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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Nov 28. 2019

고양이가 보는 인간세상

[고양이] 베르나르 베르베르

  요즘 들어 고양이가 좋아진다. 비굴하지 않으며 당당한 모습,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고 관심에 애걸하지도 않으며 초연한 모습이 닮고 싶어 진다. 과거 개처럼 살았기 때문일까? 나라에 충성하고 회사에 복종하고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칭찬에 목매여하며,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개와 닮아있다.

잠은 두꺼워서 고양이부터 ㅋㅋ

  동네 도서관에 새 책이 입고되었다. 빳빳한 종이의 새 책은 손에 잡히는 질감부터 독서의 유혹을 불러 일으킨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고양이>이다. 두 권에 걸친 장편소설이다. 최근 다시 소설을 쓰고 있던 나에게 또 다른 영감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누가 대여해 갈까봐 걱정되어 얼른 집어서 자리로 가져와 읽기 시작했다.


입장 바꿔 생각하는 책


  시작부터 흥미롭다. 고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소설의 구도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난 이런 류의 글과 영화를 좋아한다. 과거 보았던 영화 <별에서 온 얼간이>와 같이 나와 다른 세계의 존재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관점의 전환이 작가나 독자로 하여금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작가와 감독은 좀 더 깊은 생각과 넓은 사고가 필요하다.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다. 자신의 뇌가 아닌 다른 존재의 생각의 틀 안에서 표현해내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다.

[별에서 온 얼간이 PK]

  한 가지 더 주인공에게 필요한 조건은 순수함이다. 순수한 존재가 복잡한 인간 세상을 그들의 눈으로 단순하게 바라보면 많은 수많은 의문들이 생겨난다. 그 의문을 마주하고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주인공은 깨달음을 얻고 독자도 같이 그것을 공감해 나가는 구조이다.


  "입장 바꿔 생각한다"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정작 우리는 타인 혹은 다른 존재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드물다. 자신이 속해 있는 환경과 가진 직업 그리고 주변 인간관계 등의 총합의 평균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아집은 견고해지고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다른 존재 혹은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요즘같이 분열과 충돌이 심한 세상에선 더욱더 그러하다. 이 책은 그런 다른 관점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 개의 생각: 인간은 나를 먹여 주고 지켜 주고 사랑해 준다. 인간은 신이 분명하다.

- 고양이의 생각: 인간은 나를 먹여 주고 지켜 주고 사랑해 준다. 인간에게 나는 신이 분명하다.                                                                            

                                                                              - 작자 미상 -


  책의 도입부에 인간에 대한 개와 고양이의 생각이 흥미롭다. 반려동물의 양대 산맥인 개와 고양이는 인간과는 뗄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과거 개인적으로 개를 많이 키워봤고 선호했던 나지만 이 책을 계기로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지금은 상황이 안되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고양이를 분양해서 키워보고 싶다.


  책은 "바스테트"라는 암고양이의 시선에서 인간 세상을 바라본다. 순수한 존재인 그는 다른 종들과의 소통을 원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자신의 방식대로만 소통하는 인간과 닮아있다. 그녀? 그? 하여튼 녀석은 "피타고라스"라는 수고양이를 만나 인간 세상에 대한 지식을 배워나간다. 인간 세상은 테러의 위협 속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그 틈을 타서 쥐들이 창궐하여 변종 패스트를 퍼뜨려 인류를 위협한다. 인간과 고양이 그리고 다른 종의 동물들이 힘을 합쳐 이들과 맞선다. 인류의 종말을 얘기하는 책은 다른 종의 멸종을 가져왔던 인간은 스스로의 분열 속에서 결국 다른 종에 의해 종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주인을 찾아다니는 인간


"종교인들은 예술과 섹스 ,과학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 그들은 인간이 스스로를 책임지지 않아도 복종만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을 원하지" 


                                                                             -  책 속 인용문 -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 가족에서 시작된 소속감은 학교, 사회, 국가 그리고 종교로 향한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는 것 같지만 사실 복종에 익숙해져 있다. 인간은 소속되지 않은 자유를 두려워한다. 어디에도 소속되기 힘들어하는 영혼은 결국 종교를 찾는다. 왜일까? 종교는 평등한 자유를 주기 때문일까?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경전 속의 말이 상처 받은 영혼에게 믿음으로 다가온다. 스스로를 결국 신이라는 존재에 종속시킨다. 인간이 만든 집단이나 조직보다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가 더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생각들이 이를 더욱 부추긴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다. 기도하고 회개하는 삶으로 신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차라리 복잡한 인간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려 몸부림 치는 것보다 편해 보인다. 인간은 결국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없다.


어리석은 인간들


"어리석은 인간들이 똑똑한 인간들을 죽이고 있네?"

                                                    - 책 속 인용문-


   인간은 궁지에 몰리면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성향으로 인해 인류는 수많은 고통을 겪어왔다. 과거 인간의 악한 본성과 욕망을 선동하는 특정한 몇몇 인간들의 야욕 속에 무지한 인간들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 대약진 운동으로 기근이 덮쳤던 중국에 독재자(마오쩌둥)는 그 과오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옮겨 지식인들을 무차별 학살한다. 무지한 민중은 독재자의 말을 신격화하고 사리분별없는 행동(문화 대혁명)으로 또 한 번의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남겼다. 세계2차 대전의 서막을 올린 독일의 히틀러, 그는 독일인들의 마음 속의 분노 자극하고 그 분노를 타인(유대인)에게 향하게 만들었다. 그 분노는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민중은 깨어있어야 한다. 독재자가 원하는 것은 민중의 무지이다. 현재 중국이 서방세계와의 정보와 콘텐츠 및 지식들을 차단하는 것은 공산주의체제의 붕괴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건 늦출 순 있어도 막을 순 없는 문제이다. 강력한 중앙 권력으로 그 많은 민중과 민족을 통제하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많이 깨어있다. 자유민주주의를 맛본 이들은 그 속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사실 많은 중국인들이 세계 각지에 살고 있다. 같은 언어를 쓰고 생활양식도 같지만 가치관과 생각은 많이 다르다. 여기 호주에 있는 중국계 화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현재의 홍콩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다. 중국 밖에서 중국 국적(화교)이 아닌 혹은 오래 기간 타국 생활에 익숙해진 그들에게는 중국은 그다지 매력 있는 고국으로 여겨지기 힘들어 보인다. 민족의 향수와 고국에 대한 연민은 있을지언정 생활 터전으로 삼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깨어있는 자는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는다.


욕망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


  책 속에 주인공 '파스테트' 암고양이는' 피타고라스' 수고양이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모든 수고양이들이 그녀가 들이대는 엉덩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다른 수고양이들과 달리 그녀에게 성적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사실 그는 스스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그의 대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엄청난 쾌락을 느껴 너에게 구속될까 봐 두려운 거야!"

                                     - 책 속 인용문 -


  그는 모든 고통은 욕구로부터 생성된다고 얘기한다. 남녀 간의 욕정도 마찬가지이다. 한 번 느낀 쾌락은 다시금 찾게 되고 그것이 자신을 구속시킨다. 상대방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고 타인을 소유할 수 없음에 번뇌한다.


  모든 욕망은 고통의 시작이다. 소유욕, 물질욕, 성욕, 식욕 등 욕망은 인간을 구속시키고 커져만 가는 욕망을 채우는 과정 속에서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이 인간의 욕망이 자본주의를 성장시키는 원천이기도 하다. 인간은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그것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따라 고통을 줄일 수는 있다.


사랑은 전염병이다.


"사랑은 전염병처럼 퍼지는 거야. 남들이 할수록 더 하고 싶어 지지"

                                          - 책 속 인용문-


  사랑이 전염되지 않는 건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없다는 반증이다. 사랑도 그렇지만 증오도 전염된다.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적대도 전염된다. 사랑을 많이 해야 사랑이 전염될 텐데... 아쉽지만 요즘은 사랑을 많이 하지 않아 보인다.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싱글 라이프를 선호한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있어야 사랑을 줄 수 있고 받을 수도 있다. 사랑은 받아봐야 또 다른 이에게 나눠줄 수 있다. 그렇게 사랑이 퍼져나가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지 않는데 어찌 사랑이 퍼질 수 있겠는가?


  호주에서 셰어하우스를 이곳저곳 전전하며 다녔다. 피해받고 싶지도 주고 싶지도 않은 개인주의는 여기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전 세계적인 추세인 듯...) 같은 집에 살아도 서로 말 섞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화와 아이컨텍이 없는 관계에선 아무런 감정도 생길 수 없다. 이런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의심과 적대감이 생겨날 가능성이 더 크다. 오고 가는 관심과 대화 속에서만 사랑과 믿음이 싹을 틔운다.


  과거 대가족, 이웃사촌과 어울려 살던 시절에는 피곤하긴 했어도 서로를 믿을 수 있었다. 대화와 교류 속에서 친척과 이웃의 사정을 웬만큼 다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옆집에 누가 죽어도 알지 못하는 시대 속에서 사랑이 퍼져나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사랑은 박멸되고 외로움과 미움이 전염되고 있다.


혼자 있는 것과 같은 사랑?


"나한테 사랑은, 혼자 있을 때만큼 함께 있을 때도 좋은 거야."

                                       - 책 속 인용문-


이해하기 힘든 말이지만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은 하고 싶은데 혼자 있고 싶은 기분이랄까?


누구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싫어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이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람과 함께 온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만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다. 그 뒤에 많을 것들이 종합 선물세트로 따라오게 되어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싫고 사랑만 원하는 혼자 있는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사랑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사랑만 쏙 빼내서 가져올 수 없다. 사랑을 원하면 사람도 받아들여야 한다.

  

반려동물과 AI 로봇이 미래의 그 사랑을 대체할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될 것 같지만 모두가 은밀하게 원하는 것을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가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가지 말아야 할 곳까지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력이 인간을 고통을 벗어나게 한다.


"현실이 견딜 수 없게 인간을 짓누를 때 그것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게 바로 상상력이야."

                                        -책 속 인용문 -


  어린시절 유난히도 하늘을 날아오르는 상상을 많이 했다. 눈을 감고 두팔을 벌려 내리막 길을 열심히 달려내려가다 보면 몸이 공중으로 부상하고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내가 좋아하는 같은 반 여자아이의 방 창문으로 날아가 그녀를 훔쳐보기도 하고 끝없는 바다 위를 날아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걸 확인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서 그 상상의 세계는 각박한 현실 세계에 밀려 조금씩 사라지고 자취를 감춰가고 있었다.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두 팔을 벌리고 비탈진 내리막을 달려 내려가다 넘어져 무릅팍이 다까지고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린시절을 회상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건 그런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소설을 쓰는 기분이 그러할까? 과거에는 그런 기분을 알지 못했다. 소설을 쓸 때 세상과 분리된 느낌을 받는다. 내가 만든 상상은 또 다른 현실을 만들고 내가 그 속에 들어가 있다. 그러면 그 동안 내 몸이 숨 쉬고 있는 현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떻게 하면 상상 속에서 내가 느낀 것들을 글로 생생하게 표현할까를 고민한다. 책을 읽는 이유 중 한 가지는 그런 표현의 방법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이 위대해질 수 있는 건 분명 상상력 때문이다. 매일 일상 속에서 힘들어하는 현대인들은 현실에서 벗어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고통받는 것이 분명하다.


 상상의 세계에 오랜 시간을 머무는 자(작가, 소설가, 예술가 등)들은 그들보다는 덜 불행해 보인다. 물질적인 풍요는 없어도 정신적으로는 훨씬 풍요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현실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의 가치가 커질 것이다? 기계와 AI로 대체되는 시대의 변화 속에 인간들의 활동 영역은 좁혀진다. 소외된 인간들은 판타지와 이야기 속(콘텐츠)으로 빠져든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상상의 세계 속을 허우적거리며 소비하고 있다. 당신은 상상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남의 상상을 소비할 것인가?

고양이

   책은 인간 세상사의 많은 얘기들을 고양이의 대화 속에 담아내고 있다. 내가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세계는 이상할 법도 하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인간을 종말로 치닫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런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는 방법을 자신에게서 찾고 있는 듯하다. 인류가 발전해온 것은 결국 기록했기 때문이다. 책이라는 발명품은 인간을 그나마 그 실수의 반복과 후퇴를 방지해 주었을지 모른다. 저자의 상상력은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소설을 쓰는 나에게 또 다른 영감을 가져다준 책이다.


나는 결국 세상에서 사라지겠지만 내가 기록한 생각들은 시간을 견디고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Porters pass in Blue Mount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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