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P 94 (개정판)
"와~ 저기 기린이다."
"어디 어디?"
수상 동물을 구경했으니 이제 육상 동물을 구경할 차례이다. 우리는 센토사 섬의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섬을 빠져 나와 나이트 사파리로 왔다. 아쿠아리움 못지않게 유명하다는 소문에 하루 일정을 풀로 꽉 채워 움직인다. 내일이면 떠나야 하기에 남겨진 시간이 소중하다. 알차게 보내야 후회가 없다.
나와 현지씨,병호씨 그리고 센토사섬에서 만난 장주임까지 이렇게 넷이서 사파리를 찾았다. 나머지 해외 영업부의 중년 간부들은 피곤했는지 센토사 섬에서 바로 숙소로 향했다. 그들은 숙소로 돌아가 해외영업부 단합 회식을 할 모양이다. 병호씨는 우리들의 가이드를 해준다는 명분으로 그들의 회식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你怎么在韩国航空公司工作的呀?”(근데 너 왜 한국항공사에 들어갔어?)
"这个嘛… 都怪全部长你嘛,不对不对,喜宅哥哥你。哈哈“(그게... 모두 전부장님 때문이죠, 아니아니 희택 오빠 큭큭)
“什么意思?”(무슨 말이야?)
“为了和你见面就这么过来的嘛 哈哈哈” (오빠와의 만남을 위해 이렇게 온 거죠. 하하하)
“하하 不至于吧?”(하하 설마 그 정도까진 아니겠지 )
“你不信?”(못 믿겠어요?)
장주임은 입이 삐죽이 튀어나온 표정으로 나를 째려본다. 그 모습 속에서 과거 양주에서의 소녀 같던 순수한 모습이 아직 그녀에게 남아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雪艺, 你有没有男朋友?”(설예씨, 남자친구 있어요?)
“我还没有呢” (아직 없어요)
“不会吧, 你这么漂亮还没男朋友太不像话了吧?那你喜欢什么样的男生?”(설마요, 이렇게 이쁘신데 말도 안돼, 그럼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해요?)
병호씨는 사실 우리들 가이드 역할보다는 장주임의 신상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듯 보인다. 장주임은 그의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운지 불편한 기색을 그가 아닌 나에게 드러낸다.
장주임은 이전부터 한국에 대한 관심이 있긴 했지만 내가 양주에 발령 난 후부터 한국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고 나중에 꼭 한국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항공사에 일하는 덕에 한 달에 1/3정도는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나머지는 1/3은 상해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해외 각국에서 보낸다고 한다. 장주임은 영어영문학 전공으로 기본적인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한국어만 잘하면 항공사에 취직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한국과 중국의 무역 교역량이 빠르게 증대되고 있었고 두 나라를 오가는 항공기의 취항 횟수와 도시가 늘어나고 있었다. 이에 맞춰 한국 항공사들은 영어에 취약한 중국 승객들을 위한 중국인 승무원들을 대거 채용하기 시작했다. 중국어와 영어 거기에 한국어까지 능통한 중국인이라면 항공사에겐 매력 있는 인력이다. 거기에 외모까지 출중하다면 한국 항공사의 구미에도 딱 맞아 보였다.
“嗯… 原来如此“(그랬군)
“可我不想继续工作了,我觉得我不适合韩国公司” (근데 계속 일하고 싶진 않아요, 난 한국 회사랑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为什么?”(왜?)
그녀의 독립적이고 자유 분방한 태도는 보수적이고 경직된 한국 항공사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아 보인다. 그녀가 이렇게 혼자 다니는 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녀는 한국의 기업 내 문화를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눈치다.
위계서열과 상하 존중이 아닌 상명하복의 문화가 지배적인 곳에서 그녀의 자유분방함은 환영 받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인다. 한류의 열풍으로 한국 기업에 대한 적지 않는 기대감을 안고 입사했지만 컸던 기대만큼 실망과 후회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근데 동물들이 다 자는 거 아녜요?"
"그러게 잘 안 보이네"
"都躲在哪儿了?” (다들 어디 숨었지?)
나이트 사파리에 대한 우리들의 기대도 컸던 모양이다. 사파리에 오기 전 보았던 관광 책자 속 사진들과 정보들과는 달리 지나가는 사파리 차량 주위로 접근하는 동물들이 거의 없다. 멀리 야간 불빛에 보이는 몇몇 동물들의 풀 뜯는 실루엣이 가끔씩 보일 뿐 긴장과 흥분을 가져다 줄 만한 동물들의 접근은 없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동물원에서 우리에 갇혀있는 동물을 보는 편이 더 나을 뻔 했다. 동물들도 사람들 보는 것이 지겨운 모양이다. 우리들은 그들을 처음 보지만 그들은 매일 보는 관람차 안의 사람들이 지겨울 만하다.
"아~ 돈 아까운데..."
"我们去俱乐部吧!"(우리 클럽가요!)
"俱乐部?”(클럽?)
장주임이 내뱉은 말에 다들 놀라면서도 적잖이 반기는 모습들이다. 그녀는 이 밤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는 싱가포르에 자기가 아는 클럽이 있다며 우리에게 같이 가자는 제안을 한다. 나는 그런 장주임의 모습이 왠지 낯설다. 2년이라는 시간이 그녀를 많이 바꿔놓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모두가 사파리에서 받은 실망감을 안고 숙소로 돌아갈 순 없었다. 만장일치로 그녀를 따르기로 결정한다.
다행히 상상의 반쪽은 얼추 맞아떨어진 듯 보인다. 반대편 문에서 내리는 여성은 모터쇼에서나 나올 법한 미모와 몸매를 겸비했다. 여자는 아슬한 검정 원피스를 입고 매끈한 다리를 차 밖으로 빼며 우아하게 빠져 나오더니 그 임산부 남성에게로 달려가 팔짱을 끼고는 VIP 전용 입구로 들어간다.
"와~ 저 남자, 여자 대신 임신했나 봐요"
"푸하하하"
"돈이 좋긴 좋네요, 여기 싱가포르는 자동차 세금이 장난이 아닌데 이런 차를 몰고 다닐 정도면 아마 엄청난 거물이지 싶어요"
“뭐 부모 잘 만났겠지”
"你们在说什么呢?"(무슨 얘기들 하는 거예요?)
“没什么,钱说话呀 呵呵呵” (암 것도 아녜요. 돈이 말을 하네요 하하하)
”Money talks!" (돈이 최고죠)
마치 엔진 속의 피스톤이 기화된 휘발유와 불꽃이 만나 폭발하며 일으키는 에너지에 미친 듯이 움직이는 형상이라고 할까? 술은 휘발유요, 조명과 어우러진 음악은 점화플러그에서 내뿜는 불꽃이다. 그리고 옆에 있는 낯선 이성의 몸과 체취는 엔진 윤활제와 같다. 피스톤 운동을 더욱 격렬하게 촉진한다.
"来来!跳舞吧!”(자! 춤춰요!)
장주임은 고개를 젖히고 조금씩 음악에 심취해 간다. 두 손을 클럽의 화려한 조명 불빛을 향해 기지개를 펴듯 뻗어 올린다. 그리고 한 손으로 묶여있던 머리 끈을 풀어헤친다. 그녀의 윤기 있는 머리칼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그녀의 몸짓과 엇박자로 찰랑거린다. 그 긴 생머리가 좌우로 흔들리며 보일 듯 말듯 하는 하얀 목선을 따라 아래로 잘록한 허리와 골반라인으로 나도 모르게 시선이 움직인다.
이건 비단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시간이 좀 지나자 그녀 주변으로 낯선 남자들이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매혹적인 몸짓은 마치 향기로운 꽃이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는 듯 하다. 그녀는 벌과 나비들이 몰려드는 것도 모른 채 혼자 음악에 심취해 있다. 벌과 나비들은 꽃에 내려앉으려는 듯 그녀와의 거리를 좁혀간다.
장주임이 눈을 떴고 둘러싼 벌떼들을 확인하고는 잠시 당황한 듯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녀는 벌떼들을 비집고 나에게 다가온다. 나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시 음악에 몸을 싣는다. 그 상황을 지켜본 벌떼들은 표정이 일그러지며 흩어진다.
그녀의 체취와 땀냄새가 섞여 콧 속으로 스며들어온다. 그 야릇한 향과 그녀의 몸짓 그리고 낯설지만 강렬한 음악 선율과 알코올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나의 오감을 자극한다. 나는 고목나무처럼 서서 멀뚱히 그녀를 바라보며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신비한 기분 속으로 빠져든다.
"放松吧~”(긴장풀어요~)
그녀의 그 귓속말이 머리 속을 계속 맴도는 듯하다. 난 말없이 코 앞에 선 그녀의 몸짓과 표정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녀 안에 있던 또 다른 그녀가 그녀를 되찾은 것인가. 내가 알고 있던 장주임이 아닌 또 다른 여자가 내 앞에 서 있다.
그녀가 낯설다.