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대화의 의미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by 글짓는 목수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고도의 부재(不在)의 현존(現存)을..."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166p -


의미 없는 대화의 의미는 무엇일까?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는 의미 있는가? 두 남자가 누군가(무언가)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맥락도 의미도 없다. 기다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아무 말 대잔치가 벌어졌다. 아무 말이나 나누면서 무언가를 계속 기다린다.


우리는 저마다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성공과 사랑과 부와 명예 같은 것을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이 기다리는 한 가지가 있다.


그건 죽음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올지 모르는 '고도'는 죽음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소설(희곡)이 끝나도록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의미 없고 맥락 없는 대화는 계속된다. 우리들의 삶처럼... 어쩌면 인간의 삶이란 죽음을 기다리는 언어의 유희가 아닐까?

Writing (Waiting) after Reading




"도대체 뭘 말하려는 거얏?"


소설이 아닌 희곡이라는 장르 때문이었을까? 이렇게 읽어 내려가기 힘든 고전은 처음이다. 두 남자가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대화를 따라서 읽어 내려간다. 의미도 맥락도 없는 대화들이 계속 이어진다. 나는 점점 집중력이 떨어지고 힘들어한다. 왜 힘든 것일까? 나에게만 힘든 것인가? 희곡이라서 그런 것일까? 책을 절반가까이 읽어가면서도 뭘 읽고 있는지 모르겠다. 독서 토론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책을 덮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독서 모임에 나가기 위해 꾸역꾸역 읽었다. 그리고 책의 마자막 장을 넘기고 나의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의미 없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나'


서두의 나는 책을 읽으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사무엘 베케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벨 상을 생각 없는 자에게 수상했을 리 만무하다. 알고 보니 그가 노벨상을 받은 이유가 나 같은 사람이 이해할 수 없기에 받은 것이더라.


베게트는 나에게 생각과 사색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사유하려는 인간인데 그는 자신의 글을 읽으며 독자가 사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니 내가 힘들 수밖에 없다. 작가의 글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나의 수고를 계속 박살내고 있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면 항상 책 속의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사색하며 나의 과거 기억들을 떠올리고 내가 쓸 문장을 떠올리고 나만의 상상을 만드는 것을 즐긴다. 이것이 내가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쓸려고 읽는 자에 가깝다. 작가에게 책이란 글감이다. 그런 나에게 베케트는 가장 힘든 작가에 가깝다. 내 글을 오랜 시간 읽어온 독자들은 아시리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페르난두 페소아이다. 그 이유는 그의 산문은 철학적인 의미를 문학적으로 녹여내어 사색과 사유를 계속적으로 유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케트는 페소아의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는 작가였다.


구조를 파악하는 작가와 구조를 해체하는 작가


페소아는 세계의 구조를 만들지는 않지만 그 구조를 파악할 수 있도록 사유하는 글을 쓰는 시인이다. 소설가는 세계의 구조를 만드는 사람이다. 소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구조를 가진다. 독자는 그 소설가의 구조 안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고 이해와 공감을 얻는다. 하지만 페소아는 구조를 만들지 않는다. 그는 구조를 파악하고 해부하는 작가에 가깝다. 그래서 그는 시인이지만 구조를 전제하는 시인이다. 대부분의 시인은 구조를 보여주지 않은, 구조가 해체된 상태의 글을 쓰기 때문에 이해 없는 공감과 느낌에 먼저 도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페소아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며 공감을 이끌어 낸다. 세계의 구조를 이해한 자의 시다. 그래서 공감과 깨달음이 동시에 밀려든다.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 vs 사무엘 베케트 (1906~1989)

베케트는 완전히 다르다. 이 작가는 사유의 확장을 의도적으로 방해한다. 대화의 맥락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아무 말 대잔치이다. 어쩌면 작가가 이렇게 쓰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걸 무엇으로 비유해야 할까? 마치 여자들이 맥락 없이 수다를 떨면서 서로에게 손뼉 치고 공감하는 장면이라고 해야 할까?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 보면 이런 아낙네들의 대화를 한 번씩 엿듣게 되곤 한다. 여자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그 이야기에서 어떤 의미 도출이나 문제의 해결 혹은 결론을 도출할 수 없다. 그런데 여자들은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다. 대화의 목적이 대화 그 자체에 있다. 말을 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르네 데카르트 -

나 같은 사람은 그것이 힘들다. 나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것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 나만의 생각을 만들려고 한다. 그것이 인간의 존재 이유라 생각했다. 그래서 대화에서 의미와 문제와 사유의 실마리 혹은 그 어떤 나만의 상상을 자극할 무언가를 찾아야만 한다.


베케트는 이것을 의도적으로 차단한다. 왜 그럴까? 만약 그의 처녀작이 이 작품이었다면 이건 아마 그냥 낙서장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미 페소아처럼 사유의 확장(여러 작품을 쓰고)을 거치고 난 뒤 나온 것이었다. 그는 이제 사유의 확장을 멈추고 사유를 줄이고 해체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마치 소설가로 치면 클레이 키건으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가지 많은 나무의 가지치기를 통해 압축적인 구조로 만들어지는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고도를 기다리며...]는 다른 고전처럼 맥락이나 그 어떤 유의미한 스토리가 없기에 소설로 보기는 어렵다. 마치 콩트처럼 느껴진다. 지금으로 치면 맥락 없는데 계속 보게 되는 쇼츠나 릴스라고 해야 할까? 그의 희곡이 파리에서 극장에서 대성공(1953)을 이룬 것은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무겁고 의미심장한 희곡에만 질려있던 대중에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사유가 끊어지고 차단된 그냥 생각 없이 보는 멍하게 보게 되는 연극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 내가 영구와 맹구가 나오는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냥 생각 없이 웃으며 시간을 보낸 것은 생각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생각을 가지고 의미를 찾는 것이 고통일 수도 있다. 그토록 생각을 많이 하며 글을 쓴 베케트도 결국 나중에는 세상과 단절하고 살았다고 전해진다.


베케트는 이걸 보고 있는 독자와 관객에게 무얼 말하려고 한 것일까?

[Waiting for Godot] Play by Samuel Beckett

의미 없는 대화의 의미


그는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알고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끊임없이 말하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그 기다리는 무언가는 마치 로또 복권 당첨처럼 의미 없이 반복적으로 사고 또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속에서 그 어떤 의미도 얻지 못하지만 반복한다. 우리는 그렇게 반복하며 살다가 결국 도착하는 곳이 죽음임을 누구나 알지만 모른척하며 살아간다.

그는 그런 의미 없는 삶을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닐까? 의미가 없어도 살아야 하고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말해야 하며 말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닌 말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삶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무대 위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남자의 말속에는 공허함과 허무함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의미를 담지 않는 언어, 즉 의미의 부재가 계속 재현되고 있다. 이건 의미 없는 대화가 의미를 가지는 순간이다. 이 작품이 고전된 이유는 그 의미 없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의미 없음을 견디지 못해서 괴로워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의미 없는 상황을 그냥 생각 없이 읽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남자의 아무 말 대잔치를 보면서 그냥 실소를 터뜨릴 수 있는 것도 어쩌면 그들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 생각이 많으면 삶도 고달파진다. 그래서 내 삶도 고달픈 것일까...


“삶은 삶의 표현을 방해한다.”

- 페르난두 페소아 [이명의 탄생] 중에서 -


그래서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자들은 작가가 된다. 그건 어쩌면 아무 의미 없는 관계와 대화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홀로 생각하고 글을 쓴다. 삶은 그 속에서 끊임없이 말하고 기다리는 것이지만 그럼 삶을 제대로 볼 수 없고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베케트도 이 희곡을 통해 세상 속에 어울려 살지 못하는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풍자한 것이리라.


모두가 생각 없이 무대(삶) 위에 주인공으로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지만 관객이 되어 무대를 보면 그들은 정말 생각 없이 무의미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그 모습이 자신인 줄은 모두가 알지 못한다. 모두가 멍하게 보고 웃는다. 그건 사실 자신에게 던지는 실소인 것이다.


생각도 의미도 부재한 상태에 현존하고 있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당신에게 고도는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는가?’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in Library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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