캠퍼스를 다니는 학생 중에 과연 몇 명이나 이 계단의 개수를 세어 보았을까?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내 순환 버스를 타고 학교에 등교한다. 이 계단을 걸어서 오르는 학생은 드물다. 밑에서 올려다보기만 해도 어지럽다. 이 계단을 오를 생각도 없는데 어쩌다 한 번 오른다 해도 헉헉거리며 그 개수까지 세어볼 리 만무하다.


4년 동안 이 학교를 다녀도 그 계단의 개수를 모르고 졸업한 학생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이 학교를 다녔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도 대학생 때는 매일 보고 걷고 보는 캠퍼스에서 주변 건물과 주변 환경에 대해 이런 관심과 관찰이 전혀 없었다. 공부는 하지 않아도 대학생에겐 놀고먹고 즐길 거리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대학생 때 놀고먹고 즐긴 것들은 기억나는 것 거의 없다. 그럼 점에서 볼 때, 기억이란 일상의 특별한 것이 아니라도 그것을 특별하게 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태도는 분주함과 번잡함 속에서는 좀처럼 찾아내기가 어렵다. 내가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은 그것에서 벗어난 시간, 즉 여유로움과 단순함의 시간 속에서 찾아낸 것이었다.


체념은 단순함에서 비롯한다.


처음부터 단순한 세계만 머문 사람은 복잡한 세계의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처음부터 복잡한 세계에서만 살아온 자는 단순한 세계의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두 세계를 모두 경험한 자는 그 두 세계를 자신 안에서 통합하려는 과정 속에서 이해하혀 한다. 사실 이해한다기보다 받아들임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이해는 끝이 없어 한 인간의 인생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불교는 왠지 모르게 체념의 느낌이 강하다. 체념(諦念)은 '포기'가 아니다. 살필(체)와 생각(념)이 합쳐진 생각을 깊이 살펴봄으로써 도리를 깨닫는 마음이다.


체념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생각을 깊게 살피려면 단순한 패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쁘고 복잡하고 어지럽게 섞여 있어서는 그것을 그 복잡한 생각들이 이해되지도 정리되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고대 성인들과 위인들이 단순한 패턴의 일상 혹은 분주함에서 분리된 상황(투옥, 유배 등) 속에서 체념을 발견했다. 그리고 체념을 말과 글로 표현하고 남겼다. 이런 공통점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 항상 바쁘고 분주하게 돌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단순하고 여유 있는 시공간을 가져야 함은 그 때문일 것이다. 오늘 이른 아침 108 계단을 오르며 나는 과연 이 108가지의 번뇌를 다 느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언젠간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그 서로 다른 번뇌들을 하나씩 떠올릴 수 있을 날을 기대해 본다.


그럼 번뇌가 사라지고 극락왕생(極樂往生)할 수 있게 될까? ㅋ


Writing after climbing 108 steps


일요일 연재
이전 26화인지할 권리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