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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Dec 16. 2019

종교도 변한다?!

동성애와 기독교


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위기 18:22)


  세계의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 성경(Holy Bible)에는 동성애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구약과 신약성경의 여러곳에서 동성애의 죄악을 언급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동성애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회는 그들을 성소수자(LGBT :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라고 명칭한다. 현재 그들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분야와 요직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과거 음지에서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왔던 그들이 이제는 양지로 나와서 자신들의 인권과 행복추구권을 주장하고 있다.

좌 - 동성애 합법 국가 <출처: www.statista.com>,  남반구 최대 성소수자 축재 시드니의  '마디그라'

  전세계 성인의 2.7%가 동성애자다. 전 세계 28개국에서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시켰다.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최근(19년) 아시아 최초로 대만이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 시켰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20번째로 호주가 2017년 12월에 동성애자 결혼을 합법화했다.


  국교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독교 국가(약 50% - 로마가톨릭 23%, 성공회 13%, 개신교 16%)라고 자처하는 호주에서도 성경의 내용에 반하는 동성애를 합법화시켰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종교도 변한다!?


  일반적으로 종교 속의 교리는 불변의 진리를 다루고 있다고 믿는다. 사상과 이념 그리고 법과 윤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해가기 마련이다. 그 시대상이 반영되지 않은 이념이나 법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과거 공산주의가 동유럽과 구소련, 중국등 많은 나라로 퍼져나갔지만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소유욕)을 무시했기 때문에 분열과 쇠퇴(구소련의 붕괴)를 겪고 지금은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의구심이 팽배해져 있다. 아마도 앞으로 중국의 흥망(興亡) 이 공산주의의 존속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호주연합교단 Uniting Church  <출처: www.sbs.com.au>

   하지만 종교는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믿음과 가치가 담겨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거슬러 인간들의 정신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런 종교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일까? 호주의 대표 기독교 교단인 <Uniting Church>실질적으로 이런 동성애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었다. 물론 모든 신도들의 뜻이 반영된 것은 아닐것이며 교회 상위 지도층들의 판단일 가능성이 크다. 성경에서 죄악으로 명기하는 동성애를 인정한다는 것은 경전에서 벗어난 신앙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시대 변화의 조류는 종교와 신앙의 가치도 변화시키는 것인가? 이를 두고 기독교 사회에 적지않은 분쟁이 일고 있다. 결혼의 서약과 증명을 목사로 부터 받는 호주의 기독교식 결혼문화 속에서 동성의 결혼 서약을 해줘야 하는 목사는 그들의 신앙을 향한 신념의 변화를 강요당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따르던 성경에서 동성애의 죄악 부분은 따로 지워야하는 시험에 들게 되었다.

이스라엘 폴라우

"지옥이 기다린다!"


   얼마전 호주에서 유명한 럭비 선수(이스라엘 폴라우)가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이 전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그는 동성애를 비판하는 발언으로 호주럭비협회(RA)에서 퇴출 당했다. 그 사건을 두고 종교적 탄압이다부터 동성애자들의 인권탄압이다 등등 말들이 많다. 그는 자신의 종교적 자유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소송준비금을 모금하며 국가(공정근로위원회)를 대상으로 소송을 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시킨 상황에서 그의 승소는 쉽지 않아 보인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자본주의 경제 논리가 종교에 까지 적용되는 것일까? 불변하던 종교의 교리가 인간의 존엄과 인권 앞에 변화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종교도 비지니스?


  세계에는 여러가지 종교가 존재한다. 최근 기독교는 많은 곤경에 처해있다. 한국 뿐만 아니라 호주의 기독교인들도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그만큼 기독교가 사람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호주는 점차 이슬람 국가로 변해가고 있다.


 “자녀를 많이 나아서 이슬람을 번성케 하라”

                                                       -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 -

  

 다자녀 가구의 상당수가 이슬람계 이민자들이다. 이슬람교는 다산, 결혼 ,개종을 무기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 종교이다. 그들은 독신주의와 피임을 금기시 한다. (물론 동성애는 죄악이다. 돌로 맞아 죽을지도...) 내가 살고 있는 여기 시드니에도 이슬람계 이민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유모차와 양 손에 이끌고도 모자라는 아이들과 공원과 거리를 활보한다. 한 가정에 적어도 3명이상의 아이들을 가지고 있다. 빵빵한 정부 육아 보조금을 받아 살아갈 수 있는 호주는 그들에게는 더할나위없는 이슬람 포교(번식?)활동의 성지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우려한 호주 정부가 이민 정책에 족쇄를 잠근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슬람교

   얼마전 시드니에서 4시간 쯤 떨어진 교외로 며칠간 일을 간적이 있었다. 나와 동행을 하게된 한 무슬림 동료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와서 난민 신분으로 호주 영주권자가 되었다. 오랜시간 그와 동행하며 친해졌다. 그는 일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보자기와 나침반 같은 것을 꺼내더니 방향을 잡고는 바닥에 양탄자같은 보자기를 깔고 그 위에 맨발로 서서 절을 한다. 입으로는 뭔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그는 하루에 5번 알라신을 향해 예배(살라트)를 드린다. 바쁜 일을 하다가도 시간만 되면 만사를 제쳐두고 예배를 드리는 바람에 같이 하던 일이 멈추고 예배가 끝나기를 옆에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그는 3명의 자녀가 있고 또 한명의 아이가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고 한다. 최근 호주 정부에서 나오는 양육보조금이 예전같지 않다며 주말에도 우버(Uber)일까지 병행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4명의 아이에도 불구하고 주체할 수 없는 정력 때문에 아내 몰래 섹스 파트너를 찾는다며 웃픈(웃기고 슬픈) 얘기들을 늘어 놓는다. 그의 신앙심과 종족번식의 욕구는 별개인듯 보인다. (이슬람교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하한다, 본인이 능력만 있다면) 이슬람 문화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무슬림 예배 (살라트)

  기독교는 이것을 우려한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호주의 기독교가 전도(포교)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동성애자들을 기독교로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종교라는 것은 신도가 없으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줄어드는 기독교인들과 달리 갈수록 늘어나는 무슬림들로 인해 이슬람 국가로 변하는 건 시간 문제처럼 보인다.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순 없는 것이다. 교리를 수정하더라도 신도 확보를 통한 기독교의 존속(存續)이 우선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모두 후세에 전달된 것도 아니다.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많은 기록들이 존재한다. 뭐 나중에는 동성애 부분만 따로 오려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동성애자의 기독교인 비율이 높아진다면 불가피한 조치가 될지 모른다. 나의 존재(정체성)를 부정하는 종교를 내가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종교도 비지니스가 되어간다. 소비자(신도)가 없으면 망하는 것이다. 그냥 역사 속으로 사라질 뿐이다.


'이기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자가 승리하는 법이다'


  타 종교를 부인하는 일신교인 기독교가 이 상황을 방관할리 없다. 대중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타종교가 세력을 확장하는 국면에서 살아남는 길은 혁신과 변화이다. 제 살 깍이라도 해서 과거의 기독교의 영광을 되찾고 존속해 나가야한다.


인권(人權)과 신권(神權)


  과거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에서는 인권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인권보다는 왕권, 그 위에 신권이 존재했다. 그래서 과거 교황은 왕의 파워를 능가하는 전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국민(國民)을 초월한 전 인류의 신앙심을 등에 업은 신권이 세상을 지배했다.


  이제 인권이 그 신권을 초월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그 인권의 존엄을 통해 탄생했고 계속 발전했다.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산업과 과학문명을 급속도로 발전시켰다. 대중의 지지와 소비를 기반으로 발전하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특성상 대중의 인권보장은 그들의 지지율을 보장한다. 동성애자 비율이 증가하고 그들의 존재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의 은혜를 등에 없는 것 보다 인간의 지지를 등에 업는 것이 나의 통장잔고(부)와 집권기간(권력)의 증식과 연장을 보장한다.  


  어느 종교에도 속하기 힘든 성소수자를 기독교가 받아준다면 전세계 성인의 2.7%(2억명)를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비지니스적인 관점에선 상당히 매력적인 시장이 아닐 수 없다.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경쟁이 없는 시장이다. 선점하면 그만이다. 기독교의 변화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과연 신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인간들이 마음대로 바꿔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신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보였던 인간은 결국 인간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걸까? 머지 않아 한국에서도 동성애 합법화 관련 논의가 다시 붉어질 것이다. 우리는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 피할 수만은 없는 문제이다.


   만일 이 세상을 신이 창조했다면 우리는 분노한 신에 의해 종말을 맞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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