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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an 25. 2020

눈물 흘리는 삶이란

슬픔과 친숙해진다는 것

누군가의 품에 안겨 울어본 적 있는가?


   난 아직까지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일생에 한 번쯤은 누군가를 품에 안고 한없이 울어보고 싶다. 누군가에 품에 안겨 운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쌓여왔던 설움과 아픔과 상처들이 한꺼번에 녹아내리고 있는 순간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에겐 생각만 해도 닭살 돋고 엄두가 나질 않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 속 혹은 애니메이션 속의 슬픈 장면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은 눈물을 잊어가고 있는 건지 모른다.


"남자는 일생에 세 번만 울어야 한다"


   어린 시절 자주 들었던 말이다. 첫 번째는 태어났을 때, 둘째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셋째는 나라를 잃었을 때라고 한다. 첫 번째는 기억도 나지 않고 두 번째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세 번째는 내 생애 일어날지 알 수도 없는 일이다. 남자로 태어나 눈물과 마주할 일은 묘연해 보인다. 눈물이란 함부로 보여서는 안 되는 수치고 부끄러움으로 여기는 사회는 남자에게 아픔과 슬픔을 표현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남자도 여자와 같은 인간이지만 눈물이라는 건 왜 여자에게만 관대한 것일까?


   얼마 전 교회 예배당에서 찬양 중에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뜨거운 무언가를 느꼈다. 참으려는 생각도 하기 전에 흘러내린 눈물에 나 스스로도 놀랐다. 더 놀라운 건 흘러내린 눈물이 내 안에 슬픔을 가져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전에도 찬양 중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몇 번 했지만 애써 참아내었다. 주변에 있는 다른 교인들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몇십 년간 참아왔던 업적(눈물을 참아온 노력)에 흠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일까? 난 예배당에서 아는 지인과 같이 앉는 것을 싫어한다. 시선과 의식에서 벗어나 오로지 순간의 나의 감정과 느낌에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는 지인이 친근하게 다가와 옆에 앉는 것을 막기도 난처하다. 그럴 땐 옆을 의식한 상태로 찬양과 예배를 드리게 된다. 당연히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눈물은 시선을 피해 숨어버린다. 울지 못하는 남자는 슬픔을 안에 쌓아두고 살아간다.


  눈물 흘리면 달라진다.


  눈물 흘리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건강해 보인다. 주변에서 눈물이 많은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도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예전에는 예배당에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들은 예배가 끝나고 붉어진 눈시울을 훔치고 나면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더욱 밝아지고 환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신기하고 이상했다. 과거 어린 시절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 혹은 털 난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말을 맹신하던 시절 울다 웃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나에게 그들은 이상한 존재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마치 비바람이 지나고 햇살과 함께 떠오른 무지개를 연상케 했다. 눈물은 분명 우리의 깊은 내면의 무언가를 건드리고 가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것을 자주 건드려 주어야 한다. 내면의 슬픈 아이를 다독이며 "잘 있지?"라고 물어보고 그 속에서 같이 울어주고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내면의 아이와의 대화

슬픔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슬퍼지지 않는다.


   슬픔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를 꽉 깨물고 슬픔을 악으로 버텨내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 있다. 슬픔이 자신을 엄습하는 것을 용납 못하는 군인 같은 사람들이다. 군대 훈련병 시절 고된 훈련으로 악에 바칠 대로 바친 순간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땀과 흙탕물에 범벅이 되어 허공에 팔다리를 휘저으며 모든 신경이 고통만을 느낄 때 악과 분노로 버티다가 한 순간 슬픔으로 변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그 단어를 외치는 순간 온몸에 퍼져있던 고통과 분노는 슬픔으로 변해버리고 뜨거운 눈물이 왈칵하고 쏟아진다.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슬픔은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치유제와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그 치유제가 부끄럽다며 멀리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더 아파지는 것은 아닐까?


 슬픔이 다가오면 나를 느낀다.


   나는 슬픔과 친숙한 사람이다. 아니 슬픔과 친숙한 사람이 되었다. 과거 오랜 시간 슬픔이라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살았다. 슬픔이 다가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현실의 부당함과 억울함 앞에서 분노와 악으로 버텨왔던 나였다. 그것이 나를 더욱 강하게 하는 것이라 믿어왔다. 일의 효율과 성과를 내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악으로 이겨내면 다음엔 더 큰 악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결국 내 마음속은 분노와 악으로 가득 채워져 가고 있었다. 성과가 올라가면 동시에 분노 게이지도 치솟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래서 고된 운동으로 그 쌓인 악들을 풀어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술과 담배 혹은 또 다른 중독적인 것들로 풀어냈다면 지금 온전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슬픔이 찾아오면 나를 표현한다.


   슬픔을 받아들이는 순간 변화가 생겼다. 나를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슬픈 선율에 정신을 집중하고 눈을 감으면 내 안 깊숙이 느껴지는 무언가가 내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나는 그것들을 적어 내려갔다. 글을 쓰는 순간이 내가 나의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나를 표현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 오랜 기간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서툰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과 잦은 다툼 그리고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상대방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얘기했어야 한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과 묵언 수행을 하는 스님들이 이해가 되는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말보단 글이 낫다.


  가끔씩 카페에 앉아 글을 쓸 때, 귀 속에 울려 퍼지는 슬픈 음악이 슬픈 기억과 상상들을 불러내어 콤비네이션을 이룰 때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 기분들을 고스란히 글 속에 옮겨 담아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


내 슬픔을 받아들이면 타인의 슬픔도 이해된다.


   한국사회는 남의 아픔을 이용하고 후벼 파는 이들이 많다. 서로의 약점을 찾아 공격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빠르고 철저하게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그런자들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 아픔과 슬픔을 숨기며 살아간다. 


   얼마 전 예배당에서 들은 한 소녀의 간(干證:Testimony) 잊히질 않는다. 가정에서의 부모와의 불화로 인해 받은 상처가 마음 깊이 새겨져 그것을 떨쳐내기가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매주 예배당에 나와했을 기도는 아마 용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슬픔을 나누는 것은 실로 큰 용기가 필요하다. 간증이라는 것이 사실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받아들이고 표현함으로써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덜어준 나의 슬픔은 다음엔 내가 안아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이해하는 것이다. 나의 슬픔을 외면하고 부정하면서 타인의 슬픔을 이해한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을 위해 울어야 남을 위해 울어줄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슬픔과 함께 한 편의 글을 남겨본다.


슬픈 선율과 함께 자신의 슬픔을 온전히 느껴보세요

(P.S. 제가 자주 즐겨 듣는 슬픔 모드 음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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