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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an 29. 2020

욕망이 죽음을 앞당긴다

사랑은 밖으로 향했어야 한다

"내가 창조한 것이지만 인간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인간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렇게 하겠다.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되는구나."

                                                                                          - [창세기 6:7] -


인간들이 쓰러지고 있다. 질병과 재앙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건 비단 인간뿐만이 아니다. 동식물 또한 이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바이러스로 죽어간다.


과거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대부분을 몰살시킨 건 칼도 총도 아닌 균이었다. 인간은 새로운 바이러스에 취약하다. 유럽에서 옮겨온 바이러스(천연두, 흑사병 등)는 때 묻지 않은 인류인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유럽인들의 총칼에 죽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묻혀온 바이러스에 스스로 자멸했다. 새로운 바이러스는 그 만큼 무서운 것이다. 눈에 보이는 무기보다 보이지 않는 무기가 더 위험하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Corona virus)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조금 전 나의 핸드폰에서 울리는 여러 SNS 메신저에는 호주 시드니의 곳곳에서 환자가 발생하고 있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번화가에 쓰러진 여성의 사진이 실시간으로 여러 단톡 방에 퍼지고 있다. 공포감은 질병이 퍼지는 속도보다 더 빨라 보인다. 간밤에 전 세계의 증시가 신종 바이러스의 공포로 폭락하고 그 속에서도 마스크와 백신 관련 주들은 폭등했다. 유튜브와 각종 SNS에는 이 시기를 틈타 각종 관련 보도와 영상들을 퍼 나르기 바쁘다. 자극적이고 무서운 뉴스와 영상들의 조회수는 순식간에 백만을 훌쩍 넘어간다. 전해오는 뉴스와 소식들로 봐선 상황이 그리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과거 사스(SAS) 때처럼 인간들은 새로운 질병 앞에 속수무책이고 우왕좌왕이다.

Coronavirus

왜 이런 바이러스들이 생겨나는 것일까?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세상 속에 고통받는 동식물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동물이 가축이 되면서 고통받는 환경이 그들의 몸속에 새로운 병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불결하고 협소한 공간에서 인공 사료만 먹으며 알과 우유, 고기 생산만을 위해 숨 쉬는 동물은 표현하지 못할 뿐이지 상상을 초월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인간도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으로 고생할진대 동물들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는 인간의 착각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류독감, 돼지열병, 구제역 등 수많은 전염성 바이러스들은 대부분 가축과 동물로부터 왔다. 그리고 그것들이 여러 숙주들을 거치면서 변이하고 슈퍼 바이러스로 모습을 바꾸며 인간에게도 전염되는 것이다.


이건 식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크게 와 닿지 않을 뿐이다. 부가가치세나 주류세처럼 간접적으로 떼어가는 돈이 피부로 와 닿지 않는 것처럼 모든 식품에 첨가된 유전자 변형 식물 재료들은 서서히 인간의 몸을 바꿔간다. 서서히 데워지는 물 안의 개구리는 자신이 익어가는 것을 모른 체 죽기 마련이다.

  

인간은 자본주의 기업농을 통해 식물의 유전자를 수도 없이 바꿔가며 새로운 종들을 탄생시켰다. 마치 신이 된 것처럼 창조주의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현재의 밀은 과거 원조 밀의 10배가 넘는 생산량을 자랑한다. 밀가루는 과학의 힘을 빌어 그 동안 맛과 식감(쫀득함)이 개선되었만 그 속에 글루텐 함량 또한 40배가 넘게 증가하였다. (출처: 빵을 끊어라 - 서평 참조) 밀가루(Wheat flour)는 대부분의 가공식품 속에 들어가 있다. 현대인이 생의 마지막을 각종 암세포들과 함께 맞이하는 건 이것(식습관)과 무관하지 않다. 밀이 인간의 노력으로 고농도 글루텐으로 무장하는 동안 우리의 내장기관의 소화흡수 능력의 진화 속도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우리가 밀을 지배한 것 같았지만 사실 밀에 의해 우리가 지배당한 것이다. 


자연 재앙으로 죽어간다.


여기 호주라는 드넓은 땅은 얼마 전까지 불바다로 변해 한국의 면적보다도 넓은 1,100만 헥타르가 잿더미로 변했다. 사상 최악의 스모그가 호주의 주요 대도시를 뒤덮었고 그 연기와 미세먼지가 호주의 강렬한 태양빛과 섞여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이런 하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기세가 어찌나 강했던지 2,000km 넘게 떨어진 뉴질랜드의 하늘까지 뒤덮었다. 1억 마리가 넘는 야생 동물들이 생명을 잃었고 또 그들의 보금자리도 또한 사라졌다. 머지않아 호주의 상징인 코알라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안 그래도 국토 대부분이 사막인 호주는 더 빠른 속도로 사막화되어간다.

호주 산불

그 옛날 사피엔스가 호주 땅을 밟은 이후 수렵과 농경을 위해 수많은 숲을 불태웠다.(출처: 사피엔스, 유발하라리 저) 이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남은 숲마저 다 타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호주 정부는 민생안정과 경제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광산개발을 멈추지 않는다. 더워진 지구를 더 덥힐 모양새다. 산불도 모자라 호주 곳곳에는 모래폭풍과 야구공만 한 우박들이 떨어지고 이전에 없던 이상 기후 현상들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곳은 더 이상 청정지역이 아니다. 인간의 손이 닿은 곳은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가는 듯하다. 지구의 최대의 적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그런 기후 변화는 비단 호주뿐만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이상 징후들이 발생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런 현상들을 경고하고 있지만 자본주의라는 열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전 세계의 평화 수호자를 자칭하던 미국은 트럼프의 집권 후 자국의 경제 부흥(셰일가스 개발)을 위해 파리 기후협약을 탈퇴했다. 돈 버는 것이 우선이다.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은 줄어들기 힘들어 보인다. 계속 더워지는 지구는 언젠가는 폭발하지 않을까?  인간의 욕심이 지구를 열 받게 하고 있다.


인간은 서로 죽인다.


부가 쌓이면 더 큰 부를 얻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부를 더 이상 쌓아 올리기 힘들어지면 남이 쌓아놓은 부를 뺏어서 자신의 부를 채워가는 것이 인간이다. 전쟁의 역사는 타인의 재산을 탐내면서 생겨난 것이다. 역사적으로 경제의 불황 뒤에는 큰 전쟁들이 있었다.


현재 세계 경제는 물질의 풍요가 극에 달했고 저성장의 늪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제 세계 경제의 두 거인(미국과 중국)이 으르렁 대기 시작한다. 포화상태에 이른 지구의 부를 이제 두 거대한 나라가 뺏고 뺏기는 게임이 시작된 듯 보인다. 자국의 부가 빠져나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거인들이 아니다. 과거 소련과 미국이 대치하던 냉전시대 못지않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전운이 감돌지만 함부로 손을 쓸 수도 없다. 이제 벌어질 전면전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두 나라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당할 수도 없기에 명분을 앞세운 경제 압박과 심리전이 극에 치닿는다. 미국은 과거 구소련이 붕괴된 것처럼 중국이 다시 춘추전국시대로 되돌아가길 바라는 듯 보인다. 대만과 홍콩 뒤에서 자본민주주의의 수호라는 명분 아래 그들을 지지하고 중국의 인권탄압을 지탄하며 신장위구르 지역과 티베트의 독립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미중 무역 전쟁

2000년대 초반까지 급격한 경제 성장 시기 때는 세계는 달리는 열차에 열심히 석탄을 들이붓기에 정신이 없었고 각국은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하는 경제 동맹의 관계였다. 예를 들어 중국이 석탄을 만들면 한국과 일본이 열차를 만들고 미국이 열차의 시스템을 만드는 그런 구조였다. 하지만 물질 경제 규모는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이제 무형의 콘텐츠와 IT 산업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다들 실물 경제가 아닌 가상 경제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무언가를 생산하지만 손에 잡히지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이다.


결국 시스템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은 나라들은 미국의 정치, 경제적 속국이 되어간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구글이 세상을 지배하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 한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그런 것에 누구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거대 IT기업들이 만들어 놓은 생태계 속에서 또 다른 수많은 다국적의 기업들이 살아간다. 하지만 중국(시진핑)은 그 밑에 있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미국도 패권을 넘겨줄 마음이 없다. 하나의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순 없는 법이다. 미국(트럼프)이 자유무역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자국우선주의 노선을 바뀌면서 세계는 집단(국가) 이기주의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강대국의 이기주의 욕심은 약소국의 희생으로 채워지는 법이다. 한국 또한 그런 강대국 사이의 희생양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최근 미국이 이란을 때리는 이유 또한 자국의 셰일가스 가격 인상과 넘쳐나는 지하자원 밀어내기의 일환이다. 대만(F-16 전투기 66대 판매, 9조 원)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은 미국의 군수산업의 발전을 위한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이다. 미국으로 돈이 유입되기 위한 것이라면 타국 국민의 생명과 고통은 상관없다.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고 했건만 강대국의 생명만 존귀해 보인다. 서로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죽이는 것을 사고팔면서 어떻게 죽이고 뺏어올지 고민한다. 인간의 탈을 썼지만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랑은 밖으로 향했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이용해 왔다. 그것이 인간의 역사이다. 이런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의 균형이 무너질 때 항상 전쟁과 혁명이 일어났다. 권력에 맞서는 자와 패권에 도전하는 자들이 있는 한 이런 역사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4대 성인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가족, 단체, 국가)의 이익만을 쫓아가는 인간의 사랑은 안으로만 향했다. 그 이익은 타인과 타 집단의 희생으로부터 가져왔다. 과거 성인들(4대 성인 : 예수, 석가모니, 공자 , 소크라테스)의 사랑은 항상 밖으로 향했다. 그들은 자신을 아낌없이 내놓으며 신분과 계급에 관계없이 만인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특히 가진 자보다는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더 많은 가르침과 사랑을 베풀었다. 밖으로 향한 사랑은 더욱 밖으로 퍼져나갔고 그들의 가르침은 세상 속의 진리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해진 현재의 모습은 과거 성인들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인간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다. 돈과 권력에 취해 인간 위에 올라서고 신이 되길 바라는 듯 보인다. 인간은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와 통제할 수 없는 자연재앙 그리고 서로의 욕심으로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는 미약한 존재일 뿐이다.


인간의 멈출 수 없는 욕망이 죽음을 앞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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